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게시판
  • No. 576   1,102 hit   2017-10-25 07:34:08
그곳의 기묘한 이야기 2
  • User No : 685
  • Lv36
묵언의 합의하에 전상병과 나는 몸싸움의 이유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단지 몇 마디 나의 욕설로 인해 싸움이 일어났다는 전상병의 그럴싸한 시나리오로 마무리되었다.
 
한차례의 푸닥거리가 끝나고 나와 전상병은 내무반으로 들어섰다.
 
일병 찌끄레기가 상병 말호봉하고 몸싸움을 하다니.....
 
 
수 많은 고참들의 압박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새벽 두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인데 고참 몇몇이 잠을 이루지 않고 침상에 걸터 앉아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친개 최병장이었다.
 
어둑어둑한 와중에서도 칼자국 같은 눈 밑의 흉터는 그가 나를 바라보는 또다른 시선으로 보였다.
 
내가 그의 앞을 지나가는 내내 최병장은 검게 그을린 얼굴속에 박힌 하얀 안구의 초점을 내게 계속 맞추었다.
 
 
그의 뒤를 이어 몇몇 고참들의 따가운 시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밤을 무사히 넘길 수가 있을까?
 
날이 밝을 때까지 몇 번을 불러나갈까?
 
어떤 놈의 주먹이 제일 아플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을 쯤 최병장이 입을 열었다.
 
 
"내 밑으로 아무도 건들지 마."
 
 
순간 안도의 한 숨이 나도 모르게 내쉬어졌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최병장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아 머리를 감싸쥐고 있던 전상병을 이끌고 밖으로 향했다.
 
그 둘은 밖에서 조용히 뭔가 정보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지만 침상에 누워있는 동안 여러가지 소리들이 자그맣게 들려왔다.
 
 
최병장이 계속의 뭔가를 캐묻는 것 같았고, 전상병은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을 수차례 하는 듯 들렸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말 내가... 전상병은 보지 못한 귀신을 본 걸까? 
 
그 귀신이 죽었다는 정한수인가? 정한수는 정말 자살한 걸까? 
 
 
그런데 김선호가 누굴까? 전상병의 명찰은 분명히 김선호였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적어도 우리 부대에는 김선호가 없다.
 
왜 김선호라는 이름에 전상병이 미친 사람처럼 내게 달려든 걸까?
 
 
 
 
 
 
"이창훈 너는 당분간 위병소 근무서라."
 
 
날이 밝자 당직사관인 선임하사가 명령을 내렸다.
 
 
"네. 알겠습니다."
 
 
"고참이 좀 괴롭혀도 참아야 되는게 군대생활이다. 니 고참들은 더한 고생 참아가며 작대기 하나씩 올린거다.
 
고참이 좀 못되게 굴었다고 몸싸움하면 대한민국에 남아날 군대 없다. 
 
중대장이나 대대장한테는 보고하지 않을테니까 당분간 몸 조심해."
 
 
"네. 알겠습니다."
 
 
머릿속에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선임하사가 이상한 말을 내뱉았다.
 
 
"그런데 전대웅이 공수부대 출신이라 힘이 장사였을텐데 너도 참 대단하다. 그 놈하고 몸싸움 할 생각을 했으니"
 
 
"!!!!!!!!!"
 
 
이게 무슨 말인가? 전대웅 상병이 공수부대 출신이라니.....
 
 
"특..특전사 말입니까?"
 
 
"그래 임마. 거기서 훈련하다가 다쳐서 왔다는데 사병 세 명을 한꺼번에 일반 부대로 오기는 아주 드문 일인데...."
 
 
"나머지 두 명이 누굽니까?"
 
 
"전대웅이하고, 김창식...그리고 최병희.... 벌써 생김새 보면 딱 티가 나지 않디?"
 
 
"모...모두 같은 부대에서 온 겁니까?"
 
 
"그래. 군대에서 아주 희귀한 일이지. 특히 전대웅은 사단장의 먼 친척뻘이랜다. 말썽일으키지 마라."
 
 
이럴 수가.... 전상병, 김병장, 미친개 최병장이 모두 같은 부대에서 전입 온 병사라니...
 
 
전상병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 것일까?
 
 
 
 
 
낮 3시 근무였지만 간간히 하늘을 덮고 있는 구름으로 인해 뙤약볕은 피할 수가 있었다.
 
 
위병소 초소 밖에 나와서 근무를 서는 나와 달리 내 사수는 초소 안에서 뭔가를 열심히 탐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수미터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연륜이 느껴지는 얼굴 생김새와는 달리 그녀의 피부는 생각보다 매끈하였고, 보통의 요즘 여자들과는 달린 쪽진 머리가
 
곱게 빗어 넘겨져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그녀는 한참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니 내게 천천히 다가와 내 앞에 멈춰섰다.
 
 
 
"누구 면회 오셨습니까?"
 
 
 
나의 물음에 갑자기 그녀의 양볼에 검은 색 마스카라줄기가 흘러내렸다.
 
두 줄기의 눈물이 뺨을 적시고 있음에도 그녀는 애써 울음을 참는 듯 보였다.
 
 
나는 뜬금없는 상황에 초소안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탐독하고 있는 사수를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이내 나는 그 행동을 멈춰야만 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 아들을 찾아주시게"
 
 
"..예?"
 
 
"내 아들을 찾아주시게"
 
 
이해할 수 없는 묘한 기운이 주변을 감돌고 있었다.
 
 
나는 면회객 일지를 집어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아드님의 계급과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나는 관례상 그녀에게 묻고 있었지만 그녀는 일반적인 면회객 같아 보이지 않았다.
 
 
"......."
 
 
그녀는 입을 열지 않은 채 나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드님이 누군지 말씀하셔야 부대에 연락...."
 
 
"죽었다오"
 
 
"!!!"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는걸까?
 
 
그녀는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지금쯤 병장이 되었을 것이오"
 
 
면회객 일지에 쓸 내용이 없었지만, 오른손에 쥐어진 펜은 이미 나의 떨리는 손의 자취를 그리고 있었다. 
 
 
"아드님...이름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는 심정에 그녀에게 답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한수라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그녀는 눈 한번 깜박이지도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 아이가 원귀가 되어 이 곳을 떠돌고 있소. 찾아주시오."
 
 
도대체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이런 오금저리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긍정의 대답도 부정의 대답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다.
 
 
나는 시선을 내리고 천천히 등을 돌렸다.
 
더 이상 그녀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기를, 아니 그냥 떠나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내가 등을 돌려 발을 떼려는 순간, 그녀는 말 한마디로 내 발걸음을 붙잡고 말았다.
 
 
"그 아이를 찾지 못하면 부대원들이 죽어 나갈 것이네."
 
 
등골이 싸늘하다.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들이 죽은 뒤로 수없이 천도제를 지내게 해달라고 부대에 부탁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네.
 
아들이 원귀가 되어 이 부대를 떠돌고 있음에도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더이다."
 
 
"그런데 왜 우리 부대원들이 죽을거란 말입니까?"
 
 
나의 물음에 그 여자는 울먹이는 표정을 멈추고 갑자기 경직된 얼굴로 대답했다.
 
 
"서로 간의 처절한 살생이 일어날 수 있지. 자네도 어제 사람을 죽이려하지 않았는가?"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면회일지와 펜을 들고 있는 두 손이 동시에 떨리기 시작했다.
 
벌어진 입 속이 매말라가고 있음에도 한 모금의 침도 삼킬 수가 없었다.
 
