미스터리 게시판
  • No. 575   2,030 hit   2017-10-25 07:31:15
그곳의 기묘한 이야기 1 +2
  • User No : 685
  • Lv36
"김병장님, 짬밥 버리는 곳에 고양이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재촉에도 점심을 준비하던 김병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무쇠 가마 속에 섞여있는 야채와 돼지고기를 열심히 휘젓고
있었다.
 
사회에 있을 때 요리와 관련없는 무슨 전문대를 다니다 왔다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취사병을 하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런데 확실한 건 그가 요리에 매우 능숙하다는 것이다.
 
그 거칠고 우람한 손으로 몇 가지 되지도 않는 재료로 만들어낸 요리는 항상 부대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또한 칼질까지 예술이다.
 
태어나서 과도로 사과 껍질을 5초 만에 매끈하게 벗겨내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왼손으로 사과의 위아래 오목한 곳을 잡고 조금씩 돌리며, 오른손으로 과도를 사과 표면에 가져간 후 요동치는 지진계의 바늘처럼
 
과도를 사정없이 좌우로 왕복운동시키더니 사과 모양을 잃지 않고 그대로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다.
 
실로 마술에 가까웠다.
 
 
근육질 몸에 덩치는 산처럼 우람하여 겉보기에 매우 거칠 것으로 보이지만 성격은 생각보다 내성적이다.
 
그러나 한번 성질을 냈다하면 부대 전체가 뒤집어질 정도로 파괴력이 컸다.
 
상병 때 고참을 패서 군기교육대에 갔다온 적도 있다.
 
김병장은 순간적인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본 것 중 하나는 식판 정리를 하던 후임병이 말길을 잘 알아듣지 못하자 도마질을 하고 있던 칼을 집어 던져버린 적도 있다.
 
그 무시무시한 정육점에서나 쓰는 무쇠칼이 연신 회전을 거듭하며 후임병 옆을 스쳐 취사장 벽에 박혀버렸다.
 
 
망나니 김병장.....
 
그 뒤로 후임병들 사이에서 그는 그렇게 통한다.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할 때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무슨 명령을 내릴까 조마조마하여 지켜보게 되고, 최대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몸 속에 금속성분이 들어오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눈에 띄게 불었음을 보고한 나는 김병장의 대답을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제 막 일병을 단 내가 그에게 대답을 독촉할 수 없지 않은가?
 
그것도 머리 짧은 망나니한테...
 
 
"얼마나 많은데?"
 
 
"방금 보고 온 것만 해도 대여섯마리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제서야 김병장은 삽자루 같은 주걱질을 멈추었다.
 
 
"씨발...어디 고양이 분양소라도 있는거야? 왜 이렇게 자꾸 늘어나는거야?"
 
 
"어떡합니까? 김병장님."
 
 
"어떡하긴 어떡해? 약을 놓든 덫을 놓든 해야지.
 
아...씨발 바빠 죽겠는데 별게 다 신경 쓰이게 만드네."
 
 
김병장은 나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명령했다.
 
 
"너, 이것 좀 젓고 있어. 나가서 확인 좀 해보게."
 
 
김병장은 나에게 삽자루같은 커다란 주걱을 넘겨주고 취사장을 나섰다.
 
 
나는 심기가 불편했다.
 
고양이들 입장에서 김병장은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였다.
 
잔밥통에 서성거린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김병장에게 죽어간 고양이가 네다섯마리나 된다.
 
그것도 그냥 죽인 것이 아니다.
 
한 번은 고양이를 목 매달아 밤새 두들겨 패서 죽인 적도 있고, 한 번은 끔찍하게 목을 잘라버린 적도 있다.
 
그 중에 가장 끔찍했던 것은 덫에 걸려 바동거리는 고양이에게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던 때다.
 
그 역겨운 냄새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양이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같이 늘어가는 듯 보였다.
 
 
나는 그가 넘겨준 주걱을 받아들고 거대한 가마솥에서 익어가는 재료들을 열심히 휘저었다.
 
몇 번을 젓고 나서야 그가 얼마나 힘이 장사인지 깨달았다.
 
마치 거의 굳어가는 콘크리트 반죽을 삽으로 휘젓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올라오는 열기가 숨구멍을 틀어막는 것 같았다.
 
 
나는 취사병이 아니다.
 
우리 부대 취사병은 공식적으로 김병장 하나 뿐이고, 나머지는 소대별로 돌아가며 일주일동안 그의 일을 도와주는
 
도우미일 뿐이다.
 
이번 주는 내가 김병장과 함께 해야 한다.
 
모든 요리는 김병장이 하며, 그외 설겆이 같은 소소한 치다꺼리만 내가 하게 된다.
 
 
점점 배식 시간이 다가오는데 김병장이 들어오지 않았다.
 
괜히 불안했다.
 
고양이를 잡아 죽이고 내장이라도 꺼내 취사장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두려움 반, 걱정 반...
 
나는 가스불을 끄고 취사장 밖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나서자 예상과 달리 물끄러미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연신 담배를 빨고 있는 김병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앞에는 잔밥통 주변을 서성이는 고양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 수가 벌써 열마리를 넘어선 것 같았다.
 
마치 동족을 죽인 것에 대한 분노로 항의 시위라도 온 것 같았다.
 
나는 소리없이 잔밥통 주변을 서성이는 고양이가 거슬렸다.
 
솔직히 그들의 행동이 거슬리는게 아니라 김병장에게 잡힐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빨리 도망치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무슨 또 험한 광경을 목격할지 몰라 나는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김병장은 고양이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의 초점은 나와 같은 곳에 모아진게 아니었다.
 
그가 시선을 두고 있는 방향은 그 뒤편의 어둑어둑한 숲이었다.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자 나는 김병장을 재촉했다.
 
 
"김병장님, 배식시간 다가옵니다."
 
 
나의 말에도 김병장은 한발자국도 꿈쩍하지 않았다.
 
시선을 숲에 고정한 채 잠시 후 김병장은 입을 열었다.
 
 
"야..이창훈..."
 
 
"일병, 이창훈.."
 
 
"너...저 숲에 가본 적 있냐?"
 
 
"없습니다."
 
 
갑자기 그가 왜 이런 것을 묻는걸까?
 
김병장은 잠시 담배연기의 흡입을 멈추었다.
 
바람 때문인지 연기를 빨지 않았음에도 담배는 빠른 속도로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불씨가 필터까지 접근했음에도 김병장은 모르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김병장은 그 곳을 향한 시선을 풀지 않았다.
 
기묘한 기운을 온 몸을 감싸고 돌았다.
 
특히 눈에 띄게 그 수가 불어난 고양이가 찝찝한 기분을 더욱 돋우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 번 김병장을 일깨웠다.
 
 
"김병장님, 배식시간 다가옵니다."
 
 
그러나 나의 재촉에 김병장은 엉뚱한 대답으로 응수했다.
 
 
"이 고양이들은 먹을 것을 찾아 온게 아냐."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망쳐 온거야. 뭔가를 피해서..."
 
