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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381   225 hit   2018-03-06 07:43:19
[산다이바나시] 고통, 민들레, 그루밍 (1)
  • User No : 680
  • 자작그림에 관심이 많은
    Lv37 도프리

나는 마루에 앉아 열심히 그루밍을 하고 있는 하얀 고양이를, 먼발치서 지켜보았다.

그 태평한 것을 가만 보고 있자니 멍해져서 나른한 오후의 볕과 함께 잠이 스르르 몰려왔다.

"야-옹."

졸음을 쫓아내려 고양이의 흉내를 내 보았다.

고양이는 잠시는 나를 쳐다보다가 관심이 없는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는 그대로 누워 뜨끈한 흙바닥을 부벼댔다.

"매정하기는.“

나도 몸을 쭉 펼쳐 엎드려 누운 뒤 턱을 괬다. 더럽게도 할 일 없이 심심한 날이었지만 이곳의 생활이 익숙해진 나는 이런 것도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별 감상이 없어졌다.

이런 짓을 하고 있자면 인생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한적한 곳을 찾아 헤매던 과거의 나 자신이 덧없게 느껴진다.

'이전 같았으면 심심해서 못 견뎠을 텐데.'

슬며시 미소를 겸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마당 한쪽의 민들레가 바람에 흔들려 우산 같은 홀씨를 뿜어대자 고양이는 번쩍 일어나 그것들을 모두 때려잡으려는 듯 허공을 마구 할퀴어댔다.

"욘석."

나는 마당으로 걸어 나와 녀석의 겨드랑이를 폭 감싸 쥐어 높이 안아 들었다.

"심심해? 친구라도 필요하니? 이구이구~"

고양이를 품에 뉘여 안은 채 한쪽 발을 잡고 우화를 펼치듯 놀아주던 차에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기- 여기가 황상길씨 댁인가요?"

"어? 아. 아, 예. 바로 찾아오셨는데 어쩐 일이시죠?"

딱히 대문이랄 것 없는 뻥 뚫린 입구에 목소리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서있었다.

챙이 큰 모자를 쓰고 하늘색 롱 원피스 차림을 하고 있어서 척 봐도 이곳 사람이 아닌 여행객으로 보였다.

"민들레 카페 주인이시죠?"

장사도 안 되는 시골에서 다만 여행객 몇이 오거든 이따금 여는 민들레 카페가, 몇 년차가 지나자 제법 소문이 났는지 성수기가 시작될 즈음이면 슬슬 이렇게 찾아온다.

전화번호를 남겨두면 손님에게도 내게도 편할 것을, 이전의 인생처럼은 살기 싫어서 휴대폰도 없애고 집 전화조차 두지 않은 탓이다. 때문에 가게 대문에는 우리 집을 찾아오는 약도가 그려져 있다.

"네네. 가게 오픈해야겠네요."

쑥스럽게 웃어보이곤 걸음을 재촉해 여성보다 앞서 나갔다. 가게와 집이 가깝기 때문에 몇 걸음 안 걸어 카페에 다다랐다.

"아! 사장님 오셨나보다!"

여자끼리 놀러온 모양인지 여성의 일행은 여자들뿐이었다. 20대 초반 정도의 어려보이는 일행이었으므로 자기들끼리 뭐가 좋은지 자꾸 웃으면서 꺄르륵 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렇게 심심한 곳엘 놀러오셨어요? 다른 좋은 곳 많은데."

가능한 넉살 좋은 웃음을 머금곤 카페 문을 열며 말을 걸었다.

"아, 인터넷에서 풍경 예쁘다고 해서 왔어요!"

"그래요?"

나는 길게는 대꾸하지 않고 문을 열어 고양이를 내려놓은 다음, 원하는 자리에 앉을 것을 종용했지만 손님들은 그보다는 고양이에 관심이 많이 가는지 녀석을 이리저리 살피며 "꺄-꺄-" 하고 작게 소리를 질러댔다.

"얘 이름이 뭐에요?"

"이름은 딱히 없고 그냥 백묘라고 부르고 있어요."