하얀 피부에 검게 그어진 세로선이 그녀를 마치 저승사자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그런데 왜...왜 접니까? 왜 제가 아드님을 찾아야 합니까?"
 
 
그녀는 한 동안 입을 다문 채 계속해서 나의 눈치를 살폈다.
 
 
"사자(死者)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사..사자라니오?"
 
 
"죽은 자의 기운이 느껴져...."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녀는 위병소가 떠나가라 호통치듯 소리쳤다.
 
 
"곧 죽음에 직면할거라는 말일세!!!"
 
 
 
이런...씨발..
 
내가 죽는다구? 정말 내가 죽는다구? 이 씨발 미친 여자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거야?
 
이 기분 나쁜 여편네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힘껏 땅바닥에 내팽겨치기라도 해야 하나?
 
이 총의 개머리판으로 독사같은 그 주둥이를 뭉개버려야 하나?
 
삽탄된 총의 노리쇠를 당겼다가 놓기만하면 총알이 장전된다.
 
이 여자는 내가 격분하여 자신의 몸뚱아리에 총구멍을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나 있는걸까?
 
그 여자의 저주같은 독설보다 더 사악한 방법의 폭력과 위협을 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선택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단순했다.
 
이미 나는 그녀의 범접할 수 없는 무서운 기운에 주눅들어 있었다.
 
 
 
"아..아들을 찾으려면.. 제가 그럼 뭘 해야 합니까?"
 
나의 물음에 그녀는 잠시동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 또한 그녀의 답변을 기다리며 그녀의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었다.
 
잠시 후 그녀는 상의 깊숙히 숨겨두었던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도는 붉은빛의 주머니였다.
 
 
"뭡니까?"
 
 
"부적일세."
 
 
"부적?"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라네."
 
 
'삶과 죽음의 경계?'
 
 
순간 나는 얼마 전 전상병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한수 어머니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니까 그 늙은 무당이 하는 말이..부적을 몸에 지니는 순간부터 귀신을 
보게 될거라는거야.]
 
 
 
헉...어찌 이런 일이 나에게.....
 
머릿속에 저장된 여러가지 정보가 길을 잃은 듯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는 이내 허탈감을 이기지 못한 듯 조용히 말이 튀어나왔다.
 
 
"귀...귀신을 본다는 그 부적?"
 
 
작은 나의 목소리에도 그녀는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그 걸 어떻게 아는가?"
 
 
"아드님이 죽기 전에 제 고참한테 그 부적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말해줬답니다."
 
 
나의 대답에 그녀는 또 한번 눈물을 글썽거렸다.
 
 
"미안하네....정말로 미안하네....흑흑.."
 
 
"아드님도 찾고 저 뿐만 아니라 부대원들 목숨까지 건질 수 있다는데 뭐가 어렵겠습니까..."
 
 
그녀는 이내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개의치않고 그녀 손에 쥐어져 있는 주머니를 빼앗듯 집어들었다.
 
 
"이제..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눈물을 거둔 그녀는 내가 해야 될 행동들을 나열하듯 설명했다.
 
 
"그 주머니 안에는 빨간색과 노란색 두 종류의 부적이 있다네.
 
오늘 밤 해시에 노란색 부적을 태우고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시게."
 
 
"해시라면...?"
 
 
"오늘밤 9시에서 11시 사이일세. 그리고 빨간 부적은 네 장이 있는데 하나만 남겨두고 몸이 닿는 곳에 가까이 두게."
 
 
"그...그러면 그 때부터 뭐가 보이는 겁니까?"
 
 
"그렇진 않다네. 효력이 언제부터 발생할지는 나도 모른다네."
 
 
그녀는 잠시 숨을 돌리더니 말을 이었다.
 
 
"행여 귀신을 그 때부터 보더라도 놀라지 말게나.
 
아는 척도 하지 말 것이며, 절대로 말을 걸어서도 안되고, 눈을 맞추어서도 안된다네. 
 
자네가 귀신을 볼 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네 몸을 빌어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네."
 
 
그녀의 말에 갑자기 싸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그럼 아드님은 어떻게 찾습니까?"
 
 
"남은 한 장의 붉은색 부적을 넘겨주게. 그리고 이 어미의 말을 전해주게....흐흐흑...."
 
 
서글픔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그녀는 연신 닭똥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이제 살아있는 사람에서 더 이상 해를 입히지 말고 떠나달라고...어미가 간절히 바란다고..
 
그리고 짧은 인연이지만 이승에서나마 부모 자식으로 만나줘서 고마웠다고......흐흐흑
 
이승의 연이 길지 않았지만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오랫동안 행복한 삶을 살아달라고 전해주게...흐흐흑"
 
 
그녀의 울음에 나 또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런데 전..아드님 얼굴을 모릅니다."
 
 
"주머니에 작은 사진이 들어있네...."
 
 
 
 
근무가 끝난 후 나는 내내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주머니를 매만졌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
 
아니...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 것인가?
 
두려움, 공포, 무력감, 후회...또는 기대...하나로 정할 수 없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나저나 어제 이후로 전상병이 조금씩 이상해져 가고 있었다.
 
식사 시간에도 초점을 잃은 눈으로 밥이 코에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 관심도 없는 듯 숟가락을 뜨고 있었다.
 
근무시간이 한 시간 가량 남았음에도 근무 복장을 챙기고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치만 살필 뿐 아무런 안부나 위로의 말도 던질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거지? 그리고 복장은 왜 저래?'
 
 
내가 여러 생각에 잠겨 있을 쯤 선임하사가 앞에 나서 무언가를 하달했다.
 
 
"밥먹고 나서 오늘밤 8시부터 9시 반까지 야간 침투훈련 실시한다."
 
 
여기저기서 허탈감에 빠진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내일 하기로 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내일 하루종일 비가 온단다. 비 맞으면서 훈련하고 싶은 놈은 내일 해도 돼.
 
그리고 취사반은 훈련 열외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어."
 
 
선임하사의 말에 더 이상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밥먹고 나서 고양이 올가미 설치해라."
 
 
이 와중에도 김병장은 고양이 죽이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았다. 갑자기 김병장이 내 앞에 나타나 말을 걸었다.
 
 
"또..말입니까?"
 
 
순간 아차 싶었지만 김병장은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취사장 뒷편에서 나는 올가미를 만들 철사 줄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잡힌 고양이들은 지금 어디 있는걸까? 김병장이 삶아 먹었나? 아니면 오늘 고깃국에 넣은 걸까?
 
 
여러가지 생각에 올가미 설치가 늦어질 쯤 서서히 땅거미가 취사장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나는 결국 김병장의 명령대로 다시 잔밥통 주변의 개구멍에 올가미를 설치했다. 
 
 
 
취사장 일이 끝나고 나는 아무도 없는 내무반에 앉아 그 무당이라는 여자가 주고 간 부적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드디어 그 여자가 말한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심장은 터질 듯 쿵쾅거렸지만, 나는 조용히 내무반을 빠져나와 내부반 뒷편 으쓱한 곳에서 조심스레 주머니 속에 
 
감추어 두었던 물건을 꺼내 들었다. 
 
 
[오늘 밤 해시에 노란색 부적을 태우고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시게.]
 
 
시간이 아홉시가 넘었음을 확인한 나는 주변을 조심스레 살피며 그 노란 부적에 불을 붙였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난 이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부적이 나와 부대원의 목숨을 구하고, 이 부대의 알 수 없는 비밀을 풀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닥에 깔아놓은 하얀 종이 위에 회색빛으로 노란색 부적의 재가 모아졌다.
 