 
내가 김병장의 정체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던 것은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김병장은 숲을 향한 시선을 풀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고기 다 볶았으면 퍼내서 배식판에 올려 놔."
 
 
"네.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취사장으로 향했다.
 
고기가 다 익었음을 확인한 나는 엄청난 양의 제육볶음을 배식판에 퍼내기 시작했다.
 
한 참을 퍼 내고 있던 그 때 나의 눈에 들어온 뭔가가 보였다.
 
150여명 정도가 먹을 수 있는 국을 끓일 수 있는 가스버너가 달린 커다란 조리기였다.
 
구형 오르간처럼 생긴 스테인레스 재질의 조리기이다.
 
뚜껑을 열면 안에 빈 공간이 있고 그 곳에 여러 재료를 넣는다.
 
그리고 뒷편에 설치된 가스버너를 켜서 가열하면 국이 되는 것이다.
 
보통 국이 다 끓여지면 열기를 식히기 위해 뚜껑을 열여놓는데, 뚜껑 위 선반에 놓여진 검은색 걸레가 눈에 들어왔다.
 
버너 주변의 이물질을 닦는 걸레인데 본래의 색깔은 검은 색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조리기 위의 선반도 조리기처럼 스테인레스 재질이라 미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불길한 예감은 적중해 버리고 말았다.
 
꿈틀거리듯 미끄럼을 타던 그 걸레가 국통안으로 몸을 던져버린 것이다.
 
 
"헉!!!"
 
 
나는 단말마 같은 숨죽은 비명을 지르고는 내 머리통보다 큰 국자를 들고 국통으로 달려갔다.
 
그 거대한 국통속에 담긴 것은 '배추우거지 된장국'이었다. 
 
군대에서는 된장국을 간단히 '똥국'이라고 한다.
 
나는 국자를 이리저리 저어 들어올리며 똥국속에서 걸레를 찾으려 애썼다.
 
 
"뭐하냐?"
 
 
"예?"
 
 
김병장이 들어왔다.
 
 
"배식 준비해야지."
 
 
나는 놀란 가슴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조용히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우리 부대는 밥이나 반찬은 본인이 식판에 담을 수 있고 국만 취사병이 배식한다.
 
 
밥과 기타 반찬들이 배식대 위에 놓여졌다.
 
 
멀리서 부대원들의 군가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쩔 줄 모르며 국통 앞을 서성이는 나를 바라본 김병장이 입을 열었다.
 
 
"뭐해 임마? 국 배식 준비 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김병장은 하루의 일과가 끝난 사람처럼 내 뒤에 멀찌감치 의자를 가져다 놓고 거기에 앉아 담배를 하나 입에 물었다.
 
 
나는 커다란 국자를 이용해 조리기에 담긴 국을 작은 국통에 조심스럽게 퍼 담았다.
 
물론 건더기는 퍼올릴 수가 없었다.
 
만일 그 시커먼 걸레가 나오면 내 뒤통수에 그 무쇠칼이 내리꽂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배식이 시작되었다.
 
나는 국통 속의 국을 작은 국자를 이용해 병사들에게 한국자씩 배식을 했다.
 
걸레 국물이 섞여있다고 생각하니 역겨움이 밀려왔지만 지금은 내가 살아야 했다. 
 
몇 분이 지나자 작은 국통이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또다시 큰 국자를 이용해 조리기에서 국을 퍼냈다. 
 
물론 국물만이다.
 
그리고 다시 배식.....
 
 
이렇게 반복하기를 서너번.....
 
그런데 갑자기 말년 병장 한 명이 배식판을 통해 머리를 내밀었다.
 
일명 미친 개로 통하는 김병장 킬러 최병장이었다.
 
마르고 시커먼 얼굴에 눈 밑에 칼을 맞은 건지 긁힌 건지 모르는 3센티미터 정도의 흉터 자국이 있는데, 
 
그것 하나로도 최병장의 모든 이미지를 다 표현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무섭게 생겼다.
 
 
최병장은 김병장보다 4개월 선임인데 김병장을 왜 싫어하는지 이유는 잘 모른다.
 
그런데 항상 최병장은 김병장을 괴롭혀왔다.
 
만일 우리 부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면 이들 둘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하나씩 나눠 차지할 것이다.
 
최병장이 나에게 김병장을 찾았다.
 
 
"야...김창식이 어딨어?"
 
 
"왜... 왜 그러십니까?"
 
 
"닥치고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미친개와 망나니 사이에서 나는 별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단지 외줄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으며 목숨을 부지하는 것 뿐이었다.
 
불려온 김병장은 최병장에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오늘 국 메뉴 뭐야?"
 
 
"똥국입니다."
 
 
"그런데 왜 똥국에 건더기가 없어?"
 
 
"예? 우거지랑 여러가지 많이 넣었습니다."
 
 
"야..씨발 니 눈으로 봐! 뭐가 있나?"
 
 
최병장은 옆에 놓여있던 식판을 들이 밀었다.
 
건더기가 하나도 없는 국물.....
 
말없이 국을 바라보던 김병장이 나를 돌아봤다.
 
무서웠다. 그 눈빛...
 
취사장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될 듯한 기분이었다.
 
나무토막처럼 나는 얼어붙었다.
 
 
"너...시발...어떻게 배식한거야?"
 
 
"그게...저.."
 
 
"꺼져, 배식은 내가 한다."
 
 
"제가 다시 하겠습니다."
 
 
"꺼져 시발아."
 
 
그는 조리기로 다가가더니 팔을 걷어 올렸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언젠가 저 새끼 이 곳에 집어넣어 국물을 우려내고 말거다."
 
 
그러더니 그의 우악스러운 손에 들려진 커다란 국자가 연신 조리기 속의 우거지를 퍼내기 시작했다.
 
그 우거지가 들어 올려질 때마다 나는 심장의 기능이 하나씩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배식.....
 
작은 국통이 바닥을 보일 때마다 김병장은 나에게 보란 듯이 조리기에서 국통으로 건더기를 퍼올렸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몇 차례...
 
드디어 조리기 속을 휘젓던 국자를 따라 길고 시커먼 무언가가 따라 올라왔다.
 
그 걸레였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김병장도 어이가 없는지 부릅 뜬 눈으로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바빴다.
 
몇 초가 지났을까?
 
김병장이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바라보왔다.
 
김병장은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넌 못 본거다."
 
 
그러더니 국자에 걸려나온 그 시커먼 걸레를 조리기 안으로 깊이 쑤셔넣었다.
 
 
'이 새끼... 도대체 뭐하는 놈이지?'
 
 
나는 행여나 머릿속의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까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자정이 넘어서자 5초소 주변으로 짙은 어둠이 피어올랐다.
 
원래 취사병 도우미는 근무를 열외시켜 주는데, 부대원 몇이 훈련 파견 나가는 바람에 인원이 부족하게 되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달빛이 조명 역할을 해줬었는데 그마저도 이 깊은 산중에서는 오래가지 못하고 능선 뒷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나의 뒤에서 초소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전상병은 손톱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상병 말호봉인 전상병은 부대내에서 군기 담당병으로 불렸다. 
 
