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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449   330 hit   2018-07-29 21:38:21
주제 교환 이벤트 - 마녀의 저주 +5 (6)
  • User No : 1023
  • 노화방지
    Lv34 꾸꾸맘

맛있는 냄새로 가득한 실내공기,

높은 천장에 솟구쳐 있는 알록달록한 풍선들,

땅바닥에는 널브러진 선물포장지,

10개의 초가 꽂힌 생일 케이크,

내가 촛불을 후 불자 기쁘게 생일축하송을 불러주는 친구들의 노랫소리.

 

하지만 그들이 누구였는지는 단 한 명도 생각나지 않아요.

 

당연한 거 아닐까요? 벌써 10년이나 지난 어린 시절의 기억인걸요.

 

하지만 단 한 명만은 지금까지..

 

지금까지 줄곧 내 깊은 곳에 뿌리박혀있어요.

 

그 아이는 즐거웠던 내 열 번째 생일잔치 때 초대받지 못했던 아이였습니다.

 

전학 온지 두 달째였던 그 아이는 눈을 찌를만큼 길고 찰랑거리는 앞머리에 참새처럼 목소리가 작았던 여자애였어요.

 

소심해서 언제나 굳은 얼굴인 주제에 맨날 예쁜 치마만 입고 다녔죠.

 

그래서 남녀할거없이 뛰놀며 다니기 좋은 바지차림인 아이들 사이에서 굉장히 눈에 밟히는 아이였죠.

 

당시 나는 반장이었어요.

 

그래서 전학 오고 적응을 못해서 쭈뼛거리던 그 아이에게 일부러 말을 열심히 걸었었고,

 

같이 다녀주며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하지만 그 아이가 내 덕분에 반에 녹아들자, 시간이 갈수록 나는 그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이유는 잘 몰랐었죠. 그냥 그 아이가 옆에 있으면 안절부절 거리고 짜증이 났었어요.

 

그랬기에 일부러 심술궂은 일을 했었어요.

 

그 해 생일, 나는 엄마아빠에게 간곡히 부탁해서 동네 패스트푸드점의 플레이룸을 빌려 초호화 생일 파티를 열었었어요.

 

흔히 정글짐이라고 불리는 실내놀이터가 딸린 플레이룸은 당시 아이들의 로망이자 성지였어요.

 

그 때 나는 반 친구 모두를 초대했었지만 괜히 신경 거슬리던 그 아이만은 빼버렸어요.

 

왜 그 여자애만은 초대 안했나며 누군가 물어볼 것 같았지만 다행히 아무도 묻지 않았어요.

 

평소 각자의 엄마들에게 눈치 보여 먹지 못했던 맛있는 햄버거들과 눈과 심장을 홀리는 형형색색의 놀이기구에 모두 정신이 팔렸거든요.

 

밝게 웃고 떠드는 아이들 속에서 나는 그 아이만 따돌린다는 불편한 마음이 점점 만족감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 아이 없이도.. 즐겁다...!!’

 

역시 그런 아이 한 명 쯤 없어도 모두들 상관없구나.

역시 그 아이가 없어도 나는 이렇게 기쁠 수 있구나.

 

그 사실을 파티 도중에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떠올리며 나는 안도했었고 그렇게 내 생일 파티는 성공적으로 끝나는 줄 알았어요..

 

왁자지껄한 잔치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 화장실에 가기 전까지는 말이죠.

 

소변을 보고 방금 들은 생일축하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내 등 뒤에서 화장실 칸이 열리며 누가 나왔는지 알아요?

 

언제 어떻게 알고 온 건지, 놀랍게도 거울에 비친 얼굴은 내가 초대 안했던 그 아이였어요.

 

그 아이의 얼굴에는 운 흔적이 잔뜩 남아있었어요.

 

촉촉해진 두 눈, 딸기처럼 끝이 빨개진 코, 그리고 볼에 남아있던 눈물자국.

 

명백하게 굳어있는 그 아이의 표정을 보자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나오는 공주가 된 것 같았어요.

 

그 있잖아요. 세 명의 요정이 공주의 첫 생일 잔치에 초대받아 하나씩 축복을 줬는데 초대 받지 못한 한 마녀가 갑자기 쳐들어와 공주에게 물레바늘에 찔려 죽는 운명의 저주를 내린 이야기요.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어요.