엉뚱한 이름이라며 자기들끼리 맘대로 이름을 짓는가 싶더니 사진을 찍기도 하고 여기저기 긁어대면서 여전히 고양이에 정신이 팔려 있기에 나는 무리에게 조용히 다가가 메뉴판을 건넸다.

"아. 감사합니다. 얘들아 우리 자리부터 앉자."

"아 맞다. 고양이에 정신이 팔려 있느라고."

손님들은 서로 깔깔거리며 작게 웃어넘기더니 이제는 카페 이곳저곳을 바라보며 인테리어가 예쁘다고 감탄을 터뜨렸다.

겨우 자리에 앉아 그들이 시킨 것은 이 카페의 자랑인 민들레 꿀차였다.

인터넷 같은 데서 보고 온 모양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창밖 구경하실래요? 이쪽 창으로 보면 풍경 예쁘거든요. 밖에 나가서 직접 보셔도 좋구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들은 창가로 향했다. 창밖으로는 내가 수년간 직접 심은 커다란 민들레 밭이 펼쳐져 있다. 지금 즘이면 홀씨를 머금은 민들레꽃들이 온통 하얗게 밭을 수놓았을 것이다.

"우와-!"

"진짜 예쁘다아-"

"와와 우리 사진 찍자!"

손님들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창밖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더니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아예 민들레 꽃밭을 향했다.

나는 창을 열고는-

"밭 안쪽으로 들어가시진 마세요-! 옷 더러워집니다!"

-하고 미연에 있을 사고와 혹 밭을 망칠까 하는 본심을 숨긴 채 웃으며 외쳤다.

잠시 후 민들레 꿀차가 모두 완성 되어 모두를 카페 안으로 불러들였다.

손님들은 들떠서 별 특별할 것 없는 차를 맛있다며 홀짝이더니 이어서 내가 서비스로 내온 케이크를 보곤 환호성을 질렀다.

"와 감사합니다!"

한껏 미소로 답해주고는 또 필요한 게 있으면 불러달란 말과 함께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구석으로 향해 앉아 책이나 읽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이렇게 하시곤 뭐 남기시는 거지?"

"글쎄. 그래도 여기 너무 예쁘고 차랑 케이크도 짱 맛있다."

"그러게. 여기 들르길 진짜 잘했다. 이따가 바닷가도 완전 기대 돼."

"응응. 완전 완전."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를 기분 좋게 엿들으며 그 예전 첫사랑이 선물했던 시집을 찬찬히 읽어나갔다. 몇 번이나 읽어서 책 모서리가 때타고 너덜너덜했지만 언제나 들어도 기분 좋은 손님들의 들뜬 목소리 같아서 결코 버릴 수 없는 시집이다.

"근데 사장님 되게 잘 생기지 않았어? 나이는 우리보단 있는 것 같은데 완전 훈훈해."

"그러게- 이런 시골에. 이따 우리 밤에 놀 때 불러서 같이 놀자 해볼까?"

"야~ 너는~"

"왜~히히히"

자기들끼리 이야기한답시고 목소리를 죽여 떠들었지만 원채 조용한 카페 안이라 들릴 수밖에 없었다. 마른 웃음을 머금고 가만히 앉아있자 무리 중 우리 집으로 찾아왔던 롱 원피스의 여성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이따 저녁 즈음에 저희끼리 음식해서 먹으면서 놀 건데 같이 노실래요?"

"꺄아~ 진짜 말했어!"

"올 멋지다- 잘 한다-!"

원피스 여성의 뒤로 친구들이 놀림인지 환호성인지 짓궂은 소리를 만들어내자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며 친구들에게 손사래를 쳐댔다.

“저야 좋죠. 그럼 저도 맨입으로 낄 수는 없으니까 저희 집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라도 하실래요? 준비는 제가 다 할게요.”

“우와! 그래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뭘요. 껴주는 것만 해도 제가 더 고맙죠.”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고 이런 밝은 손님들을 보니 간만에 크게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무료한 시골 생활에 가끔은 이런 것도 좋은 일이다.

