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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450   288 hit   2018-07-29 22:41:01
주제 교환 이벤트 - 검 +5 (3)
  • User No :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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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38 기번

 

 

  “나는 검입니다.”

  그는 그렇게 어두를 뗐다.

  나는 가만히 앉아 담배 하나에 불을 붙였다.

  “내가 보기엔 당신은 근육과 뼈, 내장 등이 들어있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그렇겠죠. 하지만 뭐라 해도 내 본질은 검입니다.”

  알쏭달쏭한 말에 나는 길게 담배를 빨았다. 담뱃재가 타들어가고,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길게 생각해봤자 모든 건 억측이겠지. 스르륵 나눠지던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좋아. 지금 확실한 건 당신이 여기 잡혀있다는 것이고, 나는 당신에게 뭐든지 물어볼 수 있다는 점이야. 그렇지?”

  “그렇지요.”

  “그렇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보자고. 당신은 80센티미터의 검으로 9명의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저질렀네.”

  “세상에서 볼 때엔. , 범죄이지요.”

  “검을 휘둘러서 무차별적으로 무자비한 난도질을 했지.”

  “무차별적이진 않습니다. 한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있었으니까요. 말벌을 잡을 때에도 둥지 째로 태워버리지 않습니까? 같은 경우입니다.”

  “그 곳에 모여 있었던 사람들이 말벌이었다? 어떤 점에서 그렇지?”

  나는 담배연기를 그에게 뱉어내며 물었다. 그러나 그는 표정 하나 깜짝 않고 대답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마약을 거래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죽였다고?”

  “그렇습니다.”

  희멀건 전등 빛 아래에서 그는 단칼에 말했다. 나는 무미건조하다는 뜻을 온몸으로 느꼈다.

  “너무 극단적인 행동 아닌가? 내가 굳이 그 사람들을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미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단 한 가지 연민 때문에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는 전부 타고 필터만 남았다. 길게 늘어졌던 재는 점점 고개를 숙이다가 푹 고꾸라졌다.

  “그럼 당신은 그 사람들을 연민하지 않는다는 건가? 직접 죽이고서도?”

  “내게 죽은 사람들을 연민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래하던 마약 때문에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마약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결국 당신이 죽인 거래자가 아니더라도 다시 마약에 손을 댈 거야. 그렇다면 당신이 한 행동은 결국 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닌, 당신 그 자신을 위해서일 뿐이네.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왜 상관이 없지?”

  “나는 검입니다.”

  나는 재떨이에 필터만 남은 담배를 비벼 껐다. 어느 정도 대화가 이어진다 싶으면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미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반복되는 말싸움에 지친 나는, 그가 사용한 장검 사진을 책상 위로 던졌다. 그는 사진 속에 있는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응시했다.

  “당신이 사용한 검이야. 도검소지법이 있는 건 알지? 찾아보니 소유주는 당신이 아니더군.”

  “받아온 물건입니다. 검이 필요했는데 그분이 마침 적당한 걸 가지고 계셨던지라.”

  “, 그래. 받은 물건. 도검소지 심사도 없이 장검을 넘겼다……. 그런데 이건 뭐지?”

  같잖은 변명이었지만 나는 넘겼다. 중요한 건 나는 다시 사진을 꺼내 그에게 들이밀었다. 그는 사진을 곁눈질 하고선 다시 날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이신지.”

  “그 사진. 시체가 찍혀있는 그 사진. 당신이 사용한 검의 소유주야. 온몸에 난도질을 당했더군. 그것도 당신 짓인가?”

  “죽였냐고 묻는 거면, 아니요. 난 죽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검만 휘둘렀습니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당신이 죽인 셈이야.”

  “내가 검을 휘두르고 나서도 소유주는 죽지 않았습니다. 내게 살려달라고 했죠. 그래서 죽이지 않고 살려줬습니다.”

  “이봐, 당신. 말장난이라는 거 알고 있나?”

  “그쪽도 결국 말장난입니다.”

  나는 재떨이를 바라봤다. 두툼한 돌덩이로 되어있는 재떨이. 이걸로 머리를 내려치면 죽겠지? 목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살인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말했다.

  “소유자는 왜 죽인 건가.”

  “소유자는 죽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나는 소유자에게서 물건을 받아가는 대가로 그의 바람을 이뤄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검을 휘둘렀죠.”

  “그런데 죽이지 않고 살려준 이유는?”

  “내게 살려달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바뀌어서 그대로 들어줬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도무지 대화를 할 만한 힘이 나오질 않았다.

  “내가 왜 말장난을 한다고 말한 건가?”

  “원하는 걸 말하지 않으니까요.”

  “원하는 것?”

  “.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걸 나한테 말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들어줍니다. 나는 검이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나에게 간접적으로 빙빙 돌려 다가오기만 합니다. 그래선 나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직접 말하세요. 원하는 걸 내게 말하세요.”

  나는 짧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정말 원하기만 하면 다 들어준다고?”

  “그렇습니다.”

  “당신이 검이기 때문에 들어준다고?”

  “그렇습니다.”

  “좋아. 다시 시작하지. 당신은 80센티미터의 장검을 구하기 위해 소유주를 공격했네. 맞나?”

  “. 내가 공격을 했었고, 그가 살려달라기에 멈췄습니다.”

  “소유주가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었지만 당신은 죽이지 않고 공격행위를 멈췄기에 살려준 거야. 맞나?”

  “그렇습니다.”

  “그렇게 검을 챙기고 나온 당신은 시가지로 이동해서 마약 거래자들을 공격, 9명을 살인했네. 맞나?”

  “그렇습니다.”

