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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387   223 hit   2018-04-16 17:47:02
[단편] 우리들에게 커피는 식사다.
  • User No : 1023
  • 남자친구와 함께
    Lv33 꾸꾸맘

<우리들에게 커피는 식사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커피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대체식품이었다.

 

옛날 우리들의 조상은 수렵생활을 했었다.

 

달이 떠오르는 밤 내내 사냥감을 습격하고 그들의 생명을 빨아먹는 것을 너무 오랜 세월 즐기다보니,

 

바보같이도 우리 세대에 와선 자원이 모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후세대인 우리들은 일을 해야만 했다.

사회를 이루어야 했다.

시스템을 만들어서 식량을 효율적으로 나눠 먹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엔 더 이상의 낭비는 허용되지 않았다.

 

식사란 더 이상 우아한 쾌락의 만찬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주식을 넣은 커피나 차같은 음료 몇 잔으로 대체되었다.

 

그 옛날의 사치스러운 식사를 그리워하는 기성세대들도 있었지만 우리 세대는 그런 식사는 매우 시간이 걸리고 비효율적이며 지저분하기까지한 야만적인 식문화로 취급된다.

 

하여튼간에, 너무나도 바쁜 톱니바퀴 같은 생활에 익숙해져 우리들은 더 이상 옛날 여유롭게 사냥하고 즐기던 시절은 잊어버렸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들은 하루에 몇 잔씩이고 식사 대용으로 커피를 마신다.

 

오늘도 밤이 되자 나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늘 가던 카페에 들어갔다.

 

찌르릉 종이 울리자 카운터에서 한참 뭔가를 작업중이던 주인장이 고개를 들어올리고 반갑게 나를 맞았다.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오늘의 식사를 주문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투샷으로 주시겠어요?”

 “오늘은 많이 졸린가 보네요. 어제도 아침까지 일하셨나요?”

 “네, 날이 밝으면 위험하지만... 에휴, 일이 많으니 어쩔 수가 없죠. 아무튼 오늘은 강하게 뽑아주세요.”

 

카페 점장은 주문받은 커피를 빠르게 만들기 시작했고,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에 진한 커피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곳은 나의 단골 카페. 나는 이 곳이 참 좋다.

 

점장도 친절하고, 음악 셀렉션도 내 취향이고..

 

무엇보다 가끔 희귀한 재료를 구할때 마다 점장이 준비해주는 '오늘의 커피'는 매일 아침 내가 손꼽아 기다리는 메뉴였다.

 

점장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피를 만들다가 기분이 좋은 듯이 내게 말했다.

 

 “아, 맞다. '오늘의 커피'로 해드릴까요?"

 "오! 간만이군요..!"

 "네, 요즘엔 사냥감이 참 적어요. 하지만 손님은 참 운이 좋아요. 언제나처럼 비밀이지만, 사실 어제 아주 좋은 재료가 들어왔답니다.”

 “오, 설마..?”

 “네, 간만에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순수 자연품을 구했어요. 게다가 꽤 곱기까지 했답니다. 손님 오기 전에 간단히 손질을 하는데 즙이 흘러나오는 모양이 완전 최상품이었답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그래요?”

 

가슴이 두근거린다..!! 간만에 오늘의 커피라니.

 

 

나 같은 몇 안 되는 단골 손님들만 아는 거지만, 사실 이 곳 점장이 여가시간에 즐기는 취미는 사냥이다. 아, 밀렵이라는 말이 더 맞겠구나.

 

면허도 없는 사람이 함부로 사냥을 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용케도 이 곳 점장은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가끔해도 걸리지 않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혹시라도 언젠가 그가 걸려서 형을 받게 된다하더라도, 나야 뭐 손님일 뿐이니 시침 뚝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그가 밀렵을 들킬 때 까지는 손님인 나는 그의 전리품의 일부를 비밀스럽게 공유받기만 하면 된다.

 

 “그럼, 이번에도 한 번 맞춰볼까요?”

 “하하하, 손님. 맞춘 것 보다 틀린 적이 훨씬 더 많으시면서.”

 

그가 이 불법취미를 내게 밝힌 이유는 하나의 여흥 때문이었다.

 

나는 공장식에 익숙해진 세대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비밀스럽게라도 자연식을 접하게 되는 때가 오면, 쓰인 원재료가 무엇이었는지 맞춰보고, 만약 제대로 맞춘다면 커피 값을 받지 않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1초가 1분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기다리자, 점장이 드디어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 건넸다.

