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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원 이후 당분간 혁의 활동을 내근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팔은 다 나았지만 아직 약간의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길드원을 지휘해야하는 마스터가 전투 도중 현기증에 쓰러져버리면 팀원들 사기도 떨어지고 전투에 지장을 줄 것을 알았기에 혁은 울상을 지으며 승낙했다. 그가 울상을 지은 것은 외근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재미없는 서류를 더 많이 봐야하고 그만큼 민영의 잔소리를 더 들어야하기 때문이었다.

 

 “이 기회에 아예 전투는 손 떼버리시죠? 1팀 팀장을 주희씨에게 넘기고.”

 “무슨 그런 말을 해. 내가 직접 나가는게 사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

 “그건 인정하지만요. 제 사기가 떨어지거든요.”

 

 혁은 요즘 들어 민영의 말솜씨가 부쩍 는 것을 체감했다. 한 마디씩 할 때 마다 자신이 할 말이 턱 막혀 당황한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알았어. 아무튼 이렇게 된 김에 서류에도 정을 붙여 보도록 할게.”

 “믿음은 안 가지만 말만으로도 기분은 좋네요.”

 

 혁은 지금껏 꼼꼼하게 확인한 신입헌터 장비 구매 목록에 서명을 하고 기분이 한결 좋아 보이는 민영에게 건네주었다.

 

 “요즘 중-저 랭크 쪽 분위기는 어때? 무슨 일은 없어?”

 

 신경을 쓰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무래도 함께 팀을 꾸려서 전투를 나가는 1, 2팀에 비해 다른 길드원들과의 소통은 어려운 일이었다. 서로 부담되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로는 마스터가 그들의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신경을 안 쓴다고 해도 길드 자체 복지 덕분에 길드원들은 불만 없이 길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정체된 사람들이 걱정은 되죠.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9팀에서 활동 중인 구상철씨가 이번에 또 B급 검사에서 떨어졌어요. 벌써 네 번째라 많이 힘든가 봐요.”

 “아, 아마 올해로 서른일곱 아니었나?”

 

 구상철이라면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길드원들을 나이 관계없이 존중해주는 성격 덕에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헌터였다. 헌터 일을 늦게 시작한지라 능력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꾸준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수호 헌터 중 한 명 이었다.

 

 “사실 원래 프로그래밍쪽으로 굉장히 이름 난 분이라 몬스터 분석팀으로 이동을 권해봤는데...”

 “절대 안 가려고 하겠죠. 돈 때문에 하는게 아니니까.”

 

 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참, 이은성씨가 요즘 훈련에 굉장히 적극적이던데요?”

 

 분위기를 전환할 겸 민영이 은성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자식, 혼자 따로 찾아와서는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 자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다쳤다고.”

 “은성씨 헌터랑 길드 그만 둔다는 것도 말리느라 이쪽도 난리였어요. 그러다가 병원 다녀오더니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할 거라면서 평소보다 배는 열심히 해요.”

 “좋은 일이지. 스스로 자극받고 높은 단계로 올라가면. 그리고 언제까지 내 밑에서 헌터일 할 수는 없잖아?”

 “네?”

 

 그녀의 물음에 혁이 씩 웃었다.

 

 “그렇잖아. 명색이 S급이면 자기 길드도 만들어보고 길드장의 책임도 느껴보고 그래야지. 헌터의 최종 단계는 그거 아닐까? 물론 우리 길드를 넘어서는 건 곤란하지만.”

 

 혼 길드를 뛰어 넘으면 곤란하다고 말하며 웃고 있지만 사실 반대였다. 어느 길드라도 핵심 전력은 결국 S급 헌터다. 각 팀에 최소 2명, S급 공격대원과 S급 수호대원은 있어야만 S급 몬스터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런 사람들을 이 사람은 독립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세요?”

 

 도저히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민영이 되물었다. 하지만 그는 당연하다는 뉘앙스를 담아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 길드도 천년만년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는 없지. 물론 내가 그 자리를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야. 다만 떠나는 길드원이 있으면 웃으면서 보내주고 싶고, 우리를 넘는 길드가 생기면 박수쳐주고 싶을 뿐이지.”

 

 혁은 이미 길드가 자기 소유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앞장 서는 것도 그 때문일까?

