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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466   186 hit   2018-08-18 21:01:41
저 하늘의 별 -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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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내기
    Lv11 배페인

 “그리고?”

 

 에르미의 물음에 아샤는 말없이 모래가 담긴 석판 앞으로 다가갔다. 석판의 모서리를 손끝으로 두 번 두드리자, 파란 기운이 모래를 휘감고 끌어 올려 산맥과 강과 마을과 성을 이루었다.

 

 아샤는 북쪽 끝에 있는 바다와 인접한 산맥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내가 들은 건 여기까지야. 항상 내용은 똑같았어. 이상하게 같은 내용의 꿈을 꾸어도 내가 질문하는 내용도, 그것이 보여주는 환영도, 그것이 했던 말도 항상 같았어.”

 

 에르미는 유심히 아샤가 가리킨 산맥을 보았다. 국경과도 멀리 떨어진 그 지역은 말로 이동한다고 해도 족히 몇 달은 걸릴 거리였다.

 

 다시 한번 아샤를 본 에르미는, 자신을 부른 그녀의 의도가 어떠한 것인지 대충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대점성술사라고 해도 마나가 뒷받침하지 않은 예언에 국가가 지원해줄 수는 없었다. 만약 그게 가능했더라면 온갖 허깨비 같은 악몽에도 온 나라가 휘둘렸을 것이다. 아샤는 유능하면서도 제약 없이 행동할 수 있는 마법사를 자신의 능력 내에서 포섭한 것이다.

 

 생각을 마친 에르미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아샤에게 말했다.

 

 “그래서, 지금 나를 이런 허깨비 같은 꿈만 가지고 무작정 북쪽으로 보내겠다는 거야?”

 

 아샤는 미묘한 웃음을 띠며 에르미를 보았다. 에르미는 이런 표정을 짓는 아샤는 항상 자신이 예상을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에르미는 미간을 좁히며 아샤를 추궁했다.

 

 “무슨 생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둬.”

 “나도 갈 거야.”

 

 에르미의 무언의 압박에도 아샤는 끝내 입을 열고 말았다. 갑자기 치밀어오르는 두통에 에르미는 한껏 얼굴을 찌푸리며 눈 사이의 콧대를 주물렀다.

 

 한동안 그렇게 고개를 젓고 있던 에르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샤에게 말했다.

 

 “내가 왕실 직속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긴 하지만, 몇 달 정도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어지간한 중대사가 일어나는 게 아니면 별 신경 안 쓰겠지. 하지만 너는? 이 성에서 마음대로 다른 도시로 나가지도 못하면서, 북쪽 끝까지 가겠다고?”

 “일주일 정도는 휴가를 낼 수 있어.”

 “턱도 없어. 말을 타고 직선거리로만 달린다고 해도 수개월은 족히 걸릴 거리야. 당장에 네가 이 성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잘 알잖아?”

 “…… 마법사를 파견해서 추적하겠지.”

 

 아샤는 낙담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점성술사들이 받게 되는 후원은 그들이 국가에 가져오는 이익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족쇄이기도 하다. 감지능력이 국가의 후원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점성술사들은 그들의 능력을 온전히 국가에 귀속시키기 위해 개인 의뢰를 일절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국가에 몇 없는 대점성술사는 다른 가문과 결탁하거나 연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결혼마저도 하지 못했다. 물론 그들의 직무를 다하고 은퇴를 하게 된다면 다시 자유를 얻게 되지만, 노쇠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능력을 잃거나 더 뛰어난 자가 발견되어 자리를 물려주지 않는 한은 그럴 수가 없었다.

 

 마법사도 비슷하게 국가에 귀속되어있기는 하지만, 그 희소성은 점성술사들에 비하면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심한 제약은 받고 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국가의 사업에 몇 번 동원되거나 자문을 하는 정도였다.

 

 가장 후원을 많이 받는 다른 대마법사들은 대부분 국책 설립 연구기관에서 개인적인 연구를 하거나 후진을 양성하고 있지만, 에르미는 그것조차도 답답해한 나머지 여전히 임무를 받는 현장직에 머물러 있었다.

 

 낙담해있는 아샤를 보는 에르미는 마음이 살짝 약해질 뻔했지만, 크게 숨을 내쉬고 타이르듯 말했다.

 

 “오직 너의 감만으로 이렇게까지 움직여주는 대마법사는 나밖에 없긴 하겠지. 나 혼자만 움직인다고 해도 이건 큰 모험이야. 그런데 너까지 같이 떠나겠다고? 과연 이 일에 그럴 가치까지 있을까, 아샤? 네가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쟁취해낸 것을 이 한 달 새에 송두리째 빼앗겨버릴 수 있다고.”

