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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472   456 hit   2018-09-16 09:31:38
주제 교환 이벤트 - 황혼의 티 타임 +2 (3)
  • User No : 897
  • 새내기
    Lv14 배페인

 숙였던 허리를 펴니 시큰거리는 통증과 함께 꾸드드득 하는 뼈의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노동의 댓가와도 같은 기분 좋은 통증을 느끼며 다시 한번 허리를 쭉 펴고, 오목한 등허리 안쪽에 손을 대고 누르며 말끔해진 가게를 둘러보았다.

 

 고풍스러운 원목 바닥은 윤기를 내며 빛나고 있었고, 은은한 홍차 향이 감돌고 있었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탄 반질반질한 나무 탁자는 부드럽게 뻗은 발끝으로 우아하게 플로어 위에 서 있었고, 키가 작은 나무 의자들은 귀부인을 시중드는 하녀들처럼 탁자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저마다의 아담한 곡선을 뽐내고 있었다.

 

 점장은 문 앞에 걸려있는 ‘Closed’ 팻말을 돌려 가게의 시작을 알렸다. 그와 동시에 주방 안쪽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단속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점장은 귀가 아프지도 않는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주방에 들어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뿜고 있는 타이머를 눌러 껐다.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텅 빈 거리를 바라보며 가게를 열게 된 지는 조금 되었지만, 그래도 가끔이나마 찾아주는 손님들을 맞는 재미에 점장은 가게를 그만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점장은 이윤을 위해 가게를 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부와 명예를 쫓던 젊은 날의 반동이 그를 무뎌지게 했던 것일까. 아니면…….

 

 오랜 세월 연마한 작법으로 능숙하게 찻잎에 물을 부어 차를 우려내던 점장은, 다시 한번 인적 없는 거리를 보았다. 손님 한명 없이 파리만 날리는 날이 잦았어도 오늘만큼은 누군가 오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카운터에 놓인 찻잔을 바로잡던 점장의 귀에 시끄러운 타이머 소리가 들어왔다. 벌써 두 시간이 지났음을 뜻하는 그 타이머를 점장은 단속적으로 눌러 껐다. 달갑지 않은 소리임은 분명했지만, 그조차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이 저 소리를 듣는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위안이 되면서도 섭섭하기도 했다.

 

 하염없이 카운터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점장의 눈에 한 인영이 들어왔다. 저 멀리서부터 천천하고 느긋하게 다가오는 그림자를 통해 꽤 나이를 먹은 사람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노인은 여유롭게 지팡이를 짚으며 한발짝씩 걸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가게 주변을 지나치던 노인은 가게 문에 걸린 팻말을 보고 놀란 듯 잠시 멈춰섰다. 점장은 미소지으며 가게 문 앞에 서있는 노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고, 노인 역시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지팡이를 끌며 들어온 노인은 가게 분위기에 취한 듯 잠시 멈춰서서 가게에 충만한 홍차 향기를 한껏 들이쉬고, 편한 자리를 찾아 골라 앉았다. 자리에 앉은 노인은 의자 옆에 지팡이를 기대 두고 만족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점장은 노인에게 다가가 주문을 받았다.

 

 “잘 오셨습니다. 음료와 다과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홍차 향이 참 좋군요. 음료는 그걸로 하고, 다과는 제가 소화기가 좀 안좋아서 부담스럽지 않은 거라면 좋겠는데…….”

 

 고민에 빠진 노인에게 점장은 가볍게 권유했다.

 

 “그렇다면 양갱으로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준비에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드시기 편하실겁니다. 혹시 바쁘시다면…….”

 “바쁘긴 무슨! 시간은 충분하니까 여유롭게 준비해주세요.”

 

 노인은 손사래를 치며 껄껄 웃었다. 점장도 빙그레 웃으며 화답하고는, 주방으로 들어와 홍차와 양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점장은 불린 한천가루와 물을 불 위에 올리고 티포트 쪽으로 손을 뻗었다.

