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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473   161 hit   2018-09-17 00:37:21
[주제교환이벤트] 제 32차 정기 겨울 토벌 보고서 +2 (2)
  • User No : 1604
  • 할 일 없는
    Lv11 시류

몇 일 째 머리가 둔하게 돌아간다. 그래서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제대로 잠을 자본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수준에서 몸 상태를 관리하는 것도 일의 일환이라지만 어떨 때는 힘든... 아니 그래, 전략적인 휴식이 필요해진다.

 

좋은 아침이라는 말보다 끈적한 침음성만 흘러 나올 정도로 팔다리가 무겁다. 어제. 그러니까 음, 어제도 수련을 하고 갑옷 째로 잠을 잔 건가? 신병들에게 관절 나간다고 절대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는 교관인 나도 사람이다. 토벌은 끝을 모르고 세끼 밥보다 물약을 더 많이 마시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크."

 

입 안이 쩍쩍 달라 붙고 갑옷 버클에 짓눌린 부분이 미친듯이 가렵지만, 갑옷은 갑옷이라 시원하게 긁을 수도 없다. 천갑옷, 가죽갑옷, 사슬갑옷, 판금갑옷 순으로 한 번 입고 벗는 것조차 한세월이다. 위기 상황? 가죽갑옷의 벨트를 조이다가 머리통이 쪼개지겠지. 후, 신병들에게는 신발부터 시작해서 위로 착용을 해야 하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현실은 다르지.

 

겨우겨우 상체를 일으키고 천천히 눈을 뜨자 빛이 머릿 속에 베여든다. 아, 지금 두개골을 까서 끓는 기름을 부어도 지금보다는 덜 아플 거다. 미치겠네 진짜. 하지만 하루는 시작되었고, 개같은 오늘의 시작이 귓 속에 때려박힌다.

 

"쇼데랑, 우리 몇일 째냐?"

"몇 마리 남았는지나 알아봐 빨리."

 

얼마나 지났는지가 뭐가 중요하냐. 언제 끝나는지가 중요하지.

 

"보급을 조져버리면 이거 끝나나."

 

지랄헌다. 보급에 배속된 마술사만 셋이구만. 말 두마리보다 마술사 반마리가 훨씬 낫지. 물론 등짐은 사람이 지고 나르지만.

 

"몇 마리 남았는지나 알아봐야겠어. 쇼데랑, 인할은 어디?"

"아침이니 변소겠지."

 

후, 토벌 최대 문제. 토벌이 언제 끝날지는 작전부 밖에 모른다. 두번째 문제, 이정도 인원의 분변 처리를 못하면 절대로, 한시도 쉴 수 없다. 상대는 짐승이고, 우리도 짐승이니까.

 

"인할! 인할. 으음, 인할?"

 

아, 작전부에 대한 무분별한 분노에 무턱대로 소리를 질렀지만 소름돋게 찌르는 두통에 소리를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이번에 살아돌아가면 작전본부에 불을 질러 버리고 말테다.

 

"또 누구야? 제발 아침에 똥 싸는 것 정도는 마음편히 싸면 안돼? 토벌 끝나려면 멀었어! 멀었다고! 이 미친놈들아!"

 

조울증새끼 진짜.

 

"인할, 언제 끝나? 오늘만큼은 진짜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후, 헤이바르냐? 있어봐. 오늘은 꼭 싸고 만다."

 

아까 언급한 두번 째 문제. 그래, 극한의 환경에서 모두 변비다. 아침에 시원하게 싸는 놈들은 등짐 나르는 보급계 짐꾼이나 마술사들 정도? 나도 벌써 4일째다. 미쳐버리겠네 진짜. 장은 뒤꼬이고 위는 쥐어짜이지만 결국 아무도 쌀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늘도 배에 힘 빡주고 칼질을 하는게 토벌의 현실이다.

 

"이 정도면 오늘도 포기하지, 인할?"

"후, 시발 이 개 같은 변비. 똥 치울일 없는 잡부들 제외하면 여긴 모조리 지옥이야 지옥. 씨발! 지옥이라고!"

"됐고. 용건만 간단히 합시다."