나는 늘 생각하는 것이 있었는데 우리 부대 고참들은 하나같이 다 무섭게 생겼다는 것이다.
 
전상병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전상병은 어디서 썬텐을 하는지 얼굴은 시꺼멓게 그을려 있었고, 까맣게 그을린 울퉁불퉁한 감자덩어리에 두 개의 칼집을 
 
낸 것처럼 찢어진 눈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눈알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두툼란 눈꺼풀이 눈알을 덮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먹어치울듯한 큰 입과 그것에 균형을 맞추기라도 하듯 두툼한 입술이 막대풍선처럼 포개져 있었다.
 
그러나 우악스러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상당한 학구파였고, 명문대를 다니다 온 사람이었다.
 
쥐죽은 듯한 적막 속에서 사각거리는 손톱 갈리는 소리만이 지금 들려오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야..이창훈"
 
 
"일병, 이창훈"
 
 
"심심하냐?"
 
 
"아닙니다."
 
 
"주변 분위기도 그럴싸한데 내가 무서운 얘기 하나 해줄까?"
 
 
"무슨 얘기 말입니까?"
 
 
"이 5초소가 왜 있는지 아냐?"
 
 
"....모르겠습니다."
 
 
"흐흐흐..."
 
 
갑자기 전상병은 내 뒤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뱉았다.
 
지금 내 뒤에 있서 볼 수 없지만 그는 분명 그 두터운 막대풍선 사이로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5초소는 조금 이상했다.
 
특별히 경계를 해야될 시설물도 없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도 아니었다.
 
게다가 더 이상한 건 부대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족히 눈짐작으로 보아도 부대막사로부터 이백여미터는 넘게 떨어져 있다.
 
도대체 이런 고립된 산중에 누가 초소를 만들 생각을 했던 것일까?
 
 
"내가 자대 배치를 받고 얼마 후에 일어난 일이야.
 
부대에 정한수라는 이등병이 전입왔어.
 
운전병 후반기 교육을 받고 온 놈인데, 니미럴... 자대 배치 다음 달에 일병을 달더라구.
 
내가 자대 생활을 두 달이나 먼저 하고 있었는데 쫄병이라고 온 놈이 내 고참이었던거야.
 
기분 더러웠지.
 
그 자식은 체격도 왜소하고 삐쩍 말라서 힘도 없는데다가 약간 모자른 놈이였어.
 
아침에 구보하면 항상 뒤쳐지기 일쑤였고, 행군할 때도 항상 낙오됐었지.
 
나중엔 아예 그놈만 군장을 메지 않고 행군을 할 때도 있었다니까.
 
아니면 선탑 차량 운전을 했지.
 
일하는 것도 지랄맞도록 느려 터졌고, 항상 쉬운 일만 맡아서 했었지.
 
그 놈 때문에 우리 동기들이 무지하게 고생했었지. 
 
그 놈이 할 일을 우리가 대신 했었으니까
 
게다가 말도 어눌해서 졸라 불쌍해 보였고, 우리에게 고참 대접도 받기 힘들었지.
 
혹시나 사고라도 나서 죽을까봐 대대장은 그 놈을 특별 관리 대상으로 삼았지."
 
 
"특별 관리 대상이 뭡니까?"
 
 
"별거 아냐. 군대 부적응자가 혹시나 자살이라도 할까봐 감시병을 붙여두는거지.
 
감시병이 고참이면 생활이 힘들 것 같으니까 보통은 같은 동기를 감시병으로 붙여두지.
 
그 놈이 어딜가든 쫓아다니는거야. 심지어 화장실 가서도 감시병이 밖에서 1분 간격으로 노크를 하지. 
 
보통 화장실에서 자살을 많이 하니까 살아있나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는거야.
 
그 자식 실제로 손목에 칼로 그은 듯한 흉터가 몇 개 있더라구."
 
 
전상병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잠시 손톱 손질을 멈추었다. 
 
 
"그런데 그 놈 진짜 이상했어. 소름끼치도록 말야..."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내 뒤에서 진지한 말투를 내뱉고 있는 전상병이 왠지 무섭게 느껴졌다.
 
차라리 계속 손톱 손질하는 소리를 내주길 바랬다.
 
 
"그 자식은 이상한 부적같은 것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더라구. 
 
어떤 건 모자 속에 어떤 건 군화 속에 어떤 건 군장 속에......
 
알고보니까 걔 엄마가 무당이라고 그러더라구. 
 
몸이 약한 아들이 군대에 있으니까 엄마가 정성들여 부적을 써줬나봐.
 
그런데 그건 우리가 보는 일반적인 부적이 아니었어. 
 
종이도 붉은 색인데다가 문양도 글자가 아니고 무서운 괴물형상같은 그림이 깨알같이 그려져 있었지.
 
아무도 그 부적의 용도에 대해 묻지 않았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빴어. 
 
게다가 특별 관리 대상이라 아무도 걔한테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지.
 
걔한테는 영기(靈氣)가 느껴졌어. 그 썩어가는 몸뚱아리에 쓸 만한 거라곤 눈이었어.
 
눈에서 무서울 정도로 광채가 돌았지.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 두 눈....
 
그러던 어느날이었어.
 
여기 5초소 자리는 원래 뒤산의 능선 줄기가 끝나는 곳이었지.
 
토질이 마사토라서 부대에서 이곳을 파내어 연병장이나 비포장 도로에 깔기로 했지.
 
단순히 삽질로 능선 줄기 하나를 파낸다는건 애초에 불가능했어.
 
그래서 대대장이 공병대에 요청을 해서 포크레인이 한대 왔지.
 
능선 줄기만 파내어 주면 나머지는 우리가 삽질을 하면 됐으니까 일거리가 무지하게 많이 줄게 된거지.
 
그런데 그때 정한수 일병이 같이 있었는데 포크레인이 몇 번 굴삭질을 하는 걸 보더니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는거야."
 
 
나는 마른 침을 한번 삼키며 조용히 손목시계를 한번 들여다 봤다.
 
12시 35분.....
 
전상병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공포스런 기운이 주변을 감싸는 듯 했다.
 
내 기분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전장병은 여전히 내 뒷편에 앉아 말을 이었다.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파내어진 자리를 지켜보고 있는거야. 
 
그러더니 갑자기 마구 괴성을 지르며 포크레인 운전병한테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는거야. 
 
그리고는 그 허약한 몸으로 미친듯이 삽질을 하며 다시 흙을 구덩이에 처넣는거야. 
 
미친 놈 같았어. 아니...그냥 미쳤었어.
 
순간 우리는 혼이 빠진 것처럼 몇 초동안 멍하니 걔 행동만을 지켜보고만 있었지.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형상가 범죄자를 체포하듯이 팔을 뒤로 잡아챈 다음 바닥에 눕혀 그를 제압했지."
 
 
"왜....왜 그랬답니까?"
 
 
나는 이미 전상병의 분위기에 동화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물음에 전상병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는 듯 했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나의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니미....씨발...구덩이에서 귀신이 나온데...그것도 그냥 나오는게 아니라 쏟아져 나오고 있대."
 
