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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382   227 hit   2018-03-08 00:41:47
[산다이바나시] 석류, 어스름, 미로
  • User No :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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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37 도프리

"옴니아의 석류에 대해 알고 있나?"

"옴니아? 석류요?"

크랙은 자신의 신발 밑창에 낀 돌멩이를 빼내다가 노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래. 그것을 먹는다면 불로불사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걸 좀 구해다주게."

"…그걸 믿어요?"

"뭐, 뭐?"

"아닙니다. 저야 뭐, 계약금만 제대로 치러주시면 감사하죠. 어디로 가야합니까?"

"에흐음! 정보를 캐내보니 마법사 옴니아가 만들어 낸 미로 안에 그것이 존재한다고 들었네."

노인은 크랙의 비아냥거리는 어조가 심히 거슬렸는지 헛기침을 해대며 위아래로 크랙을 살폈다.

"그런데 자네 원래 이렇게 의뢰를 삐딱한 자세로 임하나? 믿음이 안 가는데."

크랙은 자리에서 느긋하게 일어나더니 노인을 아래로 내려다봤다.

"맘에 안 드시면 다른 사람 구하셔도 됩니다. 헌데 그 전에, 트레저헌터 중에 저만큼 신뢰도가 높은 사람이 있습니까? 다들 보물 발견하면 자기가 들고 나르기 바쁘지 의뢰주에게 제대로 가져다주는 놈이 없거든요."

"…알겠네. 내 믿어보지."

"예. 감사합니다. 그럼 선금으로 5골드 받아가겠습니다."

크랙은 예의바른 사람인 양 허리를 푹 숙이더니 손만 앞으로 내밀어 돈 주머니를 요구했다. 노인은 크랙의 태도에 부아가 났지만 그의 말대로 그만큼 신뢰도가 높은 트레저헌터가 없기에 얼른 선금이나 쥐어주어 자신의 방에서 나가게 하고 싶었다.

"반드시 찾아와야 할 게야 안 그러면…!"

"예-예- 믿고 맡기십쇼."

선금을 받자마자 뒤로 훽 돌아선 크랙은 망설임 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크랙의 직업은 트레져헌터다.

트레져헌터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찾은 보물을 자신이 가지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에게 의뢰를 받아 대신 보물을 찾아다 주는 것이다.

크랙은 후자에 속하는 헌터로서, 어째서 자신이 보물을 가지지 않고 타인에게 양도하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 도대체 세상엔 별 황당한 걸 믿는 놈들이 너무 많아.'

-그는 보물이란 걸 거의는 믿지 않기 때문이다.

보물이란 건 소문이 부풀려져 생기는 것들이 태반이다. 황당한 능력이나 부를 허락해줄 것 같은 물건 이야기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욕심을 충족시키기 좋은 이야기가 아닌가.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크랙은 일단 정보를 파는 길드에 찾아가 옴니아의 미로에 대해 묻기로 했다.

“옴니아의 미궁은 여기.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보길드의 길드원은 지도를 펼쳐 손가락으로 미궁의 위치를 가리켰다.

“뭐야. 굉장히 가깝구먼?”

“미궁의 설계자인 옴니아가 무슨 이유인지 마을과 굉장히 가까운 곳에 던전을 지었습니다. 300년 전 즈음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때도 여기엔 마을이 있었거든요.”

“다른 특징은?”

“밤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것 정도….”

“엥? 여기 정보길드 맞수?”

“사실 추가정보가 있습니다만 그것이….”

길드원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으로 고리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아니 이미 돈은 냈잖아. 추가 요금을 내라는 말이야?”

“하하. 조금 희귀한 정보인지라 그렇습니다.”

“흠. 됐어. 어차피 300년이나 된 유적에 뭐 그리 위험한 게 있겠어. 생물이라면 다 뒤졌을 거고 함정도 다 망가져버렸을 시간이야.”

“그럼 추가결제는 않으시는 걸로?”

“그래. 방금까지 이야기한 거 종이에 요약해서 적어줘. 그것만 들고 가겠어.”

길드건물을 나선 크랙은 항상 모험을 함께하는 동료인 해커와 만났다.

해커는 마을 어귀에서 말 두필에 장비들을 얹어놓고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

“미궁으로 바로 향하자. 쉬운 일 같으니 빨리 해치우자고! 요번 것도 구라일 게 뻔해.”

