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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456   201 hit   2018-08-11 01:37:49
[단편] 아내 살인범을 찾습니다. +3 (5)
  • User No : 1023
  • 노화방지
    Lv34 꾸꾸맘

< 아내 살인범을 찾습니다. >

 

 

 

오늘도 나는 아내 살인범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허탕만 치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다.

 

다녀왔어.”

 

대답이 없을 껄 뻔히 알면서도, 습관처럼 현관문을 열고 공허한 인사를 한다.

 

귀가할 때마다 마중 나와 주던 기억 속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 하루가 갈수록 희미해져간다.

 

나는 거실에 놓인 사진 액자를 집어 들고 먼지 쌓인 소파에 풀썩 앉았다.

 

액자 안에는 나의 아내 연이가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눈부시게 미소 짓고 있었다.

 

사랑스럽다.

 

하지만, 첫 눈에 내 마음을 빼앗아갔던 아름다운 연이는 이미 없다.

 

그녀를 잃었다는 슬픔에 아려오는 가슴을 움켜잡고 눈물을 삼켰다.

 

더 늦기 전에, 빨리...”

 

나는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

 

내 아내 살인범을 말이다.

 

 

-

 

 

연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뜨거운 햇살에 타죽을 것 같이 무더웠던 그 여름날, 소금기에 끈적거리는 바다가 싫었던 나는 피서지로 계곡을 선택하고 홀로 강원도 산길을 거닐고 있었다.

 

나는 밝은 햇살 속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여름 풍경을 정신없이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찰칵, 찰칵.

 

나는 셔터 소리가 좋았다.

 

내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사로잡아 영원히 포획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나뭇가지 위에서 날개를 부비며 노래하는 산새들,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 후 하늘 위에 피어나는 일곱색의 고리, 밝은 햇살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물보라들, 금색털을 휘날리며 주인을 향해 도약하는 개.

 

모든 것에는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이 존재한다.

 

마치 몇 년을 땅 속에서만 살다가 마지막 일주일동안 우렁차게 자신의 존재를 외치는 매미처럼 말이다.

 

하지만 있는 힘껏 노래한 후의 매미는 허무하게 땅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생을 마감한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수도 없이 바글거리는 개미떼에게 물어뜯기는 매미 시체들을 보아왔다.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우렁찬 소리를 빚었던 매미의 날개는 초라하게 찢겨지고 몸뚱이는 갈려져나갔다.

 

누군가에겐 삶의 열정을 모두 쏟아내고 죽은 매미 껍데기가 숭고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매우 추했다.

 

찬란했던 매미여, 차라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지 그랬는가.

 

개미떼에게 유린당하는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낼 바엔 차라리 저 날벌레들처럼 스스로 불에 뛰어들어 장렬하게 사라지지 그랬는가.

 

내가 카메라에 뜻을 두게 된 것은 그런 이유였다.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보존할 수 있는 마법의 도구.

 

아무리 마지막에는 추한 모습이 될지라도, 피사체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영원히 필름 안에 가둬두는 행위는 언젠가부터 취미를 넘어 사명이 되어 있었다.

 

그 날도 나는 계곡을 찾아 가는 길에 수없이 보이는 아름다운 산풍경들을 찍고 있었다.

 

날이 너무나도 무더웠기에 내 몸과 카메라가 동시에 과열되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두 번 다시 찍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기에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바람에 나부끼는 푸른 나뭇잎들과 지저귀는 산새들의 모습을 포획해가며 계곡가에 다다랐을 때, 나는 무언가를 목격하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숲을 가로 지르는 물결 한 가운데에서 어떤 여인이 유령처럼 떠있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로 떠내려 오는 그녀를 보고 달궈져 있던 나의 뇌는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물에 빠져 죽은 시체가 떠오른 듯한 모습이었지만, 물의 요정과도 같은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에 온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래서 그녀를 구할 생각을 차마 하기도 전에 나는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찰칵.

 

...누구세요?!”

, 죄송합니다..”

 

계곡에 울려 퍼지는 셔터 소리를 듣고 죽은 듯이 물에 떠 있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되살아났다.

 

그것이 연이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그녀는 작은 극단 소속의 배우였고, 물에 빠져 있던 것도 죽어가는 상태가 아니라 그냥 연기 연습일 뿐이었다.

 

무슨 역할이길래 물에 빠진 연기를..”

햄릿의 오필리어 역이에요! 이야기 중간부터 미쳐버리는 비운의 히로인인데, 마지막에 물에 빠져도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 하나 지르지 않고 그냥 담담히 빠져 죽는답니다.”