 
갑자기 싸늘한 기운이 내 척추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나는 긴숨을 한번 되새기며, 그에게 물었다.
 
 
"그..그럼... 그 구덩이 자리가 이곳입니까?"
 
 
나는 질문을 던져놓고, 조심스럽게 곁눈질로 전상병의 얼굴을 살폈다.
 
전상병은 내 옆에 바른 자세로 서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인데도 전상병은 그 때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나는 궁금해 미칠 것 같았지만 전상병은 나의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다른 놈이 그런 얘기를 했다면 무시하고 넘어갔을지도 몰라. 
 
그런데 정한수 그 놈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다들 맥반석 위의 오징어처럼 오그라들었지."
 
 
전상병은 긴장을 풀려는지 잠시 긴 숨을 내뱉았다.
 
 
"작업은 중지됐어. 대대장이 직접 공병대에 부탁해서 포크레인까지 동원된 작업이 중단된거야.
 
같이 있던 소대장도 사색이 되서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이었어. 
 
대대장에게 욕을 처먹는걸 각오하고 작업을 취소시키거나 아니면 정한수 말을 무시하고 계속 파내려가는 거였어.
 
 
 
"어..어떻게 했습니까?"
 
 
나와 나란히 같이 서있던 전상병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음흉스런 미소를 지으며 답을 했다.
 
 
"그냥 팠지...."
 
 
나는 마치 그 때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냥 팠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 삽질을 하면서 우리는 걱정되는 마음에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예정대로 마사토를 트럭에 퍼담아 연병장에 깔았어."
 
 
"그 일병은 어떻게 됐습니까?"
 
 
"근신 조치 되었어. 외부활동은 금지되었고, 부대 내에서 하루종일 청소하고 밤에는 반성문을 썼지.
 
감시는 더더욱 심해졌고, 심지어 근무도 열외되었어. 
 
그런데 그 뒤로 그 놈의 행동이 이상했어. 
 
누구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자꾸 주변을 살피며 불안해 하는거야.
 
장난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진지했어. 
 
진짜로 누군가에게 위협을 당하는 사람 같았다니까."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상병을 말을 멈추게 할 권한이 없었다.
 
지금 여기 저기서 수많은 손들이 나를 쓰다듬는 것 같은 한기가 온 몸에 퍼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부대에 회식이 있던 날이었지.
 
돼지를 한 마리 잡았는데 보통 맛있는 부위는 대대장이나 중대장에게 건네지고 나머지를 부대원들이 먹게 되지.
 
보통 썰어서 구워먹거나 제육볶음으로 해먹는데 그 때 취사병이 제안을 하나 하는거야.
 
통째로 쇠봉을 박아서 바베큐로 구워먹자는거야.
 
부대원들은 우린 흔쾌히 승락했지.
 
그 때 고참들이 졸병들에게 불을 땔 장작거리를 주워오라는거야.
 
그래서 나를 포함해서 몇 명이 저녁 7시가 넘을 무렵 어둑어둑한 산속으로 나무쪼가리를 주으러 갔지.
 
산에 들어서기 전에는 별로 어둡지 않았는데 산속으로 들어가니까 제법 많이 어두워지더라구.
 
그런데...후..."
 
 
전상병은 뭐가 두려운지 다시 한번 긴 숨을 내뱉았다.
 
 
"며칠 전 비가 많이 내려서 적당한 장작거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어.
 
그런데 날이 더 어두워질 것 같으니까 우린 눈에 띠는 대로 장작거리를 열심히 포대자루에 주워 담았어.
 
나무쪼가리가 많은 곳이 있길래 정신없이 한참을 주웠지. 
 
그런데 줍다보니까 그 자리가 얼마 전 정한수 일병이 소동을 벌이던 곳이었어. 
 
어후..졸라 소름끼치더라구...그래서 우리는 얼른 작업을 멈추고 포대자루를 짊어지고 내려왔지.
 
모두들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더라구. 그런데 말야..."
 
 
전상병의 긴장감 도는 말에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넘기고 있었다.
 
 
"포대자루를 뒤집어 쏟아내는 순간 우리는 모두 나자빠졌지."
 
 
"뭐..뭣 때문에 말입니까?"
 
 
"씨발...우리가 주워 온게 나무가 아니었어. 까맣게 색바랜 뼈였어!!"
 
 
"예? 뼈 말입니까? 뼈를 나무인 줄 알고 주웠단 말입니까?"
 
 
"몰라, 씨발...다들 나무라고 생각하고 주워왔는데 뼈였어. 우리는 심장이 멎는듯 했어.
 
크기나 모양으로 봐서 동물의 뼈가 아니었어. 
 
누가 봐도 사람 뼈였어. 나하고 같이 주웠던 홍상병은 부서진 골반뼈까지 주워 왔더라구."
 
 
전상병은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괴로운지 헬멧을 벗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회식은 물 건너 갔지. 
 
혹시나 그 자리가 무연고 무덤일지 몰라서 날이 밝자마자 군청에 신고를 했지.
 
군청 직원들과 경찰들이 그 구덩이를 둘러쌌지.
 
여기저기 증거 사진을 찍더니만 군청 직원 얘기로는 거기가 신고된 무덤 자리가 아니라고 하더군. 
 
군청에서 뼈를 모두 수거해갔어. 상당히 많은 뼈가 나왔어. 포대자루로 다섯 포대 이상은 나온 것 같았어.
 
군청 차량이 멀어져가는 것을 보고있는 부대원들은 한결같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
 
정한수...그 자식이 한 말이 떠올랐던거야."
 
 
전상병은 다시 한번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씨발...나를 진짜로 무섭게 만든건 그게 아니었어."
 
 
전상병만큼이나 내 머릿속은 욕설로 가득했다.
 
 
'니미..씨발 오늘 제대로 걸렸네.'
시간이 너무나도 더디게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전상병의 얘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고통스러웠지만 멈출수 없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미 그의 얘기에 깊이 빠져들어 있었다.
 
 
"귀신을 보는 특별 관리 대상....우린 정한수한테 감히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
 
심지어 그 놈 동기인 감시병조차 옆에 있길 꺼려했으니까."
 
 
"그런데 진짜로 무서웠다는게 뭡니까?"
 
 
내 곁눈질을 눈치챘는지 전상병은 고개를 돌려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어느 날 정한수와 내가 보급창고 정리 작업을 하게 되었지.
 
감시병이 면회를 나가서 대신 내가 대타로 있게 된거야.
 
난 그 놈과 같은 공간 안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게 너무 무서웠어.
 
보급 창고 안에는 야전삽부터 시작해서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얼마든지 사람을 때려죽일 수 있는 기구들이 가득했거든.
 
내가 흠찟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정한수가 나에게 말을 걸더라구.
 
자기를 무서워하지 말래."
 
 
전상병은 잠시 자신의 이마를 긁적거렸다.
 
 
"니미...안무서워하게 생겼냐? 그건 지생각이고.....
 
나는 그 놈이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귀신들과 댄스파티를 하는 것 같아 미칠 것 같았지.
 