“길드에서는 미궁에 대해 뭐래?”

“어디보자, ‘옴니아가 미로를 만들고 너무 훌륭하게 만든 나머지 그 자신마저 갇혀버렸다는 환상의 미궁.’ 이라고 개요에 쓰여 있네. 여기서부터 엄청나게 황당무계하잖아?"

"그러게."

크랙의 동료인 해커가 옴니아의 미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동조했다.

"그래도 미궁이 실존한다니 다행이네 '어디에 있는 무엇을 가져오시오~' 하면 거의는 '어디' 도 '무엇' 도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잖아?"

"그래봐야 가보면 다 파괴된 유적지에 흙먼지나 나뒹굴고 있을 테지."

“하하. 그러려나.”

 

말을 탄 두 사람이 미궁의 입구에 도달한 것은 저녁놀에 어스름이 지는 시각이었다.

“여긴가?”

“생각보다 멀쩡한데?”

“아니, 근데 무슨 마법사가 만들었다는 던전 같은 게 이렇게 떡하니 도시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거야?”

“그러니까. 순 구라일 거라니까? 관광지 만들어놓고 돈 벌려는 수작일 거야. 뭐 아무튼 우리야 의뢰만 완수하면 되는 거지. 착수금만 5골드를 받았어. 멍청한 노인네 같으니.”

크랙이 장비들을 갖춰 입는 사이, 해커는 미궁의 입구에 쓰인 글귀를 읽어보았다.

“해가-지면- 어둠이- 깨어- 날 것?”

마법사들의 언어인 룬 어로 쓰인 글귀를 해커가 더듬더듬 해석해 읽었다.

“뭔 소리야?”

준비를 끝낸 크랙이 해커에게 마법지팡이를 건네주며 말했다.

“그러게. 이게 혹시 길드에서 추가요금을 내라던 정보일까? 밤이 되면 미궁에 특수한 장치라도 가동 되는 건가.”

“죽은 마법사라도 튀어 나오나? 아무튼 조심하라는 소리지?”

해커가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 크랙의 장비에 버프 마법을 걸었다.

“그래. 장비에 이중방어를 걸었으니 웬만해서는 다치지 않겠지만 조심하라구.”

“한두 번 일하나? 여기도 별 볼일 없을 거라구. 지어진지 300년이 넘은 미로라는데 장치도 다 망가졌겠다.”

퉁명스럽게 내뱉은 크랙은 터덜터덜 미로가 존재하는 지하로 향했다.

이들의 작업방식은 크랙은 현장에, 해커는 마법적 보조를 하는 식이다.

때문에 바깥에 남게 된 해커는 크랙이 내려가는 것을 지켜본 뒤 입구에 쓰인 글귀들을 마저 읽어보기로 했다.

 

“흠.”

미로의 안은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시꺼먼 어둠이었다.

“옴니아가 길을 잃을 만하네.”

크랙은 뒷주머니를 뒤져 해커가 미리 주문을 걸어둔 ‘라이트’ 주문서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찢어냄과 동시에 주문서는 불타 사라지고 크랙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와 주변을 밝혔다.

“이런 곳에 석류가 있다는 말이지?”

크랙은 콧방귀를 뀌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미로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탓인지 여기저기 모험가들의 흔적이 잔뜩 남아있었다. 벽에 새겨둔 표식이나 여러 발자국들이 있어 이미 탐사가 끝난 곳으로 여겨졌다.

“아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는데 전설의 석류를 발견하면 기적이겠는데? 해커. 들려?”

크랙이 음성 송수신이 가능한 마법 아티팩트에 입을 가까이 하고 말했다.

“….”

“야. 들리냐고.”

“아, 미안. 입구에 쓰인 글귀를 읽느라고. 뭔데?”

“위치 때문에 예상은 했지만 탐험의 흔적이 너무 많아. 이미 다녀간 사람이 수백은 되겠어. 이거 공칠 수도 있겠는데.”

“일단 끝까지만 가보자구. 미로라니까 길 잘 찾아다니고-”

“말이 쉽다. 벌써 갈림길이 나오기 시작하네.”

“그래 쉬워. 사람들이 탐사를 오지게 해놨다며? 그 흔적만 따라가면 미로의 정답이 나오겠지 뭐.”