 

 

저녁이 되어 저가는 해가 어스름을 만들자 낮의 손님들은 우리 집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양 손에 가득 들고 온 먹을 것들과 내가 준비한 음식들을 함께 나누며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거의 모든 것이 마무리 되어갈 즈음 부엌에서 아궁이를 지펴 라면을 끓이고 있던 내게, 이름을 희경이라 댄 롱 원피스의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근데 사장님은 나이도 젊어보이시는데 왜 이런 데에서 혼자 살고 계셔요? 아, 이런 데라는 표현은요 나쁘다는 건 아니구요-”

착한 심성 탓인지 자기가 한 말에 손까지 저으며 당황하는 희경씨를, 나는 진정시켰다.

“괜찮아요. 이런 데가 뭐 이런 데죠. 하하. 그냥 뭐-, 여기서 살기 전의 생활이 너무 저한테 힘들었어요. 그래서 도망치듯 이런 곳으로 흘러들어온 거죠.”

“아- 그러셨구나. 음- 괜찮으시면 왜 그렇게 힘드셨는지 물어봐도…”

“그냥 너무 바쁘게 살기도 했고 하는 것마다 잘 안 됐어요. 또….”

“…또?”

내가 말을 끝마치지 않고 불길만을 응시하고 있자 희경씨는 되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저는 이런 데에서 혼자 사는 게 어울리는 느낌이라서 하하. 라면이 다 된 것 같네요! 나가서 다 같이 먹어요.”

싱겁게 말을 얼버무리곤 가마솥에 끓인 라면을 일부러 바쁘게 담는 척 했다.

희경씨는 그 이유가 못내 아쉬운 듯 잠시는 나를 지켜보다가 이내 라면 옮겨 담는 것을 도왔다.

 

 

마침내 즐거웠던 파티가 다 끝나자 조금은 아쉬워하면서 일행은 집을 떠났다.

“아무리 같이 재밌게 놀았어도 떠나는 것이 여행객의 숙명이지!”

썰렁해진 집안을 괜스레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 환기시켰다.

사실 맘 같아선 다들 묵고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여성들이고 여행객이고 잡아둔 숙소가 있었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선뜻 묵고갈 순 없었다.

“내일의 해가 뜨면 내일의 손님이 올까~?”

고양이는 대답이 없다. 벌써 따뜻한 이불 위에 올라 똬리를 틀고 잘 준비를 마친 모양이었다.

“내가 누구한테 이야기를 하니~ 에휴!”

서랍을 열어 약봉지를 꺼낸 뒤, 한무더기는 되는 약을 물과 함께 목구멍에 넘겨넣자 마침내 하루 일과가 다 끝난 실감이 들었다.

"오늘도 무사히-"

방의 불을 끄고 그대로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가 누웠다. 할 일도 없으니 잠이나 자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밤이 빨리 찾아온다.

‘언젠가는 이 일도 전부 끝나겠지.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이렇게 손님들이랑 어울려 노는 것도, 고통스러운 몸을 안 아픈 척 웃어 보이며 지내는 것도….’

풀벌레가 울기 시작했다. 안 끝날 것 같은 겨울도, 추운 듯 따사롭던 봄도 다 지나보내고 드디어 녀석들이 풀숲에 득시글대는 계절이 오는 것이다.

여기선 모든 게 순환한다.

지긋지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또 민들레가 노랗게 얼굴을 드러내는 계절이 오겠지.

민들레 카페에 그 해의 첫 손님이 찾아오겠지.

‘백묘는 그들 중 누군가가 데려가도록 부탁해보자. 언제 내가 사라질지 몰라서 이름도 못 지어주고 계속 데리고 살았는데…. 좋은 주인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백묘를 손가락으로 뱅글뱅글 쓰다듬다가 눈을 감자, 스르륵 잠이 몰려왔다.

 

언젠가는 민들레 꽃밭에 내가 이렇게 눈을 감은 채 누워있을 거라 생각하며, 영원히 잠드는 것을 연습하듯 그렇게 잠에 빠져들었다.

 

‘민들레는 잘 자라겠네.’

 

------------

산다이바나시 에브리데이 써보기를 도전중입니다.

 

재미 없어도 읽어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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