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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432   164 hit   2018-07-10 22:25:19
[단편대회] 시네마천국 +1 (2)
  • User No : 7895
  • 가입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Lv02 lIlllIIlIlI

낯선 천장이다.

익숙한 문장이지만 천장의 위치는 익숙하지 않았다. 천장은 내 발밑에 깔려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진 좀비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눈 한 번 깜빡이고 나니 어느새 서부극에서나 볼법한 증기기관차 위였다.

B급도 정도가 있다. 세상에 어떤 영화가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도중에 서부극으로 장르가 변하는가. 감독인지 신인이 악마인지 모를 개자식의 멱살을 붙잡고 따지고 싶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데드풀 같은 역할은 맡아본 적이 없다. 제 4의 벽은 재난물을 찍을 때 고립되었던 방공호의 벽보다 견고했다.

 

“마지막 유언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카우보이모자를 쓴 남자가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서부극 맞네. 맞서 싸우는 씬은 아닌가보다. 내게는 총이 없었다. 낙담해봤자 감독이 원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배웠다.

고문 포르노는 아닌 것만 해도 어디야.

위안 같지도 않은 위안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도망칠 곳을 살폈다. 기차는 다리를 지나는 중이었다. 까마득한 다리 밑으로는 유속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넓은 강이 있었다. 의도가 뻔하다 못해 구식이다. 흥행감독은 죽어도 못되겠고 예술 감독이 되고 싶다면 차라리 환생을 추천하고 싶다.

맨 앞 칸에서 우렁찬 기적소리가 들렸다. 매캐한 매연이 뭉게뭉게 우리를 덮쳤다. 무대 장치도 구식이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했다. 주인공 보정을 믿어야 할 때다. 그동안 자살하려 온갖 방법을 동원해봤지만 말도 안 되는 기적으로 살아남지 않았던가. 고작 이백여 미터에서 떨어진 정도론 생채기도 나지 않을 터다. 나는 매연보다 검은 수염을 가진 사내에게 유언을 외치며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앤 굿나잇.”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어이, 뭘 멍을 때리나. 어서 준비해!”

 

내가 인지하지 못한 장면 몇 개가 지나가고 나는 거리에서 또 총구에 겨눠지고 있었다. 감독은 어떻게든 한 번은 총상을 입혀야 직성이 풀릴 모양이었다.

상황은 바로 전 씬보단 나았다. 이번엔 기차가 아닌 황폐한 길거리였으며 손에는 총이 쥐어져있었다. 주변은 많은 사람들이 띄엄띄엄 원을 그려 남자와 나를 둘러쌓고 있었다. 결투씬이었다.

남자는 겨누던 총을 홀스터에 집어넣고는 뒤로 돌았다. 서부식으로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자는 뜻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 뒤통수에 총알을 두셋 박은 다음 도망치고 싶지만 베드에스 캐릭터가 아닌 이상에야 주인공은 비겁한 행동을 해선 안 된다. 그랬다간 우리의 엿 같은 감독님께서 더 엿 같은 방법으로 보복을 해온다.

나는 반칙할 생각은 깔끔하게 접어버리고 뒤로 돌았다. 제대로 사격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남의 총알은 대부분 빗나가고 나는 대충 갈겨도 찰떡같이 맞는 것이 주인공이다.

아, 그런데 몇 발자국에서 쏘는 것인지 못 들었.

탕. 세발자국이었네.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 쓰러졌다. 더듬더듬 상처를 손을 짚어 상처를 찾으려했지만 도통 어디를 맞았는지 모르겠다. 온몸이 불타는 것 같아서 특정한 부위를 짐작할 수 없었다.

혹시 이대로 정말 죽는 건가. 정말로 끝나는 것인가 싶어 기뻐하려는 차에 관중들이 배를 잡고 웃어댔다.

이 사이코패스 새끼들 사람이 죽어가는 데 뭐가 그렇게 웃겨?

분노는 고통도 잠시 잊게 한다. 나는 벌떡 일어나 눈을 부라렸다. 그러던 중에 날 쏜 남자의 총이 눈에 띄었다. 총구에서 신기루 같은 연기 대신 꽃다발이 튀어나와 있었다.

어느새 서부극에서 코미디로 장르가 변한 모양이다.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총으로 얼굴을 가렸다. 벌건 상판을 모두 가리에는 부족했다.

어디 내 총에서는 뭐가 튀어나오나 보자. 뭐든 지금보단 가리기 좋겠지. 총구를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의식이 날아갔다.

 

다시 눈을 떴다. 막이 올랐다.

인생에 다시 있을까 싶은 사랑을 했다.

막이 올랐다.

전쟁터에서 가장 시끄러운 소리는 신입 소위의 비명소리란 사실을 배웠다. 다 좋은데 한잠 늘어지게 자는 장면 좀 넣어줬으면 좋겠다. 다음 장면이 되면 육체의 피로는 말끔히 사라졌지만 정신은 슬슬 한계다.

막이 올랐다.

아, 씨발 잠깐만 마이클 베이 아.

막이 올랐다.

뮤지컬은 언제나 좋다. 그저 머리를 비우고 노래에 몸을 맡기는 순간만큼은 이 지옥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될 정도다.

막이 오르고 막이 내린다. 숱한 위기를 때로는 클리셰로 때로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극복했다. 장면 장면의 순간만 모아도 벌써 백년은 훌쩍 넘겼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타인의 삶을 살아가며 반쯤 미쳤지만 나머지 반은 성숙해졌다.

나는 젊은 육체로 움직이며 노인의 사고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떠한 위협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필요할 때에는 고지식함을 지켰다. 보다 성장한 나는 여전히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아니다. 살면 살수록 삶에는 끝이 필요하단 생각이 절실해졌다.

특히 지금처럼 어린아이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고 있을 때에는 더욱 더. 나는 울부짖으며 아이의 피로 번들거리는 칼을 내 목에 박아 넣었다.

 

“흐읍!”

 

그리고 다시, 막이 오른다.

나는 배우다. 삶은 영화다. 엔딩은… 아직 묘연하다.

 

 

 

 

이. 세. 계. 좋.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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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령회원 님이 이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 1
  • Lv38 키르슈 열다섯 살 2018-07-15 20:11:24

    '낯선 천장이다.'

    사실 첫 문장인 이 부분을 보자마자 덮어버릴 뻔했습니다.

    아주 익숙한 클리셰를 표방하는 첫문장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지더군요. ^^

    계속해서 이세계를 넘나드는 주인공은 '감독' 역할을 맡고 있는 신에게 휘둘리며 온갖 고난을 겪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너무 잦은 장면 전환이 글을 읽는데 몰입감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감점요인이었습니다.

    글 자체만으로는 특정 이세계물 장르소설의 도입부로 쓸만했지만, 이건 결국 단편만으로 이야기를 끝낼 수 없다는 단점도 되기도 했습니다.

    장편 소설로 간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설정의 소설이 나올 듯했지만, 단편이라 아쉬운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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