 

 영리한 그녀라면 에르미가 지금까지 말한 것들을 모를 리가 없었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의 나열일 뿐이니까. 분명 아샤는 에르미를 부르는 그 순간부터 이런 위험을 다 고려하고 감수하기로 했을 것이다. 여전히 침울해하면서도 무릎께의 옷자락을 굳게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을 보면서 에르미는 자신의 설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 기어이 갈 생각이군.”

 “…….”

 

 작게 대답한 아샤는 눈을 들어 에르미의 눈을 곧게 쳐다보았다. 반짝이는 에메랄드빛은 걱정과 불안감과 두려움에 살짝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믿음과 결의로 올곧게 타오르고 있었다.

 

 “에르미는 내가 이번 일로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지만, 처음부터 내가 바라왔던 건 보다 많은 사람을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일이었어. 내 능력이 닿는 한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점성술사가 되기로 한 거야.”

 

 아샤는 떨려오는 목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내 꿈이 보여준 재앙 앞에서는…… 무의미했어. 이 이름이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면 난…….”

 “그렇게까지 했는데 네가 쫓던 게 허깨비였다면?”

 

 냉랭하게 몰아붙이는 에르미의 말에 아샤의 고개가 푹 꺾였다. 에르미는 마음 한구석에서 비집고 올라오는 가책을 억지로 누르며 말을 이었다.

 

 “결국, 너는 네 경솔한 행동의 대가로 직책과 자유로운 삶과 운이 없으면 목숨까지도 잃게 될 거야. 네 공백이 나라에 어떤 혼란을 가져오게 될지 생각은 해봤어?”

에르미는 힘없이 늘어진 아샤의 머리 타래로부터 눈을 돌렸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샤가 말했다.

 

 “내가 불가피한 일로 직책을 영원히 잃게 되더라도 당분간 마나의 큰 이동은 아마…… 없을 거야. 그리고 내 밑에도 재능 있는 아이가 한 명 있어. 좋은 사수한테 일 년만 배우면 내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너는 어떻게 되는데? 탈주자로 낙인찍혀서 평생 마법사에게 쫓기겠다고? 그러다가 잡히면 죽이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부자유한 삶을 살겠지.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마법사가 아니라 암살자가 네 뒤를 쫓게 될 거야.”

 “그건…….”

 

 아샤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에르미는 그녀가 무모한 일을 앞두고 자신의 안위조차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는 것에 더 화가 났다. 항상 그랬다. 그녀의 전망에는 그녀의 안녕과 행복이 빠져있었다. 에르미는 한때 그런 삶의 방식을 고귀하다고 생각한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에르미는 그녀의 방식을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었다. 그도 결국 그녀에게 감화되어 삶의 궤적을 크게 비틀게 된 사람이었으니까. 그녀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에르미는 다시 고개를 든 아샤의 눈을 보았다. 변함없는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반짝이고 있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에르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번 건을 그렇게 결론지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 있는 터무니없는 이상주의자는 별빛에 이끌리는 나방처럼 허깨비를 쫓다가 자신의 몸을 불사를 것이었다. 에르미는 어렵지 않게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상상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안의 빛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한때 자신이 동경하던 그 빛이었다.

 

 에르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신은 그녀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별빛을 쫓으며 랜턴의 불빛으로 날아가는 나방을 손안에 감춰 저 하늘의 별까지 보내야 했다.

 

 “됐어.”

 “무슨…… 뜻이야?”

 “더는 추궁하지 않겠다고.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으니까 당분간은 날 부르지 마. 일주일 후 밤에 찾아갈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에르미……!”

 

 아샤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샤는 에르미의 품에 뛰어들며 감격한 목소리로 흐느꼈다. 당황한 와중에도 에르미는 내심으로 기뻐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고마워……! 내가 헛소리를 하는 건지도 모르는데 믿어줘서……!”

 “헛소리인 건 알고 있나 보네?”

 

 에르미의 비꼬는 말에 아샤는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에르미를 쏘아보았다. 눈물로 젖어 엉망진창인 얼굴에 비쭉 튀어나온 입을 보고 에르미는 웃음이 나올 뻔했으나, 다시 아샤의 뒷머리를 잡아당겨 자신의 가슴에 처박아 보지 못하게 했다.

 

 ‘이제 나도 미친놈이군.’

 

 에르미는 아샤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마음속으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1. 꾸꾸맘 님이 이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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