 
나는 물이 담긴 컵에 그것을 털어넣고 한모금에 마셔버렸다.
 
 
 
'이제...뭐가 보인단 말이지?'
 
 
그 여자도 확신하지 못하는 결과를 나는 이미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붉은색 부적을 온 몸 이곳저곳에 쑤셔넣었다.
 
 
 
이 때 내무반과 붙어있는 행정반에서 요란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개새끼야!! 실탄이 든 탄창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
 
 
누군가와 전화상으로 얘기하는 것으로 보아 근무자가 틀림없었다.
 
 
"뭐? 실탄?"
 
 
 
불현듯 낮에 그녀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 아이를 찾지 못하면 부대원들이 죽어 나갈 것이네.]
 
 
"씨발...귀신이 실탄을 가져갈 일도 없고......"
 
 
그 순간 저녁 시간 때 넋을 잃은 모습으로 밥을 먹던 전상병이 떠올랐다.
 
 
"전대웅!!!"
 
 
나는 야간 침투 훈련이 실시되고 있는 취사장 뒷편의 야산을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취사장 쯤 도달하자 올가미가 설치된 잔밥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누군가 낯선 이도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총을 메고 썩은 내가 진동하는 잔밥통 앞에서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누구...?"
 
 
그 순간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행여 귀신을 그 때부터 보더라도 놀라지 말게나. 아는 척도 하지 말 것이며, 절대로 말을 걸어서도 안되고,
눈을 맞추어서도 안된다네]
 
 
미친 듯이 숟가락질을 하던 그가 잠시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헉....씨발...'
 
 
삼장이 터져나갈 듯 요동치고 있었다. 전기에 감전이 된 듯 오금이 저리로 발을 한걸음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맞추지 않기 위해 애써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후들거리는 다리를 들어 한걸음씩 그의 옆을 스쳐 지나기 시작했다.
 
곁눈질이었지만 그는 전쟁 중인 군인 같았다. 땀인지 피인지 모르는 검은 액체가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듯 보였다.
 
무서워서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수미터 이상을 더 걸었다. 그제서야 내 뒤편에서 바쁜 숟가락질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수십미터 앞에 구름 사이로 비친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에서 훈련 중인 부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야간 침투 훈련이라 모두 자세를 낮추고 매우매우 느린 속도로 산정상을 향해 걸어나갔다.
 
 
풀섶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감췄다를 반복하며 부대원들은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그런데 부대원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나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그들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제촉했다.
 
 
양쪽에 검은 산능선을 끼고 억새풀과 잡초로 우거진 평지에서 부대원들이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었다.
 
 
누가 누군지 잘 구분되지 않았지만 나는 어둠속에서 그들을 뒤따르며 숨죽인 목소리로 선임하사를 불렀다.
 
 
"선임하사님...."
 
 
나의 목소리가 작았는지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라도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조금 가까이 접근하여 그를 불렀다.
 
 
"선임하사님...?"
 
 
그러나 이내 그 부름을 멈춰야만 했다.
 
 
내 앞에서 산정상을 향해 소리없이 전진하는 그들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소리없이 전진하는 그들.......정말로 억새풀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어디서 그렇게 뒹굴다가 왔는지 하나같이 흙투성이가 된 옷을 입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두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누군가 뒤돌아 보기를 바라며 선임하사를 불렀지만, 지금은 누군가 뒤돌아 볼까봐 가슴을 졸여야 했다.
 
 
 
 
 
"너...이창훈 아냐?"
 
 
순간 내 등 뒤에서 나를 알아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선임하사였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부릅 뜬 눈으로 선임하사를 쳐다보았다.
 
 
"너 이 자식...여기서 뭐하는거야?"
 
 
 
나는 다시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서는 억새풀 사이를 스치는 싸늘한 바람 소리만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등골을 찢는 듯한 공포가 밀려왔다.
 
 
나는 힘겹게 마른 침을 한 번 삼켰다.
 
 
 
 
"야..임마. 여기서 뭐하는거냐니까?"
 
 
"다...다들 어디 갔습니까?"
 
 
"이 자식이 귓구멍에 전봇대를 박았나...아까 훈련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다 들 어디에 있습니까?"
 
 
"매복 중이잖아."
 
 
그제서야 나는 선임하사 뒤 풀숲 사이에서 나를 쳐다보는 여러 개의 눈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저 앞에 가던 부대...."
 
 
나는 고개를 돌려 그들이 있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무슨 부대?"
 
 
 
역시 선임하사는 그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았다.
 
 
".....전대웅 상병 어딨습니까?"
 
 
"전대웅? 전대웅은 왜?"
 
 
그 순간 어둠에 묻힌 풀숲 사이에서 누군가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선임하사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무시한 채 풀숲을 헤치고 그를 향해 걸어갔다.
 
 
"야! 이창훈!! 저 새끼가 미쳤나?"
 
 
선임하사의 욕설과 분노는 이 상황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상병의 앞에 서자마자 나는 그가 들고 있는 소총의 총부리와 개머리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전상병은 내게 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보다 더한 힘을 주어 움겨 쥐었다.
 
 
 
 
나 또한 이제 질세라 입을 굳게 다물고 그가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더욱 세게 총을 움켜 쥐었다.
 
 
 
나의 손과 팔은 힘에 겨워 떨림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는 전혀 힘들어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내게 얼굴을 가까이 하더니 물었다.
 
 
"너...뭐하는 새끼야?"
 
 
그의 부릅 뜬 두 눈과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정은 그가 제정신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나 또한 제정신이 아니다.
 
 
"너....너 누구야? 총 이리 내.."
 
 
나의 물음에 그는 살기가 묻어나오는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재빨리 그의 총에서 탄창을 분리하였다.
 
 
"퍽"
 
 
그와 동시에 그가 휘두른 소총의 개머리판이 내 가슴에 떨어졌다.
 
 
나는 수미터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으으..윽...."
 
 
 
탄창을 손에 쥔 채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나에게 선임하사가 달려왔다.
 
 
 
 
"이 개새끼들!! 뭐하는거야!! 또 쌈질이야!!"
 
 
선임하사의 호통 소리에 짙은 어둠 속에서 매복해 있던 십수명의 부대원들이 풀숲 사이에서 일어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창훈..너 이 새끼 훈련장 와서 뭐하는 짓이야?"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나는 오른 손에 쥐고 있던 탄창을 확인해야만 했다.
 
 
예상대로  빈 탄창이 아닌 실탄이 들어있는 탄창이었다.
 
 
 
 
"뭐야 이거......"
 
 
내 오른손에 쥐어있는 탄창을 본 선임하사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실탄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실탄을 끼워넣는 자리에 붙여놓은 봉인딱지가 보이지 않았다.
 
 
 
 
"헉....한 발이 장전되어 있어...."
 
 
그 말과 동시에 나는 용수철에서 튕겨 나가 듯 전상병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이~~야아아아아!!"
 
 
"탕!!!"
 
 
눈이 멀 것 같은 섬광과 함께 고막을 파열시킬 듯한 천둥소리가 내 머리를 때렸다.
 
 
그리고 주변의 산능선을 타고 총소리의 메아리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희뿌연 영상에서 소란스런 주변의 목소리들이 자그맣게 들려왔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선임하사가 나를 향해 뭐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 같았지만 그 소리는 고막을 진동시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초첨을 맞추려고 애를 썼지만, 내 눈앞의 영상은 서서히 어둠속에 묻히고 있었다.
 