“…. 마법사 맞긴 하네. 똑똑해.”

“그래. 그러니까 널 보조하는 거 아니겠어. 탱커양반.”

그렇게 크랙이 해커와 잡담을 하며 미궁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던 중,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르르릉.

“…뭐지?”

“뭐가?”

“방금 무슨 소리가….”

탓탓탓탓탓탓-

“응?”

“끼에에에에엙!!!”

“이런 X발!”

어둠 속에서 갑자기 허연 백골만 남은 스켈레톤이 튀어나와 크랙을 덮쳤다.

스켈레톤은 뼈만 남은 주먹으로 열심히 크랙을 내리쳤지만 나름대로 중장비를 챙겨 입은 그에게는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그래서 차분히 스켈레톤의 양 손목뼈를 잡아 으스러뜨려버린 크랙은, 이어서 옆구리에 찬 롱소드를 꺼내들어 갈빗대에서 머리통까지 찔러 쪼개버렸다.

“깜짝 놀랐잖아 해골 놈아!”

“해골? 누구, 나?”

“아니! 염병 여기 언데드 튀어나오네!”

“엥?! 언데드?!”

“만약에 계속 나온다면 나만으론 역부족일 것 같아. 여기로 지원와줄 수 있어?”

“알겠어. 거기 꼼짝 말고 기다려 내가 지금 달려가서 언데드놈들의 대갈통을…!”

“끼르르!”

“끼앍!!”

해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 나타난 스켈레톤 두 마리가 크랙에게 달려들었다. 이들은 살점이 어느 정도 붙어 있어서 좀비에 가까웠는데 옷차림을 보니 이곳에 탐사를 하러 왔다가 죽은 탐험가로 보였다.

“이 새끼들-!”

크랙은 둘 중 하나에게 재빨리 보폭을 좁혀 눈구멍에 롱소드를 꽂아 머리를 뽑아내고는 그대로 둔기처럼 머리통을 이용해 다른 스켈레톤의 다리를 후려쳤다.

이어 다리뼈가 부서져 넘어진 스켈레톤에게 건틀렛으로 롱소드의 날부분을 잡은 뒤 그 손잡이를 휘둘러 두개골을 빠개버렸다.

“젠장. 몇 마리나 더 나오려고 이래? 이번 탐험은 수지타산이 안 맞겠는데?”

크랙은 롱소드에 꽂혀있던 두개골을 빼내며 툴툴거렸지만, 그 때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수많은 언데드의 고함소리에 자세를 잡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돈이고 나발이고 죽을 수도 있겠는데. 빨리 와라 해커!”

 

 

“턴언데드!”

“헉. 헉. 방금 그게 마지막이었나?”

“흐어. 그러면 좋겠지만….”

곳곳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뼈무더기와 살점들이,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는가를 증명하듯 둘을 중심으로 쌓여 있었다.

조금은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해커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크랙이 지쳐갈 때 쯤 그에게 체력회복 마법과 헤이스트를 걸어주고는 언데드를 무효화 시키는 턴언데드를 난사해준 덕분에 둘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털썩.

해커가 마나를 다 써버려 기운이 없어졌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헉. 헉. 괜찮냐?”

“하 씨. 간만에 마나 다 바닥나니까 죽겠어.”

언데드의 시체들은 온통 탐험가나 헌터로 보이는 장비들을 입고 있었다. 때문에 크랙과 해커는 필연적으로 이 미궁 안에 이들을 이렇게 만든 존재가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미리 만들어둔 스켈레톤들이야 그런 대로 납득할 수 있지만 언데드에 의해 죽는다고 해서 언데드가 되진 않는다. 저주 마법에 걸리는 장치가 있다거나 최악의 경우는-

“리치가 있나?”

리치가 있는 던전이라는 것이었다.

“망할, 리치라고?”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여. 정보 길드가 추가로 결제하라던 정보는 이거였을지도 몰라. 내가 여기로 들어오기 전에 입구에 쓰여 있던 글을 읽어보니 옛 룬어라 정확히는 해석이 어려웠지만 옴니아 그 자신이 적어둔 것 같았거든 거기 이렇게 쓰여 있더라고.”

“뭔데?”