 

현수야, 생일 축하해.’

 

그냥 그 아이가 마음에 안 든다? 불편하다? 껄끄럽다?

 

여하튼 나도 모르는 감정 때문에 괜히 그 아이만 초대하지 않았었는데...

 

...그렇게 슬퍼할 줄은 몰랐는데.

 

다시 말하지만 나는 처음엔 갓 전학 왔던 그 애와 한동안 같이 다녔었어요.

 

저와 친해진 줄 알았겠죠. 저와 친구인 줄 알았겠죠.

 

그런데 자기만 쏙 빼고 이렇게 즐거운 생일파티를 열고 있다니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까요.

 

하지만 그래도 그 아이는 거울 너머로 억지로 미소 지으면서 생일을 축하해준 후 선물을 주겠다고 말했어요.

 

‘..네가 눈감으면 두고 갈테니까 돌아볼 필요 없어. 그러니 그대로 눈감아줄래?’

 

파티 주최자와 초대 받지 못한 손님이 화장실에서 단 둘이 마주친 상황.

 

엄청 어색하고 미안한 상황인데도, 어렸던 나는 그 와중에 그 애가 뒷짐 진 손에 무슨 선물이 있는지 궁금해서 눈을 감아버렸죠.

 

그렇게 내가 눈을 감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요?

 

...

 

저주를 당했어요.

 

향긋한 향이 나더니 그 애가 내 입에 독사과를 물리더군요.

 

그 순간 내 심장에는 그 아이가 내린 저주에 감염되버렸어요.

 

깜짝 놀라 눈을 뜨니 그 아이는 이미 거울에서 사라져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멀어졌어요.

 

학교에서 마주쳐도 말을 나누지 않았고, 반이 갈라지고, 졸업해서 학교도 갈라지면서 그렇게 멀어졌어요.

 

하지만 그 날 그 애가 내게 남긴 저주는 지금도 살아있어요.

 

그 날부터 지금까지 내 심장은 언제나 고통에 몸부림쳤고 특히 지난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은 매우 괴로웠어요.

 

더운 여름날 덥다고 짝꿍이 치마를 허벅지 위까지 올리고 그 안쪽으로 부채질을 할 때.

아침 등교할 때 덜 마른 머리를 휘날리며 앞자리 애가 향긋한 샴푸향을 풍길 때.

내 취향의 옆 반 아이랑 합동체육수업을 하면서 같이 옷을 갈아입을 때.

겨울에 춥다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팔짱을 끼어올 때.

 

내가 그 모든 흥분되는 상황 속에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금방이라도 치마를 마저 위로 올리고 더 안 쪽을 탐하고 싶었어요.

당장에 그 향기로운 머리카락을 쥐어잡고 맘껏 코로 들이마쉬고 싶었어요.

옷 갈아 입는 시간 때는 그 하얀 속옷 너머까지 남몰래 상상했었죠.

나를 친구로만 보는 그 아이가 팔짱을 껴왔을 때 당장이라도 품에 안고 입을 맞추고 싶었다구요!!

 

하지만.

 

하지만 그럴 수 없잖아요?

 

나같이 이상한 저주에 걸린 애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거잖아요?

 

내 열 살 생일날, 예쁜 치마에 찰랑거리는 긴 머리의 그 여자아이와 친해지면서 저는 이미 그 마녀에게 홀린 거였던거에요.

 

점점 그 애에게 끌리는 그 마음이 이상하단걸 깨닫고 그 생일날 연을 끊을려고 초대를 안했던 거였죠.

 

하지만 내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그 마녀는 기어코 찾아와서 내게 영원한 저주를 내리고 갔어요.

 

그도 그럴게, 여자가 여자에게 애정과 욕정을 느끼는 건 비정상적인 거잖아요?

 

그 화장실에서 눈을 감은 내 첫키스를 빼앗아가면서 동시에 내게 여자에게만 마음이 끌리는 마법을 걸고 간거에요!!

 

어떻게든 그 저주를 풀어내려고 그 아이와 완전히 절교하고 완전히 연을 끊고 살아왔지만..