 
 
 
 
 
 
"이창훈 일병? 정신이 드나?"
 
 
의사 복장을 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힘없는 눈으로 주변을 조심스레 살펴보니 이 곳이 의무대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나를 깨운 사람은 군의관이었다.
 
 
"천만 다행이네. 총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어. 1센치만 안으로 들어가 스쳤어도...자넨 죽은 목숨이었을거야."
 
 
몸을 일으키자 잠시 오른쪽 이마 부분이 욱신거렸다.
 
 
붕대 대신 커다란 반창고가 이마에 붙여져 있었다.
 
 
군의관은 병실에 있던 전화기를 이용해 누군가에게 내가 깨어났음을 알렸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부대로 복귀해도 되네. 그런데 먼저 헌병대를 들렀다 가야겠네."
 
 
"헌...헌병대 말입니까? 헌병대를 제가 왜 가야 합니까?"
 
 
"총기 사고는 일단 헌병대 조사를 받게 되어 있어. 수사관이 사건 경위에 대한 조서를 꾸밀 수 있도록 진술을 해야 돼."
 
 
".........."
 
 
군의관은 잠시 내 머리맡에 있는 작은 봉투를 들어 보였다.
 
 
"이거 자네건가?"
 
 
"뭐..뭡니까?"
 
 
"부적 같아 보이던데...자네 옷에서 나왔네."
 
 
"네...."
 
 
"후후...부모님이 주신 건가 보지?"
 
 
"........"
 
 
 
군의관은 봉투를 나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하여튼 다시는 의무대에 올 일이 없길 바라네."
 
 
 
 
 
 
 
 
태어나서 처음 대면하는 군수사관이라 논리적인 진술을 하려는 생각보다 두려움이 먼저 밀려왔다.
 
 
"음...그러니까 전대웅 상병이 다음 근무자에게 넘겨줘야 할 실탄이 든 탄창을 숨기고 빈 탄창을 넘겨줬다?"
 
 
"네. 그렇습니다."
 
 
수사관은 연신 손가락 사이로 펜을 돌리며 치켜 든 눈으로 힐끔힐끔 나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도 전대웅 상병일거라고 생각을 못했다는데 넌 그 걸 어떻게 알았지?"
 
 
"그..그냥 수상했습니다."
 
 
"....."
 
 
"그냥 낮부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이상해 보였습니다."
 
 
"....뭐야? 그게 다야?"
 
 
 
나는 모든 걸 부정하고 싶어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냥 직감적으로...."
 
 
수사관은 펜을 입에 물고는 나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전대웅은 군검찰로 이송되서 재판을 받을거야. 혹시 군검찰에서 소환명령이 떨어져서 증언을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돼. 전대웅도 지금 자신이 한 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
 
조금이라도 제 3자가 믿을 만한 말을 해야지. 안 그래?"
 
 
"......"
 
 
 
"음...좋아. 일단 여기까지 하자."
 
 
수사관은 조서 작성을 마쳤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날 따라와. 전대웅이 너하고 면담을 원한다."
 
 
 
"절 말입니까?"
 
 
 
"너 한테 사과를 하고 싶단다."
 
 
 
 
 
 
 
유치장의 철창살을 가운데 두고 전상병과 나는 마주 앉았다.우리는 한참 동안을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기만 하였다.
 
 
"미안하다..."
 
 
전상병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까맣게 그을린 두꺼운 살더미 사이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 분간하기 힘든 눈시울에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나 또한 어렵게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까?"
 
 
"그 걸 왜 나한테 물어? 다친 건 너잖아..."
 
 
나는 이마에 붙여진 커다란 반창고를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에 전상병도 눈물어린 표정의 미소로 답하였다.
 
 
 
어젯밤에 보았던 그 살기어린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 지금 내 앞에는 장난끼 가득한 어린 아이가 있었다.
 
 
"너...사회에서 만났으면 그냥 좋은 친구였을텐데....어쩌다가 군대에서 고참 쫄따구로 만나서 이 고생이냐.."
 
 
"......."
 
 
 
나는 잠시 말없이 머리를 긁적였다.
 
 
 
수미터 떨어져 우리를 지켜보던 수사관이 자신의 시계를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난 밖에 나가서 담배 한대 피고 올테니까, 얘기 잘 마무리 해라."
 
 
수사관이 자리를 비운 걸 확인한 전상병은 잠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입가의 미소를 지우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 얘기 잘 들어...."
 
"나와 김창식 병장, 그리고 최병희 병장은 OO공수여단에서 사병으로 근무했어."
 
 
"..선임하사에게 얘기 들었습니다."
 
 
"그래...알고 있었군. 원래 공수여단은 부사관으로 꾸려지지만, 전산이나 행정같은 업무는 주로 사병들이 맡아.
 
 
그런데 TO가 다 차면 전입한 사병들도 어쩔 수 없이 부사관들과 훈련을 같이 받지. 
 
 
 
*** TO(티오) : TO는 table of organization의 약자로서 정원(일정한 규정에 의하여 정한 인원)을 뜻한다.***
 
 
 
 
 
우리 세 명은 TO가 차는 바람에 모두 부사관들과 같이 내무반 생활을 하며 훈련을 받았던 거야.
 
 
그 와중에 김창식 병장이 낙하산 강하훈련 중에 허리와 골반을 다쳤어.
 
 
얼마 뒤 김창식 병장은 취사반에 배정 받아서 그 때부터 취사일을 배우게 된거야.
 
 
그 부대엔 최병희 병장보다 고참인 한동철이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칼을 엄청나게 잘 다루는 사람이었어.
 
 
김창식 병장도 그 사람한테 칼질을 배운거야.
 
 
 
굉장히 우직하고, 말이 없는 성격이었어. 훈련이고 뭐고 맡겨진 일은 철두철미하게 수행했지.
 
 
그래서 간부들이 항상 부사관들 못지 않다며 항상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었어.
 
 
 
게다가 우리들에게도 훈련비법 같은 것을 항상 전수해 주며 부사관들보다 뒤쳐지지 않도록 도와줬어.
 
 
 
사병들이 훈련에서 부사관들보다 뒤쳐지는 것을 한동철은 죽기보다 싫어했지.
 
 
 
 
그런데 문제는.........한동철이란 그 사람은 조울증인지 뭔지 알 수없는 정신병 같은게 있었어.
 
 
한 번 머리가 돌아버리면 습관적으로 칼을 던져. 지금의 김병장이 하는 것처럼 말야.
 
 
그런데 김병장도 따라할 수 없는 더 섬찟한 것은 사람을 세워놓고 칼을 던지기도 한다는거야. 
 
 
서커스에서 사람 세워놓고 빈 자리에 칼을 던져서 맞추는 것처럼 말야.
 
 
그럴 때는 미친 놈이 따로 없었어. 나는 졸병이어서 당한 적이 없었는데 김창식 병장과 최병희 병장은 많이 당한 것 같았어.
 
 
너도 알다시피 김창식과 최병희도 보통 성격이 아니잖아.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한동철 앞에서는 꼬리내린 강아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한동철한테
 
 
길들여졌었는지 알 수 있었지.
 
 
나도 언제 당할 지 몰랐어.
 
 
너무나 무서웠던 나는 부사관이나 부대 간부들에게 이 사실을 말할까도 했지만, 솔직히 한동철을 처벌하기도 전에
 
 
한동철의 대검을 먼저 맞을 것 같았어.
 
 
조금만 버티면 됐었어. 6개월만 버티면 그 놈은 제대하거든...
 