 

나는 잔을 받아 들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살짝만 맡아도 혀 밑에 침샘에서 홍수가 흘러나오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향기의 폭발.

 

 “와.. 향기가 장난 아닌데요?”

 “품질은 자신있습니다! 아무리 저라도 너무 늙은 건 사냥만 하지 손님에게 내어드리진 않습니다. 자, 어서 드셔보세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후후 커피를 불어 식혔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갖다대고 한 모금을 입에 물었다.

 

 “....!!!”

 

코로 맡은 향기가 입안에 가득 퍼진다.

 

좋은 원두의 바디감에 특별 재료의 맛이 어우러져 혀를 괴롭힌다.

 

너무나도 달콤한 맛이 혀를 두드리자, 나는 숨도 쉴새없이 순식간에 뜨거운 커피를 목구멍으로 넘겨버렸다.

 

그런 나를 보며 점장이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어떤가요? 맛있나요? 이번엔 맞출 수 있겠어요?”

 “..읏..잠깐만요. 조금만 더 마셔보고...”

 

나는 점장의 질문에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정신없이 두 번째 모금을 마셨다.

 

정말이지 목구멍 뒤로 넘기기 아까울 정도의 맛과 향기다.

 

그러나 커피는 혀 밑에서 뿜어져나오는 내 자신의 침 때문에 금방 입 속에서 묽어졌다.

 

아쉬워하면서 커피를 삼키니 이윽고 내 머릿속에 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부드러운 갈색머리를 목 뒤로 길게 휘날리는 하얀 피부의 여성.

그 여성은 땀에 차서 열심히 달리고 있다.

달릴 때마다 온 몸의 탱탱하고 부드러운 살이 흔들린다.

그녀가 달리다가 내 쪽을 돌아본다.

그녀의 얼굴은 포식자를 바라보는 초식동물처럼 공포에 가득 차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게임만큼은 내가 이긴 것 같네요.”

 

나는 눈을 감고 그녀를 감상하다가 자신 있게 점장에게 말했다.

 

점장은 눈썹을 까닥이며 내게 정답을 촉구했다.

 

 "...정답은?"

 “20대 여성. 그것도 동양인이군요.”

 “하하, 정확하네요. 이번엔 당신이 이겼습니다.”

 

점장은 두 손을 들며 완전히 졌다는 자세를 취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정답을 맞췄다!

 

이렇게 커피에 녹아든 인간이 선명하게 떠오른 적은 드문 일이다.

 

그만큼 점장의 커피내리는 솜씨가 더 좋아졌던가, 아니면 이 아가씨가 보기 드문 최상급 재료였기 때문일 것이다.

 

 “후우.. 이 여자를 어디서 찾았나요?”

 “교외 공원이요. 겁도 없이 밤에 혼자 덤불 안에 숨어있더군요. 아마 해가 뜬 시간에 이동하다가 실수로 무리하고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아하, 그 공원 말씀이십니까. 흐음.. 다음 휴일에 한 번 그 근처를 가봐야겠네요. 좋은 인간을 사냥하게 되면 이 곳으로 가져오겠습니다. 또 커피로 끓여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값은 좋게 쳐드릴께요.”

 “그럼 이번엔 제가 이겼습니다. 이 아가씨, 잘 마시겠습니다. 물론 딴 곳에 말은 안할께요.”

 

나는 커피를 든 손을 슬쩍 들어올리며 점장에게 인사하고 뒤를 돌았다.

 

‘이 커피덕에 오늘은 기분 좋게 일할 수 있겠군.’이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점장이 “저기, 잠깐만요!”하며 나를 불렀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점장에게 머쓱거리며 말했다.

 

 “윽, 역시 간만에 이런 퀄리티의 인간이 쓰인 커핀데.. 값을 드려야겠죠?”

 

하지만 점장은 가볍게 웃고 고개를 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뇨, 쿠폰에 도장 찍어가셔야죠.”

 

 

 

 

 

 

----------

 

배페 장르문학동아리 엽편대회에 냈었던 단편입니다 :) 주제는 커피였어요.

 

작중 묘사되는 사회나 인물들은 흡혈귀입니다.

사회 안에서 숨어살던 흡혈귀들이 너무 인간을 잡아먹다 어느새 수가 역전되어 흡혈귀가 사회를 이루고 인간들이 숨어산다는 설정입니다.

 

비달보고천국가세요
-원스토어북스 선연재

(빌슈타인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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