 

 예열해 둔 티포트를 꺼내 찻잎을 티스푼으로 떠서 담고, 찻잎 위로 조금 높은 곳에서 뜨거운 물을 부어 내렸다. 포트를 티코지로 감싼 후, 포트 옆에 모래시계를 꺼내서 뒤집어두고,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어느새 알맞게 끓은 한천가루가 풀린 물을 불에서 내리고, 꿀과 팥앙금을 넣고 조심스럽게 섞기 시작했다. 눈대중으로 모래시계를 보자 차가 곧 우러날 듯 싶었다. 섞은 것이 걸죽해지기 시작하자, 신속하지만 섬세하게 틀에 붓고 서빙용 포트에 알맞게 우려낸 차를 걸러 담아 찻잔과 함께 나갔다.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노인은 홍차 향이 가까이 오자 눈을 떴다. 달궈진 찻잔에 따라지는 차를 보며 노인은 눈을 반짝였다. 황홀한 눈으로 포트에서부터 떨어지는 찻물의 줄기를 쫓던 노인은,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차를 다 따라낸 점장은 고개를 기울여 조용히 노인에게 말했다.

 

 “양갱이 굳어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두 시간 정도 기다리실 수 있으신가요?”

 “,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겠군. , 어차피 양갱이 다 되기까지 하실 것도 없지 않습니까? 거기 앉아서 노인네 말동무나 해주시는게 어떻습니까?”

 

 노인의 부드러운 권유에 점장은 거절하지 못하고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노인은 이미 차를 한 모금 음미하고 있었다.

 

 “~ 훌륭하군. 한번 맛보시죠. 차가 아주 훌륭합니다.”

 

 점장은 예비용 찻잔을 꺼내 차를 따르고, 천천히 향을 음미하고는 한 모금 혀 위로 올렸다. 단숨에 차 향이 입속을 채우며 충만함과 안심감이 몰려왔다.

 

 두 사람은 잠시 차가 가져다주는 행복감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별안간 울린 알람이 잠겨있던 두 사람을 끌어올렸다.

 

 노인은 탐탁찮은 얼굴로 손목시계에서 울리는 알람을 눌러 껐다. 점장도 주방으로 들어가 타이머를 껐다.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은 점장에게 노인이 말했다.

 

 “그래도 이런 날에 이 노인네를 대접해주는 이런 친절한 가게를 만난 게 천운이군요. 처음 영업중 팻말을 보았을 땐 내가 늙어서 헛것을 보고 있는건가 착각까지 했습니다.”

 “상당히 오래 걷고 계셨던 것 같은데, 혹시 목적하는 곳이라도 있으셨던 겁니까?”

 “아니오……. 그냥 안에서 눌러앉아 있기에는 아까운 날이니까 마실 겸 조금 멀리 나와본 거지요. 여기를 찾지 못했으면 마지막까지 헤매기만 하다가 끝날 뻔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야말로 누추한 가게에 발을 옮겨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노인은 흡족하게 웃으며 찻잔을 입가로 옮겼다. 잠시 가게 안에서는 정적이 흐르고, 노인이 차를 마시는 소리와 찻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찻잔을 내려놓은 노인이 가게를 한번 둘러보고는 점장에게 말했다.

 

 “가게를 혼자 하시는 것 같은데, 혹시 아내분이나 자녀분들은…….”

 “부끄럽지만 이 나이가 되도록 없습니다.”

 “부끄러울 게 뭐가 있습니까? 저는 아내랑 자식들이랑 손주들에게 둘러싸여서도 가끔씩 당신과 같이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합니다. , 덕분에 지금 느끼는 자유로움은 정말로 각별하군요.”

 

 노인이 너스레를 떨자 점장은 즐겁게 찻잔을 기울였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점장은 잠시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노인에게 말했다.

 

 “손님께선 자녀분들이랑 손주분들이 있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분들은 지금…….”

 

 노인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채 점장의 늘어지는 말꼬리를 좇았다. 점장이 염려해주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은 노인은 싱긋 웃더니 가볍게 대답했다.

 

 “지금 쯤 저 하늘 너머 어딘가에 있겠지요. 모두 떠나 보낸지 한달쯤 됐을 겁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점장은 말을 고르며 포트에 담긴 차를 노인에게 따라주었다. 노인은 고맙게 받으며 다시 한번 차를 음미했다.