 
그런게 그렇게 좋으면 부사관으로 지원해서 빡세게 군대생활 하든지 그랬어야 하는데, 자기는 재수가 없어서 이런데
 
 
배치 받았다며 늘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지.
 
 
게다가 한동철은 부사관들을 너무 싫어했어.
 
 
자기보다 나이 어린 하사가 계급이 높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반말을 하는 걸 굉장히 혐오스러워 했지.
 
 
늘 어떤 아무개..아무개 놈들을 내 손으로 죽여버릴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곤 했어.
 
 
 
그래서 한동철은 부사관들에게 지지않기 위해 그렇게 기를 쓰고 훈련을 받았는지도 몰라.
 
 
고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한 한동철은 학력 컴플렉스까지 있었어.
 
 
 
대학물을 먹은 나같은 애들을 쓸데없이 갈구기도 했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나는 처음 듣는 괴담같은 얘기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니가 말한 김선호...김선호라는 신입병이 들어왔는데, 이 자식도 TO가 차는 바람에 같이 내무반 생활을 하게 된거지.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 김선호는 내무반 생활을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녀석이었어.
 
 
덩치도 크고, 우람했지만 친구도 없어서 하루종일 pc방에서 게임을 하든가, 아니면 프라모델 장난감이나 혼자 조립하고 있을
 
 
그런 어리숙하고 착하게 생긴 계집애 같은 성격의 녀석이었지. 목소리도 여자 같아서 부사관들이 항상 '우리 선숙이..선숙이..'
 
 
 
이러면서 엉덩이를 툭툭 치며 여자처럼 대하기도 했어.
 
 
낙하산 강하, 천리 행군, 생존 훈련....김선호는 도저히 이런 것들과 어울리지 않을만큼 체력적으로도 약했어.
 
 
 
간단한 구보만 해도 뒤쳐지기 일쑤였어. 늘 부사관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지.
 
 
부사관들의 놀림거리가 된 그런 김선호를 한동철은 너무나도 싫어했어.
 
 
게다가 김선호는 한동철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인 유명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었거든.
 
 
 
어쩌다 그런 녀석이 공수부대에 오게 되었는지 당최 알 수 없었지.  나중에 알고 보니까 여단본부 전산 특기병으로 오게 된거야.
 
 
 
그런데 TO가 다 차서 당분간만 내무반 생활을 같이 하게 되었던거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
 
 
지상공수훈련이 있었던 날이였어.
 
 
부사관들과 내무반 소속 사병들은 단 한명의 열외도 없이 막타워에서 줄을 메고 강하훈련을 하고 있었지.
 
 
그런데 김선호 차례가 된거야.
 
 
어땠겠냐? 응?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난리가 난거야. 막타워 점프대 입구에서 울고불고...
 
 
김선호 입장에서는 줄 하나에 목숨을 맡기고 막타워에서 뛰어내린다는게 얼마나 공포스러웠겠냐?
 
 
말도 마라. 조교들은 정신봉이란 죽도를 들고 다니거든?
 
 
훈련에서 뒤쳐지거나 지시에 잘 따르지 않으면 그 죽도로 사정없이 내려쳐.
 
 
물론 외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지. 그냥 정신차리라는 신호 중의 하나야.
 
 
김선호는 조교가 죽도를 미친듯이 내리쳐도 뛰어내리지 않는거야.
 
 
점프대 아래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부사관들은 배꼽을 잡으며 다들 뒤집어졌지.
 
 
 
어떤 부사관들은 '선숙이'를 외치며 환호를 보내기도 했어.
 
 
그런데 거기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한동철도 있었어.
 
 
결국 조교가 발로 차버리면서 김선호는 계집애 같은 비명소리와 함께 그 날 막타워 훈련을 마치게 될 수 있었지.
 
 
저녁이 되자 한동철이 사병들을 집합시켰어.
 
 
그 날도 대검을 들고 말이야. 우리는 10분이 넘도록 얼차려를 받았어.
 
 
나와 김창식 병장, 최병희 병장은 우습게 끝낼 수 있는 정도였는데 김선호가 문제였어.
 
 
푸시업 10개도 제대로 못하는 거야. 한동철이 그랬지. 죽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하라고...
 
 
그런데 김선호가 그런거야.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한동철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어.
 
 
신병이 하늘같은 고참한테, 그것도 제대를 몇 개월 남기지도 않은 병장한테, 그것도 정신병자 같은 한동철한테....
 
 
그런 말을 했으니 그걸 듣고 있던 우리 심정이 어땠겠냐?
 
 
한동철은 한 동안 할 말을 잃고는 김선호를 내려다 봤어.
 
 
 
한동철은 김선호의 머리를 대검으로 톡톡 치며 김선호를 일어나라고 명령했지. 그리고 벽에 기대고 세워져 있는 합판 앞에
 
 
 
서라는거야.
 
 
그 때 말렸어야 했어...흑흑.."
 
 
 
 
 
전상병은 입술을 깨물며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
 
 
 
 
나는 말없이 측은한 표정으로 어린 아이처럼 소매자락으로 눈물을 닦는 전상병을 바라보았다.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김선호는 병신같이 멀뚱멀뚱 서 있다가 몇 대 처맞고 그 앞에 선거야.
 
 
한동철은 김선호에게 눈감고 가만히 서 있으라고 했지. 그런데 사람이 어디 그러냐?
 
 
 
무슨 일인지 궁금하니까 김선호는 눈을 감은 척 하더니 실눈으로 한동철의 행동을 본 거야.
 
 
칼을 던지는 모습.....본능적으로 김선호는 몸을 돌리며 옆으로 수그렸어.
 
 
그런데 한동철의 손을 떠난 대검이 목표를 잃어버린 채 김선호의 왼쪽 어깨에 꽂혔버린거야.
 
 
난 처음으로 사람의 몸에서 심장박동에 맞춰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것을 보았어. 동맥이 끊어진거야.
 
 
늦었지만....너무나도 늦었지만...그제서야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한동철에게 달려 들었지."
 
 
 
 
 
 
 
전상병은 그 때 상황이 아직도 생생한지 깍지 낀 두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전상병에게 물었다.
 
 
 
 
"김선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어."
 
 
 
 
그랬다. 내가 근무지에서 전상병과 뒤엉킨 날 나는 김선호를 보았던 것이다. 갑자기 등골을 따라 한기가 내려앉았다.
 
 
 
 
"한동철은 군교도소에 수감됐어. 징역을 사는 기간이 몇 개월인지 몇 년인지 우리는 관심이 없었어.
 
 
우리가 제대하는 동안만 다시 돌아오지 않길 바랬지.
 
 
남은 우리는 김선호가 죽던 그 현장에서의 기억 때문에 미칠 것 같았어.
 
 
한동철의 살인 행각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았지.
 
 
불면증은 물론이고, 우울증까지 걸릴 것 같았어.
 
 
어느 날 나는 휴가를 나와 부모님께 이러한 사실을 말했어.
 
 
그랬더니 아버지 말씀이 먼 친척 중에 보병부대 사단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거야.
 
 
나는 아버지께 사정했지. 그 분한테 말을 해서 제발 부대를 옮기게 해달라고.....
 
 
그리고 난 부대에 돌아왔어. 그런데 또 다른 이상한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거야."
 
 
 
 
 
"무슨 상황 말입니까?"
 
 
 
 
 
"김창식 병장이 이상해진거야. 고양이만 보면 죽여."
 