고참만 아니었으면 온몸에 테이프를 칭칭 감아놓고 돌아다니지 못하게 어디다 묶어놓고 싶었다니까.
 
정한수가 내게 안도감을 주려는 것 같자 불현듯 나는 묻고 싶은게 하나 생겼지."
 
 
"뭘 말입니까?"
 
 
 
"정말로 귀신을 볼 줄 아냐고?"
 
 
"........"
 
 
"그런데 정한수가 씨익 웃음을 짓는거야.
 
와...씨발....사람이 웃음을 짓고 있는데 그렇게 무서운 표정은 처음이었다니까.
 
해골처럼 마른 얼굴에 늘 두려움의 표정을 짓던 사람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니까 야전삽을 쥐고 있는 내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더라....."
 
 
 
나는 마치 전상병과 함께 그때 그 보급창고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음짓던 표정을 없애더니만 정한수가 입을 여는거야.
 
자신을 몸이 허약한 건 귀신이 잘 붙는 몸이라 그런다는군. 
 
그래서 자기 어머니가 무당이니까 굿도 해보고, 부적도 써보고 그랬대나봐.
 
그런데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귀신은 자기 방 드나들듯이 계속 몸속에 들락거렸대.
 
몸이 죽을만큼 쇠약해졌는데도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해 입대 신검에서도 2급이 나와서 현역 판정난거래.
 
그러던 어느 날 정한수 어머니가 자신을 신내림해준 영험한 무당을 찾아가 아들 얘기를 했더니,그 무당도 그러더래.
 
귀신을 떼어내면 아들이 죽는다고....떼어내서 죽는게 아니라, 빈 자리가 생기면 더 강한 귀신이 붙어서 죽을거라는거야.
 
그 무당은 고양이의 피를 바른 종이에 기분 나쁜 형상의 그림을 그려넣더니 정한수 어머니에게 건네더라는거야.
 
그리고는 그러더래. 몸이 돌아올 때까지 몇 년간 이겨내야 할일이 있다는거야.
 
정한수 어머니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니까 그 늙은 무당이 하는 말이....."
 
 
전상병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왜...왜 그러십니까?"
 
 
나의 물음에 전상병은 마저 말을 이었다.
 
 
"그 늙은 무당이 하는 말이.....부적을 몸에 지니는 순간부터 귀신을 보게 될거라는거야."
 
 
"헉!!"
 
 
"쪼그려 앉아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야전삽을 손에 쥔 상태로 털썩 주저앉았어...다리에 힘이 풀리더라구.
 
도대체 그 무당이 정한수에게 무슨 짓을 한걸까 생각해 봤더니....
 
그 무당이 정한수가 살 수 있도록 선택한 방법은 귀신을 보게 해서 정한수가 귀신을 피해다니게끔 만든거야.
 
와....씨발 존나 똑똑하고 무서운 방법 아니냐?"
 
 
나는 차마 전상병의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정수리부터 꼬리뼈까지 찌릿한 전기 자극이 주어지는 듯 했다.
 
 
"자잘한 몇몇의 귀신들은 잘 피해다닐 수 있었는데, 그날 그 작업이 있던날 귀신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던거지."
 
 
"그..그래서 포크레인으로 작업했던 날 이후로 귀신에게 쫓겨다닌겁니까?"
 
 
"아니 쫓겨다닌게 아니라 피해 다닌거지...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
 
정한수가 무서운 얘기를 하나 하는거야."
 
 
"또...무..무슨 말 말입니까?"
 
 
"거기서 쏟아져 나온 귀신 중 하나가 김창식 일병한테 붙었다는거야."
 
 
"김창식 일병이라면....."
 
 
"그래. 취사병인 김창식 병장..."
 
 
 
난 순간 숨이 턱 막히며 온몸에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와...씨발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오금이 다 저리더라구."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싸늘한 찬바람이 능선 골짜기를 쓸며 내려가고 있었다.
 
 
"너 부대에서 가장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 누구냐?"
 
 
"......."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 난 제대로 정신이 박혀있는 부대원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정신병원을 집단탈출한 환자들 뿐이었다.
 
 
"너 김창식 병장의 과거를 아냐?"
 
 
"모..모릅니다."
 
 
"그 사람 칼 다루는 것 본 적 있지?"
 
 
"예"
 
 
"김창식 일병 원래 특전사에서 특기병으로 있던 사람이야."
 
 
"예? 진짜로 말입니까?"
 
 
"원래 특전사 요원들은 부사관들이고, 행정은 보통 차출된 사병들이 하거든. 
 
그런데 김창식 병장이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배정 인원이 모두 다 찼었나봐.
 
그래서 자리가 날 때까지 김창식 병장은 부사관들과 같이 내무반 생활을 하며, 똑같이 훈련을 받았었대.
 
게다가 칼을 귀신처럼 잘 다뤄서 쌍칼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는거야.
 
그런데 낙하산 점프에서 착지하다가 허리와 골반을 다쳤나봐. 그래서 우리 부대로 온거야. 그것도 취사병으로.
 
그 때 취사병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제대하면서 김창식 병장이 취사일을 모두 떠맡았지.
 
그런데...너 김창식 병장 이상한 점 발견 못했냐?"
 
 
"이상한 점 말입니까?"
 
 
"그래 임마....너도 짧은 시간이지만 김창식 병장 계속 봐 왔잖아."
 
 
"저....고..고양이를 무지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고양이를 존나게 싫어해. 
 
너도 알지? 고양이를 불태워 죽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목을 잘라버리기도 하잖아.
 
너 이 부대 오기 바로 전에 존나 쇼킹한 일이 한 번 있었다."
 
 
지금도 쇼킹한데 뭐가 더 쇼킹하단 말인가?
 
 
"사단본부에서 취사 검열이 나왔어.
 
배식 메뉴가 규정을 따르고 있는지, 위생상태가 양호한지, 식자재는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는지 이런걸 검열하는거지.
 
그때가 겨울이어서 동절기에는 무우를 땅에 묻어야 하거든?
 
취사장 뒤편에 무우를 묻는 장소가 있어.
 
그런데 검열관이 보기에 무우를 묻은 무덤이 너무 커보이는거야.
 
검열관을 보좌하던 선임하사도 의아해 했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지는 검열관이 그 흙무덤을 파보라는거야.
 
그 때 김창식 병장 얼굴이 약간 일그러지더라구....
 
땅이 꽁꽁 얼었는데 그걸 판다는 건 쉽지 않았지. 결국 곡괭이와 삽만으로 그걸 팠어.
 
그런데 무우가 묻혀 있는 층 위에 큰 포대자루가 나오더라구. 
 
거기서 뭐가 나왔는지 아냐?" 
 
 
"고...고양이 말입니까?"
 
 
"아니.....고양이 뼈....그것도 살을 발라낸..."
 
 
".........."
 
 
"그 살은 어디로 갔을까? 그것도 취사병이 발라낸 살...."
 
 
나는 순간 토가 나올것 같이 속이 부글거렸다.
 
 
"김창식 병장은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라구. 
 