 

 한참을 허공을 바라보던 노인은 별안간 점장에게 물었다.

 

 “당신은 떠나지 않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나 같은 사람이야 더 이상 미련이 없으니 자리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양보했다고는 하지만, 당신은 미련이 없기에는 좀 젊은 나이로 보입니다.”

 “그냥……. 미련이 너무 많이 남았나 봅니다.”

 

 점장은 가게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가게 구석진 나무 판자 하나하나에도 그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 없었고, 그만큼 서려 있는 기억들도 많았다. 이미 가게는 점장의 일부와도 같았다.

 

 “이 가게를 떠나도 더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흐흐, 저랑 비슷하군요. 오래 머무르면서 수많은 기억과 추억이 쌓인 곳은 더 이상 그냥 장소가 아니죠. 마치 내 몸의 일부와도 같은 것이 됩니다. 내 심장이라고 할 수 있죠. 심장이 없으면 사람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노인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점장은 따뜻한 동질감이 담긴 눈빛으로 노인을 쳐다보다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슬슬 양갱이 다 굳었을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주방으로 들어가 틀에 부어진 양갱을 확인하려던 점장의 눈에 타이머가 들어왔다.

 

 2년 전부터 모든 사람들과 건물에 필수적으로 휴대하거나 설치하도록 했던 그 타이머는 수백 광년 떨어진 천체가 언제 감마선 폭발을 일으킬지 계산해주는 역할과, 그 시간이 임박할수록 경고음을 내는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이미 행성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난 지 오래였다. 한달 전에 떠났다는 노인의 가족은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피난선을 탔을 것이다. 피난선을 돌릴 수 있는 인력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불가피하게 소수의 사람은 남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중에는 노인이나 점장처럼 자발적으로 남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점장은 타이머에 표시된 시간이 3분도 채 남지 않은 것을 보았다. 처음 설치했을 때에는 훨씬 많은 숫자가 채워져 있어서 먼 미래로만 생각했었다. 사실 임박한 지금에도 실감은 잘 나지 않았다. 그 때가 오더라도 실감을 느낄 수는 없겠지.

 

 점장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타이머로부터 등을 돌리고 틀에 알맞게 굳은 양갱을 빼내어 가지런히 접시에 담았다.

 

 노인은 양갱을 들고 오는 점장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점장은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노인에게 말했다.

 

 “늦기 전에 어서 드시죠.”

 “당신도 같이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점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포크를 들어 양갱을 찍어 올렸다. 노인도 점장의 맞은편에서 양갱이 꽂힌 포크를 들어 올렸다. 둘은 건배를 하듯 가볍게 포크를 움직이곤, 입 안에 양갱을 넣었다.

 

 눈을 감고 양갱의 질감과 맛을 즐기던 노인은 양갱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정말로 맛있군요.”

 “감사합니다.”

 

 점장은 노인의 찬사를 고개 숙여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이머가 울리기 시작했다.

 
---
 
제가 이번에 받았던 주제는 '연양갱'입니다.
1. 표적지가필요없음 님이 이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ㅎㅎ
  • 1
  • Lv39 표적지가필요없음 삑삑, 학생입니다. 2018-09-16 10:33:33

    종말의 날에 우린 주거써 ! 우린 다 주글꺼야! 이런 게 아니라 

     

     

    여유있게 마지막을 맞이하는 모습과 그 한켠에 비치는 엄청난 사건에 대한 믿을수 없음과 비현실감이 좋아요.

    1. 배페인 님이 이 댓글을 좋아합니다.
     
  • 2
  • Lv11 시류 할 일 없는 2018-09-18 19:06:05

    저도 비슷한 내용을 써본 적이 있어서 친근한 기분이 드네요. 양갱이 가지는 '완성을 위한 시간'이 곧 '끝을 위한 시간'과 겹쳐진다는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 글입니다.

     

    글이 좋다보니 조금 더 읽고 싶은 욕심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1. 배페인 님이 이 댓글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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