 
 
나는 갑자기 김병장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알 수없는 공포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미친 것 같았어. 이유도 없이 그냥 고양이만 보면 죽이는거야.
 
 
 
그런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최병희 병장이 얘기를 해준거야.
 
 
만일 부사관들이나 간부들이 봤다면 당장 어느 정신병원에 수감시켰을거야. 이유를 물으면 그냥 고양이가 싫다는거야.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렇지가 않았어. 무슨 이유가 있는 것 같았지. 그러나 김병장은 절대로 이유를 말하지 않았어.
 
 
 
 
얼마 뒤 여단본부에서 전출 명령이 떨어졌어.
 
 
아버지가 힘을 썼는지 나는 이 곳으로 전입오게 되었지.
 
 
천국 같았어. '같았어'가 아니라 그냥 천국이었어. 모든 것을 잊고 나는 새로 시작할 수 있었어.
 
 
누구도 내 과거를 알 지 못한다는게 나는 너무나도 좋았어.
 
 
죽은 김선호에 대한 죄책감도 많이 수그러들었지.
 
 
며칠간은 잠도 잘 잘 수 있었고....
 
 
그런데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어.
 
 
원래 부대 입장에서는 김병장과 최병장이 남아 있는 것을 껄끄러워 했나봐.
 
 
그 둘을 함께 묶어 이 곳으로 보내버린거야. 두려웠지만 우린 서로를 무시했지.
 
 
그 어떤 합의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할거라는 걸 우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
 
 
그리고 실제로 편했어. 김병장이나 최병장이나 얼굴색이 변할 만큼 행복해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이 곳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신병이 한 명 들어왔어.
 
 
후반기 교육을 받고 자대배치를 받은 나보다 고참인 신병.....정한수를 만나게 된거야.
 
 
 
죽었다는 무당의 아들.....
 
 
그를 만나면서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았던 우리의 군대 생활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지."
 
전상병은 잠시 마른 눈물을 닦아냈다.
 
 
"죽은 정한수가 했던 말....그 말을 난 김창식 병장과 최병희 병장한테 말하고 말았어."
 
 
"무..무슨 말 말입니까?"
 
 
"죽은 정한수가 그랬잖아. 땅구덩이에서 쏟아져 나온 귀신 중 하나가 김창식 병장한테 붙었다고....
 
 
 
부적 얘기부터 해서 정한수가 내게 했던 말을 낱낱히 털어놓았지.
 
 
그 말을 들은 김병장은 엄청나게 두려운 기색을 보였어. 그냥 실성한 놈이 허튼소리 했다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유독 김병장은 그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거야. 죽은 김선호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 보였어.
 
 
 
우리 모두가 잊고 싶었던 기억에서 김병장은 벗어나지 못했던거야
 
 
난 분명히 확신해. 정한수의 부적을 없애버린 사람은 김창식 병장이야.
 
 
그래서 정한수가 죽은 거고, 그 사실을 나차럼 짐작하고 있는 최병장은 그 뒤로 김병장을 엄청나게 갈구기 시작한거야."
 
 
 
 
 
어린 아이처럼 손톱을 깨물고 있는 전상병은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5초소가 생기기 전....5초소 자리에 밤마다 누군가가 돌아다닌다는 사병들의 얘기 때문에 5초소를 만들었던 거야.
 
 
 
명목상은 민간인 출입이나 적의 침투 경로 차단이었지만 다 들 알고 있었어.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것.
 
 
 
다 들 죽은 정한수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수근거렸지.
 
 
그런데 근무를 서면서 니가 나한테 죽은 김선호 얘기를 한거야.
 
 
난 심장이 멎을 것 같았지. 잊고 싶었던 악몽같은 기억이 다시 나를 고문하기 시작했어.
 
 
최병희 병장한테 그 얘기를 했지만 최병장은 나를 미친 놈 취급했어.
 
 
이 부대에 죽은 김선호가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정말 심장이 터져나갈 듯 두려웠어.
 
 
 
왜 김병장이 정신병자처럼 고양이를 그렇게 죽이는지 그 심정이 이해되는 것 같았어."
 
 
 
 
"수사관이 그러던데 어젯밤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정말입니까? 실탄을 들고 갔던 기억이 전혀 없었습니까?"
 
 
 
 
"실탄은 내 의지로 챙긴거야. 두려움이 몰려와 어쩔 수가 없었어. 어둠이 깔린 풀숲에서 김선호를 볼 것 같았어.
 
 
아니...김선호의 혼령에 지배당한 누군가가 나를 해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실탄을 챙겼어. 쏠 생각도 없었고, 죽일 생각도 없었어. 단지, 장전된 그 총이 없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았어.
 
 
매복훈련이 계속되자 조금씩 졸음이 몰려왔어. 그리고 그 다음 일이 기억에서 사라진거야. 귀신들린거야...분명히.."
 
 
 
전상병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런데..너 정말 김선호를 어떻게 안거냐?"
 
 
전상병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의 표정으로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상병님 명찰에 적혀 있는 이름이 김선호였습니다."
 
 
"..........."
 
 
전상병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부대에 김선호가 있어...김병장과 최병장이 위험해. 김선호가 그들한테 붙어서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김병장이 고양이를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도 고양이가 죽은 김선호를 불러내기라도 할까봐 두려운거야.
 
 
김선호에 대한 죄책감을 지우려고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행동인지도 몰라.
 
 
전에 니가 그랬잖아. 고양이가 아닌 사람이 귀신을 알아보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칼잡이 김병장이 누구에게 식칼을 던져버릴지 몰라.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돼. 그런데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전상병에게 나는 조심스레 작은 봉투를 꺼내 그 안에 들어있는 부적을 보여 주었다.
 
 
 
 
 
"아니!! 니...니가 그걸 어떻게?"
 
 
"죽은 정한수 엄마가 저에게 준겁니다. 귀신을 보여 줄거라고..."
 
 
"뭐? 뭐라구?"
 
 
"어젯밤 사고가 있기 전 귀신들을 보았습니다. 훈련 중인 부대원들 이상가는 많은 수의 귀신을 말입니다.
 
 
그리고 전상병님과 몸싸움을 할 때도 알 수 없는 낯선 기운을 느꼈구요.
 
 
무당이라는 정한수 엄마가 자신의 아들을 찾지 못하면 우리 부대원들이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한수라는 사람을 찾아 그를 위로하여 그들의 세상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김선호는? 죽은 김선호는 어떡하고?"
 
 
"저는 그 사람 얼굴도 모릅니다."
 
 
"그냥 어떻게 해서든 찾아...."
 
 
 
 
 
잠시 후 수사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상병은 나에게 다가와 차가운 철창살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니가 부대원들과 내 목숨을 살렸다. 나중에 사회에서 다시 만나거든 우리 꼭 살아 있는 모습으로 보자."
 
 
 
전상병은 마른 눈물자국 위로 또 다른 눈물을 쏟아냈다.
 
 
 
"그 때는 우리 과거를 잊고 정말 좋은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다."
 
 
"........"
 
 
 
나는 슬픔과 서러움에 일그러진 전상병의 얼굴을 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부대에 돌아온 나는 중대장부터 시작해서 모든 간부들과 면담을 해야만 했다.
 
 
대량 살상 사고를 막은 공로로 대대장 표창과 함께 포상휴가가 있을거라는 얘기도 들려 주었다.
 
 
어쩌면 먼 친척뻘 되는 사단장의 지시였는지도 모른다.
 
 
예상대로 김창식 병장과 최병희 병장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단초?"
 