 

사진을 함부로 찍은 것에 대해서 그녀는 처음엔 화를 냈었지만, 너무 아름다워서 그 순간을 담고 싶었다는 내 솔직한 고백을 듣고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물에 젖어 창백해진 얼굴에 붉은 홍조가 피어오르자, 내 안에 또 그녀를 찍고 싶은 충동이 끓어올랐다.

 

나는 카메라를 꼭 쥐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을 찍어도 될까요?”

 

그렇게 우리 만남은 시작되었다.

 

당시엔 무명배우였지만 나는 진작에 그녀가 한낮 작은 극단의 프리마돈나로 끝나지 않을 거란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금방 작은 둥지에서 빠져나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스포트라이트의 창공을 날았다.

 

무대 위에 선 그녀는 시선만으로 관객을 취하게 만드는 매혹적인 꽃이었다.

 

그리고 나는 수많은 카메라 사이에서도 그녀를 가장 아름답게 찍어줄 수 있는 그녀만의 사진사.

 

나름대로 이름 있는 여배우가 되었어도 그녀는 세간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나와 결혼했다.

 

나는 자기가 찍은 사진이 무척 좋아.”

나도 아름다운 당신을 사랑해.”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내 각막에 깊게 아로새긴 결혼식 날, 우리는 사랑을 고백하며 부부가 되었다.

 

결혼 후에도 일상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그녀는 맡은 배역을 연기했고, 나는 그녀가 빛나는 모든 순간을 기록했다.

 

하루하루가 충실한 행복한 나날.

 

그러나 달이 아름다운 보름달을 이루고 나면 그 후에는 홀쭉하게 기울 듯이,

연이와의 충만한 행복의 날도 영원히 지속되지 못했다.

 

연이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실력 있는 여배우였고 당연히 그녀에게는 연심을 품은 팬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중에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모든 스케쥴 현장을 따라다니던 극성팬들도 있었다.

 

숙소까지 쫓아와서 연신 문이나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많은 피해를 받았어도 연이는 그들을 용서하고 변호해주곤 했다.

 

괜찮아, 극성맞긴 하지만 다 나를 좋아해줘서 그러는 거잖아. 내 연기에 큰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사생활을 침해하는 팬은 팬이 아니다.

 

팬 이하의 인간들에게 쓸데없는 배려를 하는 그녀를 질타하며 나는 남편 된 자로써 열심히 아내를 보호했다.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극성팬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나무랐고 심한 경우에는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했다.

 

하지만 내 행동이 과했던건지 아니면 그녀의 태도가 물렀던건지, 결국 극성팬 중 한 명이 그녀를 향한 감정에 복받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연이의 나이 29, 완연하게 핀 꽃에게 날카로운 독침을 가진 벌이 날아들었다.

 

 

-

 

 

연이가 극성팬의 칼을 맞은 그 날 이후로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시절 내 온 마음을 빼앗았던 연이는 여전히 사진 속에서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사진을 쓰다듬으며 그녀와 행복하게 지냈던 지난 기억들을 회상하다가, 이제 그 날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상기하니 미친 듯이 가슴이 아려왔다.

 

“...연이야..”

 

나는 먼지 쌓인 소파위에 웅크리고 앉아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 때, 어두운 거실에 갑자기 딸칵하고 불이 들어 왔다.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옛 기억을 더듬는 동안 벌써 해가 져 있던 것이다.

 

불을 킨 사람은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불도 안 키고 뭐하고 있던 거야, 여보?”

 

연이는 막 집에 돌아와 피곤한 안색을 보이고 있었지만 자신의 젊었을 적 사진을 끌어안고 있는 나를 보고 수줍은 소녀처럼 얼굴을 붉혔다.

 

겨우 일주일만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 하하, 나이를 먹어도 그 어리광은 안 사라지네.”

 

그녀는 겉옷을 벗으며 다가와 내 이마에 입을 맞춰주며 인사했다.

 

다녀왔어, 여보.”

 

긴 출장 촬영을 끝마치고 일주일만에 집에 돌아온 연이는 곧바로 앞치마로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원래대로라면 집에 있던 내가 식사를 만들어 줘야했지만 연이는 곧 있을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날에나 거하게 차려달라며 고집을 부렸다.

 

그래, 곧 있으면 마흔살이 되는구나.”

, 처음 만났을 때 우리 둘 다 엄청 젊었는데, 어느새 얼굴에 주름도 눈에 띄게 늘어났네.”

 

볶음밥을 만들던 연이는 세월의 흐름에 빛이 바랜 자신의 외모를 한탄하며 한숨지었다.

 

예전엔 정말 예뻤는데 말이지.”

“.....”

 

나는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다. 그랬기에 연이의 자기한탄을 굳이 부정해주지 않았다.