 

 “뭐...생각하는 건 알겠어요. 갑자기 철학자처럼 말하니까 당황스러워지네요.”

 “그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닌데. 자, 이것도 끝났네. 남은 거 넘겨주고 가서 다른 일 봐.”

 

 민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은 서류를 건네주고 혁이 검토와 서명을 끝낸 서류를 들고 방을 나섰다.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바뀔 수도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헌터 장비 주문서를 팩스에 집어넣고 자리에 앉았다.

 

 ‘설마 죽을 때가 된 건 아니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민영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 너무 나간 자신을 질책하면서.

 

 

***

 

 

 섬뜩할 정도로 새하얀 방에 환자복을 입은 한 남자가 실험대에 누워 긴장 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의사가 건장한 남성 두 명이 의료용 카트를 끌고 방에 들어왔다. 그는 날카로운 인상과 다르게 방긋 웃으며 누워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많이 긴장하신 것 같은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금방 끝날 테니까요.”

 “서...선생님, 이거 부작용은 없는 거죠?”

 

 여전히 긴장한 목소리로 남자는 의사에게 되물었다. 의사는 여전히 친절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남자는 조금 안심이 된 듯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잠깐 동안 고통이 있을 수도 있어요. 두 분은 혹시 모르니 대비해주세요.”

 

 의사와 함께 온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실험대 위아래에 각각 서서 표정 없이 서 있기만 했다.

 

 “자, 여러분. 잘 봐주십시오. 이제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사는 매직미러를 향해 말 한 뒤 약병에 주사기를 꽂아 약을 빨아들였다.

 

 “주사 놓겠습니다.”

 

 남자의 혈관을 통해 그는 직접 약을 주입했다. 곧바로 반응이 오는 약이 아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패 한 건가?

 

 매직미러 뒤에서 보고 있을 누군가가 궁금한 듯 마이크를 통해 물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여전히 의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선생님...모...몸이...저...어......”

 

 가장 먼저 몸의 변화를 느낀 것은 아무래도 그 자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몸속 느낌을 의사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며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고통에 일그러지는 남자의 얼굴을 보면서 의사가 나직하게 한 마디 건넸다.

 

 “심연으로 가라앉아라. 잭나이프.”

 

 

***

 

 

 도한은 물끄러미 시체를 바라보며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몇 명 째지? 며칠 사이에만 피해자가 7명이다. 전원이 헌터였다. 그것도 낮은 등급의 헌터.

 

 “과장님. 자상 확인 결과 똑같습니다. 역시 헌터 킬러입니다.”

 “그런 건 확인 안 해봐도 알아. 젠장. 어디서 그런 놈들이 자꾸 기어 나오는 거야?”

 

 현장에 와서 핀 담배가 벌써 세 개째. 세 번째 헌터 킬러의 등장과 동시에 도한이 피던 담배는 두 배 이상 늘어 버렸다. 올해도 담뱃값이 올랐는데 이러다 담배로 파산 할 지경이었다.

 

 “이전 놈들과 다르게 이번엔 행동이 더 빨라진 것 같네요. 그 약이라는게 완성 돼가는 거 아닐까요?”

 “그렇겠지. 이거 헌터 킬러만 잡는다고 되는 일이 아닌데 말이야. 그렇다고 잡아봤자 약에 절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것들이니 원.”

 

 처음 등장했던 헌터 킬러는 아직도 아무 것도 말 해 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그대로 수감된 채 구치소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그리고 두 번째 놈은 까마귀 놈이 죽여 버렸다. 도한은 심증으로 그 까마귀 헌터를 권혁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분명 자신이 병원에서 했던 경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원석아. 정리 다 됐으면 먼저 들어가라. 난 주변 좀 더 보다가 가야겠다.”

 “경찰 몇 명 붙여 드릴까요?”

 “됐다. 내가 뭐 헌터도 아니고.”

 “예, 알겠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잠시 후 감시과 현장팀과 경찰이 득실거리던 골목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이따금 먼지나 쓰레기가 바람에 날릴 뿐,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도한 한 명 뿐이었다.

 

 ‘약물, 헌터 킬러, 그리고 배후. 거기에 헌터 킬러를 쫓는 까마귀라...’