 
"네. 며칠만 단초를 서게 해주십시요."
 
 
"너 미친 것 아냐? 그건 안돼. 부대 인원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규정상 단초는 설 수가 없어."
 
 
근무자 배정을 담당하는 선임하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내 얘기를 받아들였다.
 
 
"며칠만입니다. 부탁입니다. 선임하사님."
 
 
"너 왜 단초근무를 서려고 하는데? 일병생활 하니까 힘드냐? 자살이라도 하려고? 전에 이 부대에 자살 사고가 있었다는 것
 
 
너도 알고 있지? 아니면 탈영이라도 할꺼냐?"
 
 
 
"자살을 할거면 뭐하러 단초 근무까지 요청을 하겠습니까? 산에 올라가서 그냥 목이라도 매달면 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곧 포상휴가를 갈 사람이 탈영을 하기 위해 단초 근무를 요청합니까? 그냥 휴가 나가서 안들어오면 되지."
 
 
 
"아~~~ 이 새끼..특이한 놈이네. 딴 놈들은 무서워서라도 싫어할텐데...진짜 이유를 말해봐.
 
 
 
이유가 분명하면 허가해 주지."
 
 
선임하사의 말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말하라니까...."
 
 
"...귀신을 만나야 합니다."
 
 
내 말에 선임하사는 멍하니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급스런(?) 단어를 사용하며 입을 열었다.
 
 
"아주 지랄염병을 하는구나."
 
 
 
"......."
 
 
 
"너 혹시 귀신 볼 줄 아냐?"
 
 
"네. 총기 사고가 있던 날도 훈련 중인 귀신들을 보았습니다."
 
 
 
선임하사는 놀란 듯 내 답변에 말을 잇지 못하였다.
 
 
"헌병대에서 전대웅 상병을 면담했는데 전상병도 자기가 귀신들렸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사건이 또 일어날 지도 모릅니다."
 
 
 
선임하사의 눈빛은 내 말을 불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5초소가 생기기 전에도 많은 귀신 소동이 있었을 것이다.
 
 
 
설득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난 선임하사를 설득하기 위해 김선호와 정한수 얘기를 동원하지는 않았다.
 
 
"귀신을 만나면 뭘 어떻게 할건데?"
 
 
"그들을 위로해서 저승으로 보내야 합니다.."
 
 
"헐...무슨 니가 법사냐? 퇴마사야?"
 
 
"저 아니었으면 전상병의 소총에 몇 명이 죽은 송장으로 변했을지 모릅니다. 선임하사님...며칠만 서겠습니다.
 
네? 제발 부탁입니다."
 
 
"헐..미치겠네. 좋아. 대신 실탄은 소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는 내가 정한다."
 
 
"안됩니다. 선임하사님."
 
 
"아~~ 씨발 뭔 요구사항이 그렇게 많아? 부대에서 인기스타가 되었다고 아주 나를 개X으로 보는구나."
 
 
선임하사는 짜증스러운 듯 모자를 벗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실탄은 소지하지 않아도 되는데 근무지는 5초소, 시간은 자시로 해주십시오."
 
 
"자시?"
 
 
"밤 11시에서 새벽 1시 말입니다."
 
 
"니미럴, 이젠 법사나 퇴마사들이 쓰는 용어로 말하고 있네...근데 두 시간이나 서겠단 말야?"
 
 
"네. 어차피 제가 한 시간이라도 더 서면 근무자 돌리기가 더 수월하지 않습니까?"
 
 
"니미...내 걱정까지 해주고 있네. 알았어. 대신 딱 3일이다."
 
 
"사랑합니다. 선임하사님!!"
 
 
나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선임하사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손놔!! 자식아!! 소대장이나 중대장이 당직 서는 날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다른 선임하사들이 당직 서는 3일간만
 
 
단초로 서는거다. 그리고 이 얘기는 너만 알고 있어야돼. 근무자들하고 교대할 때는 니 사수가 당직사관하고 같이 있다고 말해.
 
 
그리고 그럴리는 없겠지만 자살이나 탈영할 생각은 꿈도 꾸지마. 그러면 난 X되는거야"
 
 
 
"네. 선임하사님!! 꼭 명심하겠습니다!!"
 
 
선임하사는 잠시 근무자 명단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좋아...그럼...오늘 내가 당직이니까 오늘밤부터 시작한다."
 
 
 
 
 
밤 10시 취침....잠이 오지 않았다. 어차피 11시부터 근무니 10시 반이면 일어나야 한다.
 
 
나는 침상에 바로 누운 채 주머니 속의 부적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3일 동안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겨낼 수 있을거란 다짐으로 나는 부적을 꼭 움켜쥐었다.
 
 
시간이 되었다.
 
 
 
나는 복장을 갖추고  교대시간에 맞추어 근무지로 향하였다. 오늘따라 유달리 주변 경관이 음산하게 느껴졌다.
 
 
취사장 뒤로 돌아 어둠에 싸인 5초소로 가는 길....한기를 머금은 싸늘한 달빛만이 내가 걷는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아직도 5초소까지 가기 위해서는 산속 길을 백여미터나 더 걸어야 했다.
 
 
 
 
그 때 잔밥통 주변에 도달한 순간 내 눈에 둘어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올가미에 뭐가 걸려들어 몸부림치며 켁켁대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고양이...내가 죽는다면 아마 난 고양이의 저주로 죽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어둠속의 요동치는 형체가 고양일거라고 믿으며 나는 가까이 그 곳에 접근했다.
 
 
 
김병장 몰래 고양이를 풀어 줄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근거없는 믿음은 곧 공포로 돌변하였다.
 
 
사람이었다. 아니...귀신이었다.
 
 
 
어젯밤 잔밥통 앞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던 그 병사였다.
 
 
그날 보았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땀인지 피인지 모를 검은 액체가 얼굴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손으로 목에 걸린 올가미를 움켜쥔 채, 잔밥통 주변에 떨어진 기름찌꺼기 위에서 연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켁켁!! 켁켁!!"
 
 
올가미의 압력에 검은 눈동자가 사라진 하얀 눈알이 곧 튀어나 올듯 부풀어 있었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숨넘어가는 소리와 발버둥 소리를 외면한 채 그의 옆을 지나기 시작했다. 
 
 
 
"켁켁!!"
 
 
그러나 이내 나는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켁켁..이봐...거기....켁켁..."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켁켁...이봐...거기..이것 좀 풀어줘...켁켁..."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거의 죽어가는 모습으로 그는 다급하게 한번 더 나를 불렀다.
 
 
 
 
"켁켁...어제 밥 먹고 있을 때..켁켁 나 봤잖아...."
 
 
 
 
그의 눈알은 거의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나는 그 무당 여자의 말과 지금 쓰러져가는 저 귀신병사에 대한 두려움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의 목에 감긴 올가미를 풀어냈다.
 
 
 
 
 
"콜록! 콜록....아~~ 죽을뻔 했네. 어떤 자식이 여기다가 올가미를 쳐논거야?"
 
 
"......."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내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한건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죽은 놈이 뭘 또 죽나?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음에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목주변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찾았다.
 
 
 
 
"내 밥...내 밥 어딨지?"
 
 
 
 
주변을 더듬거리던 그 병사는 이내 자신의 반합통을 찾아내고는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허겁지겁 밥인지 죽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입에 우겨넣었다.
 
 
 
 
"오랜만에 사람 보네."
 
 
"네?"
 
 
 
 
그는 허기가 가시지 않는지 바쁜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 동안 말없이  그를 지켜보던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이봐요..."
 