 

다만 내 안의 진심을 그녀에게 그대로 전달할 뿐이었다.

 

여보, 나는...”

 

나는 부엌에 있는 그녀가 아닌 사진 속 연이를 바라보며 사랑을 고백했다.

 

아름다운당신을 사랑해.”

후훗, 나도 사랑해, 여보.”

 

내 고백에 그녀가 답해주었지만 내 귀에는 다 낡아빠진 악기 같은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

 

귀가할 때마다 마중 나와 주던 기억 속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 하루가 갈수록 희미해져간다.

오히려 늙어서 점점 추해져가기만 하는 안타까운 그녀의 모습이 하루가 갈수록 덧씌워져간다.

 

여보, 나는 너무나도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늙어 가고 추해지는 당신의 모습을 견딜 수가 없어.

 

언젠가 찬란한 인생을 끝내고 땅바닥에 떨어져 개미떼의 먹이가 되는 그대를 보느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때 당신의 막을 내려주고 싶어.

 

햄릿의 오필리어가 왜 모두에게 비극의 히로인으로 기억되는 거겠니.

 

만약 그녀가 물에 빠졌을 때 비명을 질러 살아남았더라면,

그녀가 미친 채로 늙어서 생을 마감하는 걸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ㅡ 사람들은 오필리어를 아름다운 여인으로 기억할까, 아니면 추한 노파로 기억할까?

 

이제 그대를 찍어도 예전의 찬란한 빛을 담을 수 없어.

 

내가 사랑했던 그 때의 여인은 영영 돌아올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퍼.

 

차라리 당신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인 10년 전, 극성팬의 칼을 맞고 그대로 죽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안타깝게도 당신은 살아남아 버렸고 이렇게 내 눈 앞에서 하루하루 늙고 추해지고 있어.

 

그러니, 더 늦기 전에 그대의 시간을 멈춰주고 싶어.

 

모두가 당신이 눈부시게 빛나던 모습만 기억할 수 있도록.

 

지금의 당신이 사라진다면 여배우 연이는 영원히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남을테니까.

 

그러니까 여보,

 

당신이 완전히 시들어 버리기 전에 오필리어가 되어주지 않을래?

 

 

 

-

 

 

오늘도 나는 아내 살인범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사람을 납치해서 죽여 줄 사람 따위 쉽게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모아놓은 돈은 많았기에 어떻게든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사람 죽이는 일을 하는 업자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또 그녀가 바래가는 하루가 지났다 생각하니 극심하게 우울해졌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한숨을 짓고 있자니, 갑자기 사진 속 배경이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곳은 우리가 처음 만난 여름날 연이가 물에 빠져 죽는 연기를 하던 계곡이었다.

 

그 계곡은 우리 둘 외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만큼 외딴 곳이었기에 그녀를 오필리어로 만들어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서늘하게 얼어붙어있던 심장이 세차게 고동쳤다.

 

그리고 나는 머릿속으로 아내를 향한 사랑을 가득 담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괜히 고민 했어. 지금까지 괜히 고생 했어!

아내의 시간을 멈춰 줄 사람을 찾느니 그냥 내가 직접 하면 되는 걸 가지고 말이야!

 

가슴 속부터 끓어오르는 사명감에 절로 기쁨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더 늦기 전에, 여보, 내가 당신의 아름다움을 지켜줄게.!!”

 

그 후로 나는 필사적으로 연습했다.

 

내 아내 살인범 역할을 말이다.

 

 

 

 

 

 

-

 

 

1. 스타크래프트2 님이 이 게시물을 응원합니다.
2. 배페인 님이 이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비달보고천국가세요
-원스토어북스 선연재

(빌슈타인님 감사합니다.)
  • 1
  • Lv38 스타크래프트2 자유의 날개 2018-08-11 02:26:20

    중간에 매미 얘기가 왜 나오나 했더니

    1. 꾸꾸맘 님이 이 댓글을 좋아합니다.
     
  • 2
  • Lv11 배페인 새내기 2018-08-11 09:06:54

    섬뜩하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형태의 사랑이네요

     

    젊음과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남편의 행태는 마치 집념에 가득 찬 예술가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사진이라는 취미가 그걸 더 돋보이게 하구요

     

    아내가 아직 아름다울때 죽었으면 박제까지 진지하게 고려해봤을것같아 더더욱 무섭습니다

    1. 스타크래프트2 님이 이 댓글을 응원합니다.
    2. 꾸꾸맘 님이 이 댓글을 좋아합니다.
     
  • 3
  • Lv38 정력왕 삑삑, 학생입니다. 2018-08-15 04:40:04

    아....이거 진짜로 이런대화 한적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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