“대충 말하자면, 옴니아는 너무 대단한 마법사가 된 나머지 자신이 불멸의 존재로 남기 원한 것 같아. 해서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어려운 미궁을 만들어 놓고 본인이 리치가 되어 이 미궁을 지배하고 있는 듯 해.”

“그럼 미궁 안에 옴니아가 갇힌 게 아니라 의도된 거라는 거군.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만한 장소에 던전을 만든 것도 납득이 가.”

리치는 사람들의 생명을 빨아들여 그것을 이용해 생을 연명해가는 고급 언데드다. 리치에게 생명이 빨린 사람들은 자동으로 언데드가 되어 리치의 수족이 되므로 이토록 많은 탐험가 언데드가 나온 이유도 설명이 가능했다.

“이제 어떡하지?”

무차별적으로 언데드를 죽이며 전진한 크랙과 해커지만 정말로 무턱대고 살 길을 찾으며 들어간 것이라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애매해졌다. 처음 언데드와 마주쳤을 때 뒤로 돌아 던전을 나갔어도 됐지만 이토록 많은 언데드에 의해 지켜지는 곳이라면 필시 무언가 있을 것이라며 고집한 크랙 덕분이었다.

“글세…. 네 탓을 해봐야 의미는 없을 거고. 일단은 리치를 찾아서 죽이는 게 우리가 할 일이겠지?”

“뭐? 석류를 찾아서 여기서 나가야하는 거 아니고?”

크랙이 무슨 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해커를 쳐다봤다.

“짚이는 부분이 있어. 그 석류 말인데, 룬 어로 심장을 뜻하는 단어와 석류의 고대어 명칭이 매우 흡사해.”

“…그럼?”

“아마 석류가 심장과 닮은 것에서 기인한 단어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면 이런 곳에서 구할 심장이라는 건….”

“리치의 심장이라고? 미친.”

“생각해봐. 뜬금없이 이런 미로 속에 석류나무 같은 게 있겠어? 과일 상인이 팔고 있을 리도 없잖아.”

“그래. 이런 데서 매대(賣臺)를 깔고 장사를 한다면 언데드가 걸치고 있는 옷쪼가리나 도구들이나 팔아야겠지.”

“그럼 리치를 찾아나서는 걸로?”

“그러자.”

해커가 품에서 마나 탐지기를 꺼내들어 작동시키자 곧이어 일정한 방향을 가리켰다.

“근데 우리 둘이서 괜찮으려나?”

해커가 볼을 긁적였다.

“리치가 그렇게 강해?”

“그게… 리치라는 게, 살아생전엔 대마법사였다가 언데드가 된 거니까….”

“조금은 약해지지 않았을까?”

“계속 수련을 했다면 더 강할지도.”

“재수없는 소리 마.”

크랙은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해커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언데드를 무찔러가며 마나탐지기가 가리킨 방향으로 한참을 걷자, 뜻밖에 막힌 길이 나왔다. 크랙은 돌아가야 할 것을 이야기했지만 해커는 여기야말로 맞을 것이라 확신했다.

“어떻게 할 건데?”

크랙이 물었다.

“이 벽 너머야말로 옴니아의 방이 있을지 몰라. 일단 가시화(可視化)마법부터 걸어볼게.”

투명마법이나 환영 마법 등으로 실체가 숨겨져 있는 경우 쓰는 마법이었다.

“하긴 점점 언데드가 강력해지고 숫자도 많아졌으니 여기가 제일 의심가기는 해. 망할 포션을 너무 많이 써서 어지러울 지경이야.”

겨우 둘이서 못해도 수 백마리가 넘는 언데드를 토벌하며 왔지만 둘 다 크게 지친 기색은 없어보였다. 포션을 들이부우며 온 결과였다.

“영감에게 돈을 많이 뜯어내야… 어?”

“됐다!”

해커가 이리저리 해보더니 숨겨진 문이 나타났다.

“대단한데 너.”

“그러니까 너랑 다니잖냐. 지는 더 괴물이면서.”

“그럼 슬슬 진짜로 해봐야겠네.”

크랙이 말을 마치고 정신을 집중하는가 싶더니 검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마침내는 검기를 뿜어냈다. 사실 이것이 그가 트레져헌터라는 위험한 직업을 제대로 완수해내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어디 가면 귀한 대접받고 살 놈이 여기서 왜 이럴까?”

