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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단편> 라이터 팔이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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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어느날 그 소년은 시내버스 71번에 올라탔다.

용모는 대략 해진 운동화에 주름지고 때지고 해진 청바지.

얼굴 표면에는 허옇게 일어나서 그야말로 상그지였다.

곧 라이터를 꺼내서 승객들에게 차례대로 말을 걸었다.

 

라이터 사세요. 라이터 사세요.

하나에 천원입니다. 좀 도와주세요.

 

그러자 뒤쪽에 앉은 부유한 아재가 혼잣말을 했다.

 

그 왜 있잖아. 동화에 나오는 걔 생각나네.

그래도 그쪽에선 귀엽고도 불쌍한 여자애가 나오더니

현실에서는 역시 깡패 꼬봉이 앵벌이나 하는 짓이지.

180도 안넘는 인생패배자들 불쌍해 노잣돈 꽂아주는거.

여자도 아니고 남자. 잘생긴 것도 아닌 못생긴.

거지 집에서 태어나서 거지로 살아갈 드럽고 불쌍한 인생.

 

그러자 라이터 소년이 대답했다.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교차로에서 알바를 뽑는데 전부 여자만 뽑아요. 여자만요.

갈데가 치킨 배달하고 공장 일용직밖에 없어요.

여자들이 힘들다 힘들다 말이 많던데

제가 남자로 태어난게 이렇게 힘들 수가 없어요.

 

그 등산복의 부자 아재는 자신의 지포라이터를 보였다.

 

이게 얼마짜린지 알아? 무려 천만원짜리란다.

집에는 일억짜리도 있다. 그딴 천원짜리는 필요없단다.

그리고 그거 동네 홈마트에서 파는 500원짜리잖아.

난 딱 볼 때처럼 돈이 많은 사람인데 어떡하지?

그런 싸구려 500원짜리가 필요가 없어서 어떡하지?

 

라이터 팔이가 되려 기회를 잡은 듯 하소연했다.

 

형님 형님. 필요없어도 제발 사주십시오.

알바고 취직이고 힘든 일밖에 없어요.

정신이 아니고 몸이요. 몸뚱아리가 힘들어 죽겠다구요.

진짜 몸이 힘든 일밖에 없어요.

지금 다리 인대가 늘어나서 이런일 계속 하기가 힘듭니다.

장애인이 아니면 계속 굶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때 라이터 팔이 소년은 속으로 생각했다.

 

니들이 뭘 알아.

라이터가 천원짜리든 백만원짜리든,

일억짜리 지포라이터든, 안에 있는건 똑같은 불이잖아.

똑같은 불을 품은 물건들이라고.

일억을 라이터로 쓰다니. 집을 안태웠을 뿐이지

그게 화재라고 화재. 생돈 태우는거야 니가 알아?

 

하지만 소년은 본심을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처지는

마치 돈이 불에 타서 잿가루된 그것을 핧는 위치란 것을.

아무리 써도, 몸이 상해도, 살기 위해 삼켜야 한다는 것을.

 

부자 아재는 천만원짜리 등산복 안에서 씌거를 꺼냈다.

 

이 씌거는 시가 약 천만원짜리 고품격 담배 씌바거란다.

이 씌바거에 니 싸구려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 내 사주지.

 

라이터 소년은 그 씌바거에 자신의 라이터로 불을 붙혔다.

부자 아재는 연기를 깊게 흡입하고는 씌거가즘을 느낀다.

 

... 불이 싸구련가? 역시 씌바거 맛이 떨어지는군...

 

그러자 옆에 있던 40대 뚱땡이 임산부가 신경질을 냈다.

 

아니, 아무리 불쌍해도 그렇지,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면 어쩌자는거에요?!

우리애 잘못되면 책임질거에요?!!!

 

부자 아재가 말했다.

 

공공장소에서 앵벌이하는건? 애초에 얘가 잘못한거야.

난 오히려 얘가 불쌍해서 팔아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임산부 옆에 있던 안경 쓴 사법고시생이 중얼거렸다.

 

공공장소에서 사업자등록 매매 어쩌구...

공공장소에서 흡연 어쩌구... 니코틴 어쩌구... 나쁜듯...

불법입니다... 하지만 나의 폐기능에 미치진 못함...

 

점차 부자 아재의 씌바가즘이 사그러들었다. 이내

손에 든 반쯤 타들어간 씌바거를 소년에게 보이며 말했다.

 

그럼 앵벌아. 여긴 공공장소라서 흡연도 매매도 안된단다.

그러니 이거 받고... 그냥 버스 내리면 될 거 같네?

 

타이밍이 좋았을까? 정류장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마침 멈춰있던 버스의 문이 열렸다.

라이터 소년은 담담하게 씌바거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아 맞다. 미성년자는 담배 피면 안되지?

 

순간 부자 아재는 씌바거를 출구 밖으로 던졌다.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씌바거를 따라가며 버스를 내렸다.

 

소년이 침냄새나는 반쯤 탄 씌바거를 힘껏 빨았다.

버스는 꽁무니를 내빼듯 멀어져가고 있었다.

 

씌바거... 버스 매연이랑 별 차이가 없군...

 

순간 소년의 머리속은 단가 계산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굴욕따위로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멘탈이었다.

 

씌바거 1세트 10개입... 세전 50달러... 반쯤 탔으니까...

 

그러나 이내 깨닫고 말았다.

씌거가 비싼 고급품이라 하더라도 결국 일회용 소모품이다.

아무리 비싸더라도 반쯤 탄 침묻은 담배는 살 사람이 없다.

 

그러나 소년은 만족했다. 그리고

허리와 어깨를 펴고 씌바거를 다시 힘껏 빨았다.

 

? 이게 뭐지?

 

씌바거는 엄청 맛있었다.

버스 매연의 맛임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엄청 맛있었다.

너무 맛있는 나머지 씌바거를 다 태운 재까지 씹어먹었다.

 

다음날 71번 버스에 누군가로부터 신고가 들어왔다.

매일 노가다를 뛰러 가던 부자 아재는

무기를 이용한 특수 폭력 혐의로 고소되었으나

담뱃재를 씹어먹은 앵벌이의 자취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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