 

..이젠 안되겠어요.

 

내가 걸린 저주는 아마 그녀만이 풀 수 있는 걸꺼에요.

 

그래서 나는 그 아이를 찾아봤어요.

 

성인이 되자마자 인터넷으로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비밀 클럽을 들쑤시고 다녔죠.

 

하하하, 그렇게 여러 클럽들을 찾아다닌 결과 정말로 찾았지 뭐에요.

 

떡하니 자신과 같은 사람을 찾는 다며 자기 사진을 올려놨었는데...

 

세상에나, 역시 내게 저주를 건 마녀답게 아주 요망하더라고요.

 

앞머리로 눈을 찌르고 다니던 그 수줍은 소녀의 앳된 얼굴이 남아있는 예쁜 여자가 사진 속에서 미소 짓고 있었어요.

 

그렇게 나는 그 아이를 성공적으로 찾았고, 몇 번의 쪽지 교환 후에 실제로 불러낼 수 있게 되었답니다.

 

오늘 열두시에 종로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내게 저주를 걸었던 열 살 생일파티 이후 십년만이니까, 내 정체를 알면 그 아이 많이 놀라겠죠?

 

왜냐면 일부러 내 프로필 사진에는 다른 여자 사진을 올려놨었거든요.

 

뭐 어찌 되었든, 이번에는 그 아이가 날 보고 웃어줬으면 좋겠네요.

 

거울 너머가 아닌 직접 눈을 마주치면서 그 때 생일초대를 안했던 일을 사과하고 싶어요.

 

내가 그 때 일을 이야기하면 그 마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내게 걸린 저주를 풀어줄까요?

아니면 더욱 저주가 깊어질까요?

 

얼른 그 아이를 만나고 싶어요.

 

, 잠시만! 지금 몇 시지?

 

버..벌써 시간이 이렇게? 

 

으아아 어떡해!! 늦겠다!! 

 

나 아직 화장 다 못했는데...!!

 

-

 

 

 

 

 

제가 받은 주제는 '저주'였습니다. 약간 미완성 느낌이 나지만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요즘 배페 트렌드에 맞게 써봤는데... 쓰면서 즐거웟어요 호호호

1. 배페인 님이 이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2. 도프리 님이 이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비달보고천국가세요
  • 1
  • Lv34 꾸꾸맘 노화방지 2018-07-29 21:39:55

     
  • 2
  • Lv01 네빙 가입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2018-07-29 22:42:57

    와보...!

     

    가 아니라 성소수자의 감정을 저주로 해석하시다니 재밋었네요!

     

    좀 더 야하게써서 삼진당했어야했는데 아쉬워라!

    1. 꾸꾸맘 님이 이 댓글을 좋아합니다.
     
  • 3
  • Lv38 정력왕 삑삑, 학생입니다. 2018-07-29 23:29:17

    아.. 아쉽다.......사.. 삼진...가능... ㅠㅠ

     

     

    근데 이렇게 저주로 볼수도 있네요 

    1. 꾸꾸맘 님이 이 댓글을 좋아합니다.
     
  • 4
  • Lv10 배페인 새내기 2018-07-30 02:10:59

    와... 열 살짜리가 얼마나 입놀림(?)이 좋았으면 여주인공의 성적 취향까지 바꿨을까요?

     

    흠흠 어쨌건

     

    저주에 걸린 본인은 나름대로 저주를 억누르려 하지 않고 받아들여 결국 그 아이를 만났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결국 저주 덕분에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포인트같습니다. 재밌는 글이었습니다.

    1. 꾸꾸맘 님이 이 댓글을 좋아합니다.
     
  • 5
  • Lv38 도프리 자작그림에 관심이 많은 2018-07-30 13:25:07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불안함과 불쾌함으로 느껴서 괴롭히고 싶어지고 마는 초등학생의 심리가, 정확히 그 감정을 확인하고 나자 

    '저주' 라 부를 정도로 강렬하게 빠져버린 것을 동화의 요소를 통해 재밌게 풀어내셨네요!

    재밌게 잘 읽었어요! 오홍홍! 

    1. 꾸꾸맘 님이 이 댓글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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