어떻게 보면 아주 심각한 일이 될 수도 있었는데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고양이 고기를 먹는 군인들도 있거든...
 
결국 경고 조치로 끝났지만, 다 들 알고 있었지.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다들 수근거렸지. 언젠가 김창식 병장은 고양이의 저주를 받아 죽을거라고.
 
고양이만 보면 눈깔이 뒤집혀. 미친 사람 같애.
 
그런데 말야. 그 사람 처음부터 그런게 아니었어.
 
정한수가 나한테 그 말을 해 준 이후에 김창식 병장이 그렇게 변해 가는거야."
 
 
"저..정말로 귀신 씌어서 그런겁니까?"
 
 
"개나 고양이들은 귀신을 볼 줄 안다고 하잖아. 자신을 알아보는 존재를 다 죽여버리는 것 같애."
 
 
오늘 낮에 있었던 김병장의 기이한 행동이 오버랩되면서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마른 침을 간신히 삼키며 전상병에게 물었다.
 
 
"그...그 존재가 사람이라면 어떡합니까?"
 
"사람? 사람이라구? 그...그건 나도 생각 못했던건데..."
 
나의 물음에 전상병은 적잖게 당황하는 것 같았다.
 
멍하니 나를 주시하더니 계속 무언가 머릿속에서 기억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뭔가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고는 나에게 가느다란 숨소리로 외쳤다. 
 
"이럴수가!!!!!!!! 왜 미처 그 생각을 못했지?"
 
전상병은 놀랍다는 듯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의 행동을 바라보며 나 또한 놀라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와....씨발 이런 반전이 있었네..."
 
갑자기 전상병이 초소 뒷편에 놓아두었던 소총을 챙겨들었다.
 
비록 실탄이 장전되어 있지 않지만, 실탄이 들어 있는 탄창이 끼워져있기 때문에 노리쇠만 후퇴전진시키면 언제든 총을 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얘기보다 나는 지금의 전상병이 더 무서웠다.
 
"도대체..왜 그러십니까?"
 
전상병은 대답을 회피한 채 계속해서 뭔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근무 교대 시간이 되었는지 저 멀리서 작은 손전등 불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너...오늘 한 얘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라"
 
 
"......?"
 
 
"아무에게도 이 얘기하지마. 절대로 입 열지마라."
 
 
나는 묵언의 약속으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서는 또 다시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씨발놈. 그럼 왜 처음부터 말을 꺼낸거야?'
 
 
 
 
 
취사병 도우미는 좋은 점이 하나 있다. 공식적인 훈련 외에 부대 자체 훈련과 작업에서 모두 열외된다.
 
그러한 좋은 점이 있음에도 나는 김병장과 함께 하는 일주일의 시간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를 소원했다.
 
 
아침 배식이 끝나고 가스조리기를 열심히 닦고 있는 나에게 김병장이 말을 걸었다.
 
 
"니 나한테 할 말 있냐?"
 
 
김병장은 내가 힐끔거리며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것 같았다.
 
김병장은 나에게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옆에서 과도를 돌리며 사과 하나를 깍아내고 있었다.
 
유난히 그 과도가 눈에 크게 들어왔다.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내 눈치를 자꾸 보냐?"
 
 
"눈치 보는 것 아닙니다."
 
 
김병장은 껍질을 벗겨낸 사과를 과도로 한조각 잘라내더니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우걱거리며 사과를 몇 번 씹더니 눈을 치켜 뜨며 나에게 다시 물었다.
 
 
"너 어젯밤 어디 근무였냐?"
 
 
"..5초소였습니다."
 
 
"누구하고 섰어?"
 
 
"전대웅 상병입니다."
 
 
"전대웅?"
 
 
"예. 그렇습니다."
 
 
"그 자식이 무슨 얘기 안하든?"
 
 
"무슨 얘기 말입니까?"
 
 
갑자기 우걱거리는 소리가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나의 수세미질도 멈추었다.
 
 
"나에 대해서 무슨 얘기 한 적 없냐고?"
 
 
순간 등골을 따라 식은 땀이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아..아무 얘기 없었습니다."
 
 
김병장이 얼마나 칼을 다루는 솜씨가 능숙한지를 지금도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의 손에 들려진 과도는 손가락 사이를 셀수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김병장은 나를 떠보는것 같았다.
 
왜 전상병을 의식하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는게 분명했다.
 
그러나 전상병으로부터 들은 얘기만으로도 나는 지금 김병장의 많은 것을 알고 있는게 사실이다.
 
 
"너 어제부터 전대웅하고 같은 근무조에 들어간거냐?"
 
 
김병장은 다시 한번 사과 한조각을 입에 처넣더니 우걱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수세미질도 다시 시작되었다.
 
 
"예....그렇습니다."
 
 
"당분간 전대웅하고 근무 계속 같이 서겠네."
 
 
"......."
 
 
"전대웅이 사단장 빽이다. 너무 많은 말 하지 마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대웅 그 자식, 사단장의 먼 조카뻘되는 사이랜다. 말 조심하라고."
 
 
처음 들은 사실이다. 전상병이 그런 사람이었다니...그런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걸까?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때 김병장이 입을 열었다.
 
 
"니 오늘 나하고 할 일이 하나 있다."
 
 
"무슨 일 말입니까?"
 
 
"고양이 좀 잡자."
 
 
헉....난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올 것이 온 것 같았다.
 
 
".......고..고양이 말입니까?"
 
 
"왜? 싫으냐?"
 
 
"그..그게 아니라..."
 
 
"넌 그냥 고양이를 잡아. 뒷처리는 내가 할테니까"
 
 
"그...그런데 고양이를 왜 자꾸 죽이시는겁니까?"
 
 
순간 다시한번 김병장의 사과 씹는 소리가 멈추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김병장의 오른손에서 시퍼렇게 날이선 칼이 춤을 추듯 돌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후회스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김병장은 나즈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곧 장마철이다. 게다가 오늘 밤에 비가 온다고 했다. 지금 잡지 않으면 밤에 취사장까지 몰려 들어와.
 
게다가 장마철 내내 고양이 울음소리에 시달려야 돼. 너 산속에서 비오는 날 고양이 울음소리 들어봤냐?"
 
 
"......."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기 울음 소리하고 똑같지. 응애응애거리며 울어. 정말 똑같다니까. 
 
비오는 날 새벽에 홀로 취사장에 나와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 
 
모두 다 잡아내서 국물을 내버리고 싶어진다니까...."
 
 
이미 국물을 냈을지도 모른다. 전상병의 얘기가 사실이라면 충분히 그러거도 남을 상황이다.
 
어쩌면 부대원들은 김병장이 만든 특이한 식재료의 국물맛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새벽 근무때처럼 다시 한번 속이 울렁거렸다.
 
 
"그럼 제가 뭘하면 됩니까?"
 
 
"잔밥통으로 드나드는 개구멍 몇개 있지?"
 
 
"예"
 
 
"거기에 철사줄로 올가미를 열개 정도 만들어서 설치해놔."
 
 
"그냥 약을 놓으면 되지 않습니까?"
 