  “검을 가지고 있던 소유주는 자길 죽여 달라고 했기에 공격했다고 얘기했네. 맞나?”

  “그렇습니다.”

  나는 책상을 후려치며 그에게 소리 질렀다.

  “그렇다면 마약 거래자 9명은 대체 왜 죽인 건가!”

  “소유주에게서 검을 받으러 가기 전, 그의 친우의 바람을 들었습니다. ‘빌어먹을 마약 거래. 다 죽여야 해. 그래야 이런 일이 더 안 생기지.’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들어줬습니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가 나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바람이었고, 내가 들어줬습니다.”

  “당신이, 당신이……. 어떻게.”

  “나는 검입니다.”

  나는 그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인형이었다. 머리를 내려치고 주먹으로 때려도 그는 비명이나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나는 그의 목을 조르며 소리쳤다.

  “그 개 같은 소리 좀 그만 해! 검이라는 게 뭐야! 넌 사람이야! 사람! 너도 목을 조르면 죽는 사람이라고! 검이라는 건 네가 사람 죽일 때 쓰던 그 물건이잖아! 네 어딜 봐서 검이라는 거야!”

  “그건 겉모습일 뿐입니다.”

  그는 목이 졸려 얼굴이 벌겋게 변해갔지만, 여전히 건조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는 검입니다. 누군가가 바라고 날 쓰길 바란다면, 나는 그렇게 해줍니다. 행위와 결과에 내 감정은 필요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나는 움직입니다. 검이라는 건 그렇습니다. 감정이란 게 없습니다. 설령 있더라도 감정을 토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부스러져 사라질 때까지, 나는 누군가의 바람을 들어주고 움직입니다.”

  나는 그의 목을 더욱 세게 졸랐다. 그의 얼굴이 불그스름해지다 못해 거무죽죽해졌다. 그런데도 그의 목소리는 평온하게 흘러나왔다.

  “당신이 원하는 게 뭡니까?”

  그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검은 동공이 나를 바라봤다.

  피와 검은색.

  나는 죽음을 붙잡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생각하기 귀찮아졌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그는 옅게 미소 지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죠.”

  말과 동시에 그는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목을 조르던 감각은 선명한데도, 그와 얘기했던 흔적들은 남아있는데도. 그는 방에 들어온 적도 없다는 듯,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보관실로 내려가 그가 범죄에 사용한 검을 꺼내들었다. 증거를 보존하기 위해 검에는 핏자국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적어도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건 아니었다.

  “……귀신같군 그래.”

  “그래요. 요즘 말론 그렇겠군요.”

  그의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봤다. 그러나 보관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등 빛 아래, 요사스레 빛나는 검면. 그리고 거기에 비치는 내 얼굴과 옅은 미소를 뺀다면. (*)

 

 

=================================================================

 

배당받은 주제는 '검' 입니다.

 

사전으로 뜻을 찾아봤더니 우리들이 평균적으로 알고 있는 검(劍)이라는 것 이외에

 

귀신을 말하는 단어도 존재하고 있기에 중의적으로 써봤습니다.

 

==================================================================

 

주최자가 제일 늦어서 죄송합니다.

 

배당받은 주제로 뭘 쓸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우선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모로 부족했던 이벤트라 다들 즐기셨을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글쓰기에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꽤 실험적인 이벤트였는데도 참가해주셨다는 것도 감사드리고요.

 

모든 것에 다 감사드리고 싶네요.

 

 

1. 배페인 님이 이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2. 도프리 님이 이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3. 꾸꾸맘 님이 이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 1
  • Lv34 꾸꾸맘 노화방지 2018-07-29 23:35:29

    우왕 진짜 검이었구나;;; 귀신이란 중의적 뜻도 있었다니 

    신비로운분위기였네요

    재밌었어요, 호우.

     
  • 2
  • Lv38 정력왕 삑삑, 학생입니다. 2018-07-29 23:47:32

    검과 귀신... 검과 .. 귀신이라.. 뭔가 쭈욱 읽히다가도.. 막히다가도 읽히네요

     

     

    생각할만한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3
  • Lv10 배페인 새내기 2018-07-30 02:23:24

    검이라는 말에 담긴 중의적인 의미를 멋지게 해석해내셨네요. 나름대로 쉬운 주제를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단순함이 고민을 깊어지게 만들었나보네요 ㅜㅜ

     

    검이야 그 스스로는 무생물이니 판단을 하지 못하고 쓰는 사람에 달렸죠. 검이 사람을 죽였다고 사람을 가두면 가뒀지 검을 부러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인간이 사용하는 단순한 도구인 검에 빗대면 이야기는 쉽지만, 조금 복잡한 도구인 기술 자체를 두고 보면 사람들은 혼란해합니다.

     

    우라늄을 통한 핵분열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고효율의 발전기가 되거나, 대량살상무기가 되는게 그 예죠.

     

    우리는 우리 손에 들린 도구가 어떤 결과를 내건 도덕적인 처벌을 도구에 내릴 순 없습니다. 결국 도구를 사용하는 우리가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것이니까요.

     

     

     
  • 4
  • Lv38 도프리 자작그림에 관심이 많은 2018-07-30 13:39:46

    명검이 나를 사용해달라고 밤마다 운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검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도구니까 귀신에 홀려 평소 자신이 증오하던 인물들을 죽인 샘이군요! 

     
  • 5
  • Lv06 카카로트 새내기 2018-08-11 22:52:13

    검에 귀신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게 후기가 아니라 글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났으면 진짜 무릎이고 부랄이고 마구 탁탁쳤을텐데 그 점은 좀 아쉽습니다

     

    그래도 신비한 분위기와 몰입감 있게 글 쓰셔서 지루함 느끼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점은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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