“시꺼. 그래봐야 누구 밑에서 사람이나 죽이고 다니지 뭐하겠냐? 잡담은 그만하고 신호에 같이 들어간다!”

“좋아. 준비됐어.”

“둘, 셋! 핫!”

빠르고 낮은 도약과 함께 크랙이 문을 썰어 부수곤 뛰어들었다. 그러자 드러난 마법사의 서재에서 공중에 떠있는 한 마법사를 마주했다.

“저게….”

“그래. 옴니아일 거야.”

리치가 되어 모습이 흉측해진 옴니아는 화려한 자수가 들어간 푸른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한 손에는 마나쥬얼이 잔뜩 박힌 스태프를 들었고 다른 손에는 네크로모프 서적이 들려있었다.

“나의 병사들을 쳐부수며 여기까지 온 인간은 네놈들이 처음이구나!”

텅 비어있는 해골 속에 일렁이는 푸른 안광이, 옴니아가 말을 뱉을 때마다 번쩍였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사악한 기운 탓인지 크랙은 폭력성이 고조되었다.

“으아아앗!”

미처 말릴 새 없이 그가 뛰어들어 검기를 뿜어댔지만 옴니아는 비웃으며 무영창으로 라이트닝볼트를 뿜어냈다.

“!!”

“배리어!”

파지직!

“크앗!”

급하게 배리어를 쳤지만 워낙 고압의 전류에 둘 다 튕겨져 문 바깥까지 날려졌다.

“멍청아! 작전을 짜고 싸워야지! 대마법사라니까!”

벌떡 일어나 크랙이 멀쩡한 것을 본 해커는 잔소리를 해댔다.

“그냥 냅다 썰면 혹시나 될까 해서.”

“무식하긴!”

둘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티격태격하는 사이 리치, 옴니아도 방에서 빠져나와 아이스볼트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죽여서 데스나이트로 만들어주마!”

“왜 나한테만!”

“니가 맘에 들었나 본데?”

크랙을 집중공격 하는 리치를 보고 해커가 이죽댔지만 그것도 잠시,

“넌 구울이 딱이겠군!”

“왜 난 더 하급 존재야!”

둘은 리치의 공격을 막아내며 후퇴하는 듯 보였지만 서로는 아티팩트를 통해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대화를 나눴다.

‘크랙. 저 리치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약한 것 같아.’

‘무슨 근거로?’

‘300년이나 지나는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을 언데드로 만들고 자신도 연구를 계속한 것 같은데 아직도 리치라니. 데미리치는 되어있어야 한다고!’

‘대마법사라며!’

‘나도 그게 의문이네!’

“쥐새끼 같은 놈들!”

옴니아는 자신의 마법을 이리저리 피하기도 하고 막아내는 크랙과 해커의 모습에 약이 올랐는지 무영창 마법만 난사하다 처음으로 스펠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야, 이건 위험한데?’

‘방금까진 얕잡아봤잖아?’

‘아무리 그래도 진심으로 나서면 나보다 세겠지! 안 되겠다. 이판사판이야! 미안하다 크랙!’

‘뭐?’

콰과광!

옴니아가 그의 스태프 끝에서 고급 전기속성 마법인 썬더를 뿜어냈고 그것은 크랙에게 명중했다. 강력한 충격에 크랙이 서있던 주변 벽에는 균열이가 무너져 내렸고 자욱한 먼지가 일어 잠시간은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식별이 불가능했다.

“하하하. 좋은 데스나이트를 얻었군! 다음은 네 차례다 마법사!”

옴니아는 사악하게 웃어보이고는 해커를 다음차례로 지목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크르아아아!!!!”

“아니?!”

죽었으리라 생각한 크랙이 갑옷만 파괴되었을 뿐 멀쩡히 옴니아에게 돌진해 달려나온 것이다.

맹렬한 기세로 쏘아지듯 몸을 날린 크랙은 검기가 서린 롱소드를 빠르고 크게 휘둘러 옴니아의 머리를 노렸다.

“에잇!”

옴니아는 재빨리 두꺼운 얼음벽을 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크랙의 칼은 전혀 방해를 받지 않고 똑바른 검선을 이어나갔고 이에 옴니아는 재빠르게 배리어를 치며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대단한 검사로구나 더욱 더 탐이 나는구나!”

“좋아할 때가 아냐 리치양반. 당신 어깨죽지를 보라고.”

