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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463   410 hit   2018-08-16 12:52:02
습작) 닭이 되지 못한 채 외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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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32 아스카

1.닭이 되지 못한 채

유정란이 그렇게 몸에 좋다나 봐. 나는 냉장고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달걀을 보다 문득 떠올렸다. 값도 비싸 쳐다도 보지 않던 유정란. 나는 언제나 무정란만 먹었다. 닭이 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본디 닭이 되어야 할 알들은 어미가 미처 품어보기도 전에 따로 모아져 비싸게 팔린다. 어떤 이는 채식주의자지만 계란‘정도는’먹는다고 한다. 또 다른이는 철저하게 채식을 하기 위하여 계란‘조차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라면에 계란을 넣어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최근 계란 값이 올라 부담스러움을 느낀다. 나는 어제 마트에서 계란을 사려다, 유정란이 그렇게 몸에 좋다나 봐. 라는 말이 문득 떠올라 유정란 한 판을 샀던 것이다. 나는 냉장고에서 달걀을 하나 꺼낸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을 하나 꺼내어 팬 모서리에 두드린다. 퍼석.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달걀 껍데기를 떨어뜨린다. 팬 위에는 미처 태어나지도 못한 병아리의 흔적이 떨어졌다. 나는 쓰게 웃으며 팬 위에 있는 내용물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나는 설거지가 귀찮아 팬을 개수대에 놓아두고 대신 또 라면을 끓였다. 여전히 냉장고에는 계란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지만, 나는 이번에는 라면에 계란을 넣지 않았다.

 

2.패배의 역사

어렸을 적 아버지는 모든 게 가능한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자라면서 친구들한테는 있지만 나에게는 없는 것들이 점점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아버지에게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밤늦도록 오지 않았고, 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쳐 잠든 나의 머리맡엔 24색 크레파스라던지, 변신 로보트라던지가 놓여 있곤 했다. 나는 뛸 듯이 좋아했고, 좋아하는 나를 보는 아버지도 연신 웃음을 지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아버지는 나에게 있어 슈퍼맨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어머니가 아팠다. 아버지는 아픈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방방곡곡을 뛰어다녔다. 나는 불안해하며 어머니의 걱정을 했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나에게 “내만 믿어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내가 진학할 고등하교를 선택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우리에겐, 어머니 대신 어머니가 입던 옷 몇 벌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장례식날, 아버지는 이미 팔아버린 반지 자국이 움푹 패여 있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소처럼 울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가 얼마나 작은 존재였는지를. 아버지는 세상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작았다. 나는 아버지가 붙잡고 사정하던 의사의 바지 자락과. 보상금을 주기 싫어 끝내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았던 어머니가 다니던 공장의 높은 사람보다, 그들에게 무력하게 그저 당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더 미웠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로 술에 취하는 일이 잦았다. 그는 나에게 자신처럼 살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고, 나는 그런 아버지가 풍기는 술 냄새를 피해 밤거리로 나갔다. 그는 내가 어떻게든 대학교에 가길 원했다. 나는 이 상황에 무슨 공부냐고,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는 이 지옥 같은 상황을 탈출할 유일한 해법은 오로지 내가 학업에 열중하는 것이라고 소리쳤다. 그는 알지 못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완 달리, 학원과 과외를 다니던 아이들은 이미 고등학교 전 과정을 1학년 만에 완료했다는 것을. 나는 아무 걱정 없이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는 그들이 내뱉는 한숨과, 모의고사 성적이 나올 때 마다 따라붙는 엄마의 잔소리가 부러웠다. 자연스레 나는 그들과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학창시절은 끝을 맺었다. 나는 아버지의 성화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결국 대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어느덧 3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일하던 곳에서 잘린 뒤론 더욱 술에 의존하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실망했고, 또 그런 아버지를 닮아가는 나에게 실망했다. 그러나 가장 큰 실망을 주었던 것은, 머리맡에 크레파스가 놓이기를 기다렸던 때, 언제나 밝기만 한 줄 알았던 세상이었다.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자수성가하는 사람은 오로지 텔레비전 특강과 자기계발서에서만 나왔다. 내 주변에는 도망자들만 보였다. 그들은 매타작하듯 쏟아지는 풍파에 술로 도망치고, 골방으로 도망치고, 번개탄으로 도망쳤다.

나는 집을 떠나던 날, 아버지에게 하나 결심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그것이 이 패배의 굴레를 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작아질 대로 작아진 아버지의 등과, 내가 그동안 번 돈을 넣은 봉투를 뒤로 한 채, 나는 집 문을 열어젖힌 채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3.거짓말쟁이의 딜레마

거짓말은 마약처럼 나를 옥죈다. 점점 잦아지는 빈도, 별거 아닌 일에도 나는 곧잘 거짓말을 했다.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별거 아닌 일에도 살을 붙이는 나. 나를 덧칠하는 작업은 나의 보람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들통날까봐 가슴 졸이는 일을 반복한다.

어제도 거짓말을 하였다. 나는 당연한 듯이 말했고, 사람들은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밤이 되어 침대에 누웠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공허함에 몸을 뒤척였다. 나는 누워 곰곰이 생각했다. 커다란 거짓말보다, 이런 아무 의미도 필요도 없는, 그저 거짓말을 하기 위해 한 거짓말의 죄책감이 더 크다. 나는 반듯이 누웠다. 아니, 나는 반드시 누워야만 했다. 그리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내가 왜 거짓말을 하는지 생각했다. 아마도 허영심 때문이겠지. 나는 나의 보잘 것 없는 본 모습에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덧칠했던게 아니였을까.

 

4.나의 모래성

거의 완성될 뻔 했던 모래성은 파도 한 번에 휩쓸려 무너졌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낙담한 채 멍하니 쓸려가는 모래성의 잔해 속에서 모래삽을 찾으려 허둥거렸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이른 좌절이다. 크면서 나는 수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쓴 현실의 벽. 이제는 진부한 그 말. 하지만 진부의 이유는 그것이 너무나도 많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꿈, 중학교 때의 장래 희망, 가고 싶었던 대학. 졸업 후의 진로. 비슷하지만 모두 다른 이름으로 쌓아 올렸던 모래성들은 파도 한 번에 너무나 쉽게 무너져 내렸다. 그렇지만 나는 쉬지 않고 쌓아 올렸다. 모래삽 하나 밖에 가지지 못한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파도가 나 까지 쓸어가기 전에, 나는 초라한 모래성 하나라도 이룩해야만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무엇이라도 해낼 줄 알고, 나 만큼은 다르다는 부모님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살아가려면 무언가를 계속해서 포기해야만 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하루 종일 켜져있는 광고판 속의 세상엔, 신축 아파트의 입주자들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만 비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내가 지을 수 없는 성임을 안다. 지금 내가 짓고 있는 모래성은 작은 반전세 빌라. 그래도 나는 이것마저 무너지지 않게 안간힘을 다해 노력한다. 한 삽, 또 한 삽. 모래를 쌓을 때 마다 나는 제발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파도가 멈춘 적 없듯이, 나는 이 피땀 흘려 일군 노력의 결과가 어떠할지 너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갈수록 비관적으로 말하는 아나운서의 표정은 언제나 똑같은 무표정이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상황이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는지 잠시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좌절해가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이 끝날 것 같지 않은 하강이 끝나면, 나에게 알맞은 크기의 모래성을 완성할 수 있겠지.

더 이상 실망할 수도 없을 그날. 나는 오롯이 내 소유의 모래성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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