 
"안돼. 약을 놓았다가 약묻은 입으로 우리가 먹는 음식이라도 건드리는 날엔 우리가 거품물고 쓰러지는 수가 있어."
 
 
나는 그것보다도 김병장이 얼마나 고양이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일까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점심 배식이 끝나고 식당 청소를 마친 후 나는 바로 올가미 작업에 들어갔다.
 
오늘도 역시나 대여섯마리의 고양이들이 콘크리트로 만든 잔밥통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간혹 몇 마리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이 올가미가 곧 자신들의 사형도구가 될거라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태연스럽게 나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가 잔밥통으로 드나드는 군데군데 분포한 개구멍에 작은 철사 올가미를 설치했다.
 
밤 사이에 고양이 몇마리가 걸려들것이다.
 
좋지 않은 예감이 온 몸을 감쌌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저 멀리서 불길한 구름떼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저녁에 들어서자 하늘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비가 곧 쏟아질 것 같아 야간 근무자들은 판초우의를 챙기기 시작했다.
 
점호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지에 쌀알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넘쳐 흘렀다.
 
12시 근무인 전상병과 나는 말없이 5초소 근무지를 향했다.
 
 
"도대체 저기 5초소가 왜 있는겁니까?"
 
 
"알고 싶냐?"
 
 
"어젯밤 저에게 말을 꺼내지 않으셨습니까?"
 
 
"................." 
 
 
전상병은 우의속에 감춰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굵은 빗줄기가 멈추지 않고 쏟아지자 우의를 뒤집어쓴 몸에 습기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정한수란 일병이 누굽니까?"
 
 
전상병은 여전히 우의 속에 얼굴을 감춘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부대에 없어."
 
 
"전출갔습니까? 아니면 의가사제대라도..."
 
 
"....죽었어.."
 
 
"예?"
 
 
"죽었다구...."
 
 
"어..어떻게 죽었습니까?"
 
 
"자살했어."
 
 
나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왜..자살했습니까?"
 
 
"부적을 누가 훔쳐갔어."
 
 
"누가 말입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걸 알았으면 정한수가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을테니까."
 
 
"그깟 부적이 없어졌다고 자살을 한 겁니까?"
 
 
"쏟아져 나온 귀신이 어디에 붙었겠냐? 지 입으로도 자기는 귀신이 잘 붙는 몸이라고 했는데.
 
미친놈처럼 하루종일 찾아 헤맸지. 그런데 어느 날 밤 사이에 정한수가 없어졌어.
 
인원 점검을 하던 내무반 불침번이 밤 사이에 정한수가 없어진 것을 보고 보고했지.
 
한밤에 전 부대원들이 일어나 정한수를 찾아나섰어. 그러다 결국 목매단 시체로 발견되었어."
 
 
나는 설마하는 마음에 내 생각이 맞지 않기를 바라며 전상병에게 물었다.
 
 
"어...어디서 죽었습니까?"
 
 
나의 물음에 전상병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잠시 나를 응시하던 머리를 움직여 어딘가를 가리켰다.
 
 
내 예상대로 5초소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달렸다.
 
 
나는 잠시 마른 침을 삼켰다.
 
 
"귀신이 쏟아져 나왔다는데....그것도 사람이 자살한 자리에 왜 초소를 만든겁니까?"
 
 
"근무 시간 늦는다. 빨리 가자."
 
 
전상병은 대답을 회피한 채 아무 일도 아니란 듯 걸음을 재촉했다.
 
 
5초소가 십수미터까지 다가오자 이전 근무자의 수하소리가 들려왔다.
 
 
"손들어..움직이면 쏜다. 벽돌!!"
 
 
"......."
 
 
그런데 왠일인지 전상병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암구호에 응답하지 않았다.
 
 
"벽돌!!"
 
 
"전상병님..."
 
 
"벽돌!!"
 
 
나는 급한 마음에 대신 암구호에 응답했다.
 
 
"하늘!!"
 
 
수하에 불만이 있었는지 전 근무자 사수가 손전등을 비추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 또한 그에게 손전등을 비추었다.
 
 
전대웅 상병 동기인 박상병이었다.
 
 
"대답 빨리 안하냐?"
 
 
박상병의 질책에도 전상병은 아무런 응대를 하지 않았다.
 
 
전상병의 응답이 없자 박상병은 나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취사장 쪽에서 움직이던 것 너희들이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누군가 돌아다니고 있어."
 
 
"누...누가 말입니까?"
 
 
"씨발..나도 모르니까 물어본 것 아냐!!"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화가 나서인지 모르게 박상병은 짜증을 냈다.
 
 
박상병의 부사수인 조이병은 이미 알지 못하는 어떤 공포에 시달린듯한 표정이었다.
 
 
 
 
 
초소 천장을 뚫어버릴 기세로 빗줄기가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조금전부터 내 뒷편에 앉아 아무 말없이 입을 닫고 있는 전상병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전상병님....어디 아프십니까?"
 
 
내 말은 듣고 있었는지 그가 입을 열었다.
 
 
"다들 알고 있는데 모른척 할뿐이지."
 
 
"뭐...뭐가 말입니까?"
 
 
"이맘때쯤이면 비오는 밤마다 돌아다니는 그 정체가 뭔지를...."
 
 
난 전상병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말하는 그 정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싸늘한 한기가 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 놈을 잡기 위해 이 5초소가 생긴거야."
 
그...그 놈이 누굽니까?"
 
 
예의상 전상병에게 질문을 했지만 여전히 나는 전상병의 답변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곧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너도 알잖아. 누구일지."
 
 
나는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자살했다는 정..정한수라는 사람 말입니까?" 
 
 
"......"
 
 
 
초소 천장을 뚫어버릴 듯한 기세의 빗방울 소리가 전상병의 대답소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그 사람인지 어떻게 압니까? 누가 봤습니까?"
 
 
"......"
 
 
내 뒷편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는지 모를 전상병은 나의 물음에 입을 열지 않았다.
 
 
 
"전상병님..."
 
 
나는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난 알고 있어."
 
 
 
"...예?"
 
 
 
"............"
 
 
 
나는 다시 한번 마른 침을 삼켰다.
 
 
 
"뭐..뭘 말입니까?"
 
 
 
그러나 전상병은 대답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우리 둘은 깊은 침묵속에 오랫동안 빠져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었을까?
 
 
멍하니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가 깨닫지 못한 것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십수미터 앞 커다란 아카시 나무 옆에 누군가가 판초우의를 뒤집어 쓴 채 어둠속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누군가 순찰중이라면 손정등도 켜지 않은 채 저 어둠속에서 가만히 서 있지는 않으리라.
 
 
게다가 지금은 근무 교대시간도 아니다.
 
 
 
"저....전상병님..."
 
 
"...."
 
 
"누...누가 앞에 있습니다."
 
 
어떻게 이 어둠속에서 그것도 빗줄기가 쏟아지는 곳에서 그가 보이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나는 그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길게 늘여진 판초우의가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작은 키였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고 보고 있었다.
 
 
내가 전상병을 다시 부르려고 하자 그는 일어서서 이미 내 곁에 서 있었다.
 