“아닛?!”

먼지가 완전히 걷히자 크랙의 뒤편에는 해커가 방어 마법 중 가장 상위계열에 속하는 리플렉터(Reflector)를 몸 주위에 두른 채 서있었다.

그리고 옴니아가 자신의 어깨를 보았을 때 그곳에는 있어야 할 팔과 네크로모프 서적이 잘려나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지금 크랙의 경지는 소드마스터 쯤 될 거야. 녀석한테는 미안하지만 우리가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위기의 순간에 크랙에게 해커가 건 마법은 흑마법 중 하나인 ‘버서크’ 였다.

말 그대로 광전사가 되는 주문으로, 평소 사용하지 않던 힘이나 잠재력 따위를 몽땅 끌어올려 활력을 불태우는 기술인지라 본래는 소드 익스퍼트 정도인 크랙이 훨씬 더 강한 경지인 소드 마스터정도로 끌어 올려진 상태였다.

“으아아아!!”

크랙이 칼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기를 거대하게 뿜어 옴니아에게 연속으로 날려대자 옴니아는 속수무책으로 방어와 회피를 하기에 바빴다. 거기에 크랙이 직접 몸을 날려 중간 중간 육탄전을 걸어오자 옴니아는 눈에 띄게 데미지를 입었다. 버서커 상태로 벽이며 바닥이며 천장이고 할 것 없이 몸을 튕겨 날아다니는 소드마스터를 무슨 수로 저지하겠는가.

“인간 놈들이! 인간 놈들 주제에!!”

“뭐 이렇게 뻔 한 던전 보스가 다 있나. 영면(永眠)하라구.”

 

결과적으로 리치, 옴니아는 온 몸이 조각조각 난자되어 행동불능 상태가 되었고 남은 일은-

“크아아아아!!”

“그래. 그래. 니 기분이 나아질 수 있다면 화가 풀릴 때까지 나를 때려.”

크랙이 버서커 상태가 풀릴 때까지 리플렉터를 켠 해커가 시간을 보내는 일 뿐이었다.

원래는 리플렉터같은 고급 방어 마법조차 날려버릴 수 있는 검의 경지가 소드마스터지만 버서커 상태가 오래 지속된 크랙이 상당히 지친 탓에 

겨우 검 끝에 검기가 살짝 감겨있을 뿐인 상태였다.

거기에 리플렉터의 특성 상 데미지의 일부가 크랙에게 반사된다는 점이 조금은 팀 킬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 크랙은 기절해버렸다. 해커는 크랙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미안하다는 의미의 합장을 하고 조각조각난 리치의 몸에서 심장을 꺼냈다. 두개골 안쪽엔 아직 불타오르는 코어가 남아있었는데 이것을 남겨둔다면 리치는 언제고 부활할 가능성이 생긴다.

해커는 가방에서 마법 주머니를 꺼내 작게 봉인 술식을 외고는 주머니 안에 코어를 봉인시켰다.

“휴. 이번 모험은 겨우 이것으로 끝.”

가방에 주머니를 넣고 힐링포션을 몇 개 꺼내든 해커는 기절한 크랙에게 먹이곤 힐링 마법을 외워주었다.

“으아아아!”

이윽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크랙이 깨어났다.

“일어났어?”

“와!! 으아!!! 아파!!! 온 몸이 아프다!!”

“깜짝이야. 아직도 버서커 상태 안 풀린 줄 알았잖아.”

“뭐? 미친놈아?! 버서크?! 나한테 그딴 마법을 걸었냐!”

“미안해. 진짜 미안. 그래도 이기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고.”

“이게!! 끄아악!”

“아직 무리하지 마. 그것보다 자, 이걸 보라구! 그래도 의뢰는 완수했으니!”

해커의 손에는 마나를 가득 품은 옴니아의 심장이, 몸에서 꺼냈는데도 살아서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너 이게 그 노인이 의뢰한 석류가 아니기만 해봐! 끄으으.”

“하하하. 돌아갈 준비나 하라구. 리치가 봉인됐으니 이 미로는 곧 무너질지도 몰라. 그전에-”

해커는 몸을 일으켜 옴니아의 방으로 걸어들어갔다.

“난 여기 있는 것 좀 조사하고 있을테니 좀만 더 쉬고 있어!”