 

 키워드는 겨우 네 개. 이것들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까마귀는 단순히 헌터 킬러 살해 혐의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실제 키워드는 세 개 뿐이었다. 상부에서는 빨리 해결하라고 압박을 가했고 도한 자신도 자꾸 생겨나는 헌터 킬러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사건이 계속된다면 감시과와 별개의 팀이 더 만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도 감시과 한 팀 만으로는 버거울 지경이었다. 범죄는 헌터 킬러만 저지르는게 아니니까.

 

 “고민이 많으신가 보군, 김도한 과장.”

 

 낯익은 변조된 목소리. 도한은 혀를 차며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손이 닿지 않은 곳에 레이븐이 서서 그를 내려 보고 있었다.

 

 “어디 갔다가 이제 행차하셨나? 까마귀라 어디로 오는지 깜빡하셨나?”

 “난 까마귀 가면을 쓸 뿐이지 까마귀 고기를 먹진 않소.”

 

 도한의 도발을 여유롭게 받아친 레이븐이 훗, 하고 비웃었다. 사실 레이븐이 여유로운게 아니었다. 도한이 마음이 급했을 뿐이다.

 

 “비웃으러 온 거냐?”

 

 자조 섞인 목소리로 질문한 도한은 다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거나 받으시오.”

 

 레이븐은 도한을 향에 느닷없이 작은 사각 물체를 던졌다. 공격하려고 던진 것은 아니었기에 도한은 가볍게 그것을 받아 살폈다.

 

 “이게 뭐요? 통신기?”

 “당신과 거래를 하러 왔소.”

 

 미친놈이. 도한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깨물었다. 아무리 사건이 안 풀려도 범죄자의 손을 빌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한의 입은 그의 속마음과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거래 말인가?”

 “헌터 킬러의 위치가 확보되면 그 통신기로 나에게 위치를 알려 주시오. 내가 그 놈을 생포하겠소.”

 “그리고 당신은 쫓지 말란 말인가?”

 

 혹시 내가 이 거래를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도한은 고개를 끄덕거리는 레이븐을 보며 자신이 어느 정도로 무너져 있는지 알게 되었다.

 

 “멋대로 지껄이긴...”

 

 도한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납득은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지금 결정한 선택이 올바른 길일까? 대답을 하지 않는 도한을 보며 레이븐이 먼저 입을 열었다.

 

 “거래하지 않겠다면...”

 “하겠네.”

 

 말이 끝나기 전 도한이 먼저 가로챘다. 그는 지금 오만하게 서있는 까마귀 놈의 가면 속 표정이 궁금했다. 우월한 미소를 짓고 있을지, 도한을 비웃고 있을지.

 

 “고맙소.”

 “뭐?”

 

 레이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도한의 예상과 다른 말이었다.

 

 “살인자라 의심하는 나를 잠시 동안이라도 믿겠다는 결심을 하는게 쉽진 않을 텐데. 게다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결정하기는 더더욱 그렇겠지.”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다. 내 가족도 이 도시에 살고 있어.”

 

 도한의 말에 레이븐이 훗 하고 웃었다. 이번에는 비웃음이 아님을 도한은 느낄 수 있었다.

 

 “그거면 됐소. 나도 마찬가지니.”

 “이 사건이 끝나면 당장에 체포 할 테니 두고 보자고.”

 “그랬으면 좋겠군.”

 

 두 사람이 서로 피식 웃었다. 도한은 통신기를 품에 넣었다.

 

 “날 부를 땐 레이븐이라고 부르시오. 언론에서 붙인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지 말고.”

 

 꽤 신경 쓰였는지 굳이 레이븐은 그것을 언급했다. 도한은 그 말에 갑자기 낄낄댔다. 궁금해 하는 레이븐을 향해 그가 입을 열었다.

 

 “그거 내가 붙인 이름인데?”

 “...젠장.”

 

 마음속으로 도한을 욕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무튼, 당분간 협력하는 것으로 알겠소. 먼저 실례하지.”

 

 그 말을 남기고 레이븐은 자리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훌쩍 사라져 버렸다. 도한은 이번엔 굳이 그를 향해 욕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분이 전보다 더 좋아졌음을 눈치 채지 못 한 채 도한도 그곳을 떠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늘 퇴근은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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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리스가 레이븐으로 바뀌었습니다. 명칭 외에 달라진 건 딱히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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