 
 
 
나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서는 정체모를 음식물의 국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왜 그러슈?"
 
 
"...나..난 사람이예요."
 
 
"뭐요? 누가 사람 아니랬소?"
 
 
 
 
그러더니 그는 다시 반합통 속의 음식물을 퍼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를 알 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그 자신의 정체를 말해주고 싶었다.
 
 
 
 
"다..당신은.."
 
 
 
 
내가 입을 열려고 하자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부대원 들이오."
 
 
 
 
그가 고개를 한 번 까딱이며 내 뒤에 시선을 맞추었다.
 
 
나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십수명의 병사들이 실루엣을 그리며 서 있었다.
 
 
 
 
 
"헉!!"
 
 
 
 
나는 순간 다리 근육에 힘이 풀려 이내 뒤로 주저앉고 말았다.
 
 
 
 
"우린 길을 잃었어."
 
 
 
 
숟가락질을 멈춘 병사가 입을 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답답한지 철모를 벗어 머리를 몇 번 쓰다듬었다.
 
 
드러난 그의 머리 측면에 구멍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따라 흘러내린 것의 정체가 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그 구멍 속에서 쿨럭대듯이 피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그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얼마 동안 헤매고 있었는지 몰라.
 
 
 
뭔가를 먹고 있었는데 작은 휘파람 소리가 들리더니 그 뒤론 기억이 안나......그냥 어둠만 있는거야.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우릴 깨워줬는데, 깨어나서 주변을 살펴보니 뭐가 이상했어."
 
 
 
 
그는 간지러운지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사람들이 없어졌어. 우리들만 빼 놓고 말야. 아무리 돌아다녀도...우리 밖에 없는거야.
 
 
 
우리가 상대하던 적들은 물론 주변에 민간인들도 없고, 들어오는 신병도 없고, 제대하는 사람도 없고, 휴가가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짐승들도 없었어. 새소리도 곤충소리도 고양이 소리도 개 짖는 소리도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어."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두서너번의 숟가락질을 하였다.
 
 
 
"그리고...해가 뜨지 않아."
 
 
"예...예?"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지 않으면 그대로 기절할 것만 같았다.
 
 
 
 
"해도 뜨지 않고 달도 뜨지 않아. 그냥 어둠만 있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볼 수도 있고, 주변을 살필 수도 있었지.
 
 
 
단지 시간의 흐름만 느껴지지가 않았어. 시간이 흘러가는 건지 멈춰있는 건지 도대체 알수가 없더라니까.
 
 
 
그제가 어제같고, 어제가 그제같고, 오늘 한 일이 어제 했던 일 같고, 어제 했던 일들이 그제 했던 일 같고....
 
 
 
뒤죽박죽이야. 정리가 안돼."
 
 
 
 
그는 멍하니 어딘가를 주시하더니 기억 속의 뭔가를 계속 되뇌는 것 같았다.
 
 
"더 큰 문제는 이 곳을 벗어나지 못한다는거야. 어디론가 계속 전진하면 계속 그 자리에 다시 돌아와 있는거야.
 
 
 
앞으로 가도 제자리, 뒤로 가도 제자리, 몇날 며칠을 걸어가도 제자리....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반복되고 있는 느낌...알아?
 
 
 
마치 우린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아. 이 곳을 벗어날 수가 없어."
 
 
 
 
나는 십수명의 병사들이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어느새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누군가가 눈에 보여서 그에게 다가가면 그는 우리를 몰라보는 것 같았어.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사람을 좇아 다녀봤는데도 여전히 못알아 보더라구.
 
 
 
그런데 약간의 이상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우리를 알아보면서도 모르는 척 피해다니는 것 같았어.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는데 이제서야 나를 알아보는 자네를 만난거라구.
 
 
 
어제도 알아보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갔지?"
 
 
 
 
"....예"
 
 
"자넨..어디서 온 거지?"
 
 
"예?"
 
 
"낯선 얼굴인데...."
 
 
 
 
나는 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정작 내가 반드시 만나야 될 그들을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많은 수의 병사들을 본 나는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묘안 하나를 떠올렸다.
 
 
이 방법이 통할지 안통할지는 몰랐지만 이미 내 입은 말을 꺼내고 있었다.
 
 
 
 
 
"다...당..당신들이 이 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가르쳐드릴게요."
 
 
"뭐? 뭐라구?"
 
 
 
 
나의 뜻하지 않은 제안에 그 병사와 함께 맞은 편에 있던 병사들이 놀란 듯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순간 내 주책맞은 입이 무슨 짓을 한건가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어떻게?"
 
 
"대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병사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무슨 부탁?"
 
 
"정한수와 김선호라는 사람을 찾아줘요."
 
 
"뭐?"
 
 
"그 사람들을 찾아주면 당신들이 이 곳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가르쳐드릴게요."
 
 
"좋아...찾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내일 이 시간쯤 제가 저기 있는 초소에 있을 겁니다. 거기로 데리고 오면 됩니다."
 
 
"뭐..그 정도야..오늘부터 다른 훈련거리가 생겼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이 곳에 있는게 확실한가?"
 
 
"확실해요. 당신들이 돌아다니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람들 얼굴을 모르는데..."
 
 
"당신들처럼 군인이예요. 명찰을 보면 알 수 있을거예요."
 
 
"좋아 한번 찾아보지. 그럼 약속대로 우릴 여기서 벗어나게 해주는거지?"
 
 
"그...그렇다니까요."
 
 
 
 
대책도 없는 나의 약속을 알아차리기라도 한걸까?
 
 
갑자기 나의 대답에 어둠속에 묻혀있던 병사들이 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그들의 모습이 선명해지자 나는 곧 삭신이 저려오는 공포에 휩싸여야만 했다.
 
 
그 어둠 속의 실루엣이 나에게 미처 알려주지 못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눈에 비친 것은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떤 병사는 한쪽 팔이 떨어져나가 없었고, 어떤 병사는 두 다리를 볼 수가 없었으며, 어떤 병사는 얼굴의 절반이 으깨져
 
 
 
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또 어떤 병사는 찢어진 뱃가죽 밖으로 쏟아진 내장을 매달고 있었으며, 어떤 병사는 아예 하반신이 보이지 않은 채, 전선줄 같은
 
 
 
무언가를 길게 늘이고 있는 상반신만 공중에 띄워놓고 있었다.
 
 
 
 
누구 하나 몸이 성한 병사가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극도로 혐오스럽고 구역질 나는 장면을 연출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들 중 얼굴의 반이 으깨져 사라져 버린 병사가 내 코 앞까지 다가오더니, 뭔가에 젖은 손을 내 왼쪽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그 흉측한 얼굴을 가까이 하더니 낮고 느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만일 거짓말이면....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자신의 한쪽면 치아들이 모두 밖에 드러나 있음에도 그의 발음은 굵고 명확했다.
 
 
 
그가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입속의 치아들은 공포감을 이겨내지 못한 채 계속 자잘한 진동음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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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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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6
786 제 1 법칙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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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
785 밤괴물 아저씨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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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1
784 이건 정말 끔찍한 삶이지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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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9
783 안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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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
782 다시...다시...다시...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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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32
724
781 충분한 나이가 될 때 까지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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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
780 인형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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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26
602
779 탈출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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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0:28
723
778 의무적 안락사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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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777 지옥의 휴가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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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9
776 슈뢰딩거의 환자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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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
775 인공지능은 위협적이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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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 봐! 저기 하늘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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