“이런 때에도 마법연구 타령이냐-”

힘없게 대꾸한 크랙은 겨우 몸을 움직여 롱소드를 검집에 갈무리해 넣고 벽에 기대어 휴식을 취했다.

얼마 뒤 나온 해커는 미로의 지도를 얻었으니 나가기 쉽겠다 말하곤 크랙을 부축해 둘은 미궁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래서 말인데 크랙. 여기 재밌는 단서를 찾아냈거든? 아까 그 리치는 옴니아가 아니었나봐. 이 일기의 주인 말인데 이름이 장 드 아이언볼 이라나봐. 아마 우리가 본 리치는 이 사람일 거야. 듣고 있어 크랙?”

평소엔 차분하고 주로 듣는 역할의 크랙은 마법에 관련된 자료만 찾으면 말이 많아지는 친구였다. 허나 해커가 말을 걸고 있는 크랙은 그가 탄 말에 몸을 기대어 반쯤 잠든 채로 마을로 향할 뿐.

“아마 미궁을 만들어 낸 건 옴니아가 맞는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이 장 드 아이언볼이라는 마법사가 들어가서 주인행세를 했던 건가봐. 데미리치가 아닌 그냥 리치라는 점도 이제야 납득이 가네. 그리고-”

의뢰주인 영감의 집에 도착하기까지 쉴 새 없이 떠드는 해커탓에 크랙은

‘하, 저놈을 다음 모험에는 데려가지 말까.’

하는 생각을 말 위에서 곱씹었다.

 

“자요. 영감님. 이게 영감님이 원하던 ‘옴니아의 석류’ 요.”

“오오. 이것이! 바로!”

“요번 의뢰 난이도가 생각보다 셌어요. 이거 다 알고 저한테 의뢰한 거죠 영감님?”

크랙은 완전히 지쳐 몸은 수그리고 있는 상태임에도 팔을 쭈욱 뻗어 손을 까딱였다.

“알겠네. 자네가 섭섭지 않게 주도록 하지! 정말로 이걸 해내다니 대단하군! 허허!”

‘이 망할 영감탱이. 지도 내가 못해낼 거라 생각하면서 맡긴 거였어?’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며 돈이나 받고 한동안은 호화롭게 누리며 쉬자는 생각만을 맘속에 가득 채운 크랙은 영감이 그 손에 돈주머니를 쥐어주자 곧바로 열어 금화들을 세었다.

“…스물 아홉, 삼-십. 오-! 영감님! 다음에도 부디 저에게 의뢰를!”

무려 금화 30개의 통큰 의뢰비를 받은 크랙은 이제까지 없던 싹싹한 태도로 영감에게 넙쭉 고개를 숙여보였다.

“흥! 그럴 일은 없을 걸세!”

“아님 말구요.”

“돈 받았으면 그만 가라구. 난 이제부터 이것으로 영생을 얻어야겠으니! 크허허허!”

“열심히 사십쇼~ 만수무강 하세요 영감님-”

크랙이 영감의 집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던 해커에게 다가서자 해커는 방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왜 웃냐 너는?”

“그 심장말야. 효과는 나름 있을 거야.”

“뭐? 진짜?”

“리치로 변할 정도의 대단한 마법사의 심장이잖아. 마나가 가득 고여 있어서 드신다면 아마 몇 년간은 팔팔하게 장수할 걸?”

“뭐야. 겨우 몇 년이냐?”

“뭐. 늙은이한텐 하루하루가 소중할테니.”

“하- 됐고 가서 사치와 향락. 호화스러운 음식과 휴식을 즐기도록 하자.”

“거절할 이유가 없지!”

멀리 지평선에서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아침 해가 떠올랐다.

“근데 이아침에 그런 걸 누릴 장소가 있긴 해?”

“시끄러! 이 흑마법사야! 다음엔 위기상황에서 너부터 족칠거야!”

“동료끼리 왜 그러시나-!”

“너만 득봤어 아주!”

어스름이 걷히고 아침놀이 불타는 도시의 안쪽으로, 그들은 그렇게 걸어갔다.

 

--------------

이번 건 괜히 이야기만 길어진 느낌입니다. 

하루 하나씩 쓰기로 해서 오늘도 써재꼈는데 생각보다 좀 늦게 썼더니 12시를 넘겨버렸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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