 
그러나 전상병은 그 어둠속의 형상을 찾지 못하는 듯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순간 서서히 눈 앞에 나타난 어둠 속의 사내가 우리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밖으로 나가 수하를 하기 위해 초소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전상병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제지했다.
 
 
 
"나가지마..."
 
 
"예?"
 
 
"모른 척 해"
 
 
"무...무슨 말씀이십니까?"
 
 
"쳐다보지마....눈 감어."
 
 
"도..도대체 무슨 말....."
 
 
"그냥 내 말 들어!! 씨발놈아!!"
 
 
이미 전상병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전상병이 왜 공포스러워하는지 그의 표정을 보고나서야 나도 깨달았다.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총을 쥐고 있는 손의 악력만큼이나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 저 앞에 서 있는 정체가 전상병이 말한 그것이란 말인가?
 
 
삭신이 저리고 온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정체가 서서히 내 코 앞까지 도달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싸늘한 한기가 주변을 감사고 있었다.
 
 
몇 십초가 흘렀을까?
 
 
나는 질끈 감았던 눈꺼풀의 힘을 뺐다.
 
 
그리고 실눈을 조심스럽게 뜬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전상병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전..전상병님...지금 무슨 일입니까?"
 
 
"발 봤어?"
 
 
"예?"
 
 
"다가올 때 발이 보였냐구? 걸을 때 판초우의 펄럭이는 것 봤어?"
 
 
"그게...저..."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이 발을 보지 못했다. 정말로 보지 못했다. 머리가 핑 도는 듯 아찔해졌다.
 
 
그가 키가 작아서 판초우의가 거의 땅에 닿을 듯 스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걷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줄을 타고 내려오듯 나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미친듯이 왼손으로 얼굴을 비벼댔다. 그리고 답을 했다.
 
 
"못 봤습니다."
 
 
나의 대답에 전상병을 고개를 돌려 나에게 물었다.
 
 
"너 귀신 볼 줄 알아?"
 
 
"제..제가 어떻게 귀신을 봅니까?"
 
 
"지금 니가 본거잖아."
 
 
헛것을 봤다고 말해야 하는데, 거짓말이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이미 내 시각중추에 저장된 정보는
 
내가 본 것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되뇌이고 있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나는 초소문을 박차고 나가 쏟아지는 장대비에 몸을 맡겼다.
 
 
뭐 이런 좆같은 부대가 다 있냐?
 
 
나는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터질 듯 했다.
 
 
"이창훈... 너 왜 그래? 미쳤어 새꺄?"
 
 
나의 기이한 행동에 전상병이 열이 받았는지 내 등뒤에서 욕설을 내뱉았다.
 
 
그냥 나는 얼굴에 비를 맞으며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천천히 뒤돌아 전상병이 서 있는 초소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공포에 질리다 못해 나는 분에 받친 눈물을 쏟아냈다.
 
 
초소안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전상병 옆에 또 한명의 누군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정작 나의 조준에 놀란 것은 전상병이었다.
 
 
 
"야이 개새끼야!! 너 지금 뭐하는거야!!"
 
 
 
나는 전상병의 외침을 무시한 채 멜빵에 매달린 손전등을 집어들고 초소안을 비췄다.
 
 
불빛과 동시에 그 형상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나의 공포는 거기서 멈춘것이 아니었다.
 
전상병의 왼쪽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헛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나를 향해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야 씨발놈아 총 안 내려!!!"
 
 
"에이...씨발 피...."
 
 
"뭐?"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씨발 왜 어깨에서 피를 흘리냐고!!"
 
 
"너...지..지금 뭐라 그랬어?"
 
 
나의 외침에 전상병은 미친 듯이 양쪽 어깨를 쓸어내렸다. 나만큼이나 전상병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또 다른 무언가가 들어왔다.
 
 
"김....선호...."
 
 
나의 세 음절에 전상병은 어깨를 쓸어내리던 행동을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부릅 뜬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너...이 개새끼...지...지금 뭐라고 그런거야?"
 
 
"이...씨발 니 명찰에 써 있잖아 씨발!!!"
 
 
지금은 고참이고 뭐고 없었다. 
 
 
둘 중에 하나는 지금 귀신들려 누구를 죽이던가 아니면 아랫턱에 총구를 대고 자살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나는 죽기가 싫었다.
 
 
전상병은 천천히 초소문을 열고 나와 빗속에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너...지금 했던 말 다시 해봐."
 
 
"...."
 
 
나의 대답이 없자, 갑자기 전투화 바닥이 내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다.
 
 
내가 수미터를 나동그라지자 전상병은 번개처럼 달려와 내 멱살을 쥐고 다시 물었다.
 
 
"너 씨발놈아!!! 방금 전에 무슨 이름 얘기 했잖아!!! 다시 말해봐!!!"
 
 
나는 코와 입속으로 쏟아지는 빗방울 때문에 대답은 커녕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가슴에 붙어있는 이름은 조금 전에 보았던 그 명찰 속의 그것이 아니었다. 
 
 
전대웅....그의 명찰이었다. 
 
 
그 귀신이 누구에게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둘 중에 하나는 분명히 미친게 틀림없었다.
 
 
"기....기억이 안납니다."
 
 
나는 이 무서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전상병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의 대답과 함께 전상병은 내 멱살을 더 강하게 틀어쥐었다.
 
 
"콜록..콜록..."
 
 
"이 씨발놈아. 거짓말 하지마. 너 아까 뭐라고 이름 불렀잖아."
 
 
"콜록...콜록..."
 
 
나는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아아아악!!! 씨발 모른다고!!!!!!"
 
 
나는 비명 소리와 함께 멱살을 쥔 전상병의 손목을 틀어잡고 그를 향에 달려들었다.
 
 
장대비속에서 몇 초간 엎치락 뒤치락 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거기서 뭐하는거야!!!"
 
 
순찰을 돌던 당직사관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행정실에서 머리를 박고 있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근무자끼리 쌈질을 해?"
 
 
당직사관인 선임하사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전상병과 나를 향해 비아냥거리듯이 말을 뱉았다.
 
 
"야..이창훈."
 
 
"일병, 이창훈!!"
 
 
"너 미친것 아니냐? 니 고참한테 어떻게 대들 생각을 하냐? 
 
아무리 요즘 군대가 당나라 부대가 되었다고 해도 이건 아니잖아."
 
 
"시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전대웅이 너는 고참이라는 새끼가 쫄따구하고 쌈질이나 하고 자빠졌냐? 응?
 
너희 두 놈 중대장이나 대대장 알면 최소 군기교육대야... 알아?"
 
 
 
"......."
 
 
그러나 이 순간 그것보다 다른 걱정거리가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 1
  • Lv34 여신날개 기타나 칠까 2017-10-28 22:33:04

    와 개소름돋는다 개재밋다 근데 개무섭다 근데 개재밋다

     
  • 2
  • Lv03 헛개나무 가입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2018-01-03 22:49:13

    와 이거 몰입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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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36 Night_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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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상주 할매 이야기 외전 -3-(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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