 

작전부는 토벌 대상의 규모를 200으로 보고 있었다. 미친놈들. 지금까지 우리가 올린 진짜 토벌 기록과 가짜 보고-잡았는데 절벽에 떨어졌다거나, 불타버려서 남은게 없다거나.-들을 섞어서 80 정도 올렸고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3주. 토벌 속도는 갈수록 느려지고, 토벌작업의 특징 상 작전부는 이 빌어먹을 짐승들이 일정주기로 증식한다고 계산한다. 우리는 최소한 9주는 이 개같은 토벌을 지속해야 하지만, 점차 지쳐나갈 인원들을 생각하면 거기에 3~4주는 더해야 할 것이다. 씨-빠알, 인-할?

 

“내가 들은 게 맞는 말?”

“맞는 말이다. 헤이바르. 아무리 계산해도 이대로면 11주는 더 필요해.”

“지금 저쪽 가서 한번 말해? 11주라고?”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얼굴이 화끈거리네 진짜. 작전부 새끼들 진짜.

 

“이대로 가면 우리 6주면 전멸 한다.”

“지휘부 최고의 천재님은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개소리 싸무시고, 오늘 총회의에서 8주로 말 맞춰.”

 

8주는 무슨 소리냐고 인할이 펄펄 뛰지만 방법이 없다. 11주라고 하는 순간 목긋고 자살할 새끼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지휘관의 본능이 경고한다. 교관급인 내가 이 정도면 신병들은 이미 끝났다고 봐야지. 적어도 8주라고 거짓말을 하고 나면 수습할 틈이라도 있을 거다.

 

“오베르 어디?”

“보급 빼돌리지 마라. 오늘 3부대가 사역하는 날이니 서쪽이겠지.”

“작전부 대가리 졸 튼튼한가봐?”

“어 시발. 졸 튼튼하다 시발. 토벌을 8주 더 해도 안 깨질 정도로 튼튼해요, 아주! 8주. 알겠다 알겠어, 8주!”

 

결국 마지막에 꽥하고 소리를 지르는 인할에게 죠시나 까라며 손가락질을 해주고 오베르를 찾으러 가기로 했다. 부대 규모는 60. 각 부대는 20명 단위로 구성되어 있고 보급, 작전, 통신은 파견이다. 그러니 지금을 놓치면 보급 실세는 내일에나 만날 수 있겠지.

 

“거기, 3부대?”

“네!”

“싸물고. 조용히 말해. 오베르 봤냐?”

“서쪽 물자하역장에… …”

 

뒷말 따윈 들을 가치도 없다. 서쪽이 맞긴 하군. 그리고 맞이한 꿈 같은 상황.

 

“헤이바르! 우리의 천재! 내가 가져온 물건을 보고 기뻐해라!”

“뭐, 염장고기 말고 생고기라도 왔냐? 폭죽에 술까지 포함?”

“그것보다 더 좋은거지. 이 색깔을 보라고.”

 

엹은 분홍색, 파란색 등 형형색색이 감도는 이 것은 설마?

 

“물약!”

 

드디어! 추가 보급이 나온 건가!

 

“거기다가 이번에는 전군 보급이다!”

 

신이시여! 오베르에게 축복을! 물약. 다른 말고는 행복. 이거만 있으면 군량도 달고, 잠을 안자도 상쾌하며 똥을 안싸도 행복해지지!

 

“어쩌다가 이게 전군보급물량이 나와?”

“인할이 노력했다. 아무리 계산해도 이 인원으로는 영원히 안끝날테니 부대를 더 빼주던가, 보급을 해주던가 양자택일하라고 배까고 누웠어.”

 

오, 인할-! 내일 아침에 꼭 똥을 쌀 수 있기를! 그대의 항문이 반짝이도록 신께 세 번 기원한다.

 

“이거면 진짜 8주로 되네.”

 

물약이란 보통 온갖 이명으로 불리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전투촉진제다. 순간적으로 체력이 회복되고, 집중력이 상승하고, 높은 공격성과 스트레스 저항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단가가 높은데다가 한번 보급을 시작하면 물처럼 소비되는 걸 막을 수가 없다는 단점 때문에 전군 보급은 꺼리는 보급품이다. 그러나 인할은 해냈다. 당일 전투부대에서도 전위들에게만 공급되다보니 정작 후방 배치부대의 효율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만세-!

 

“1인당?”

“통 크게 2병.”

“하루 120?”

“1차로 우선 4주치. 망실분까지 고려해서 무려 3단계 정규보급 물량이다.”

“3400!”

 

1차라는 말은 기본 2차를 보장하는 마법의 단어. 그렇다면 8주는 무조건 버틴다. 무조건 버텨.

 

“단 오늘 총회는 나도 참석한다.”

“오베르 너도?”

“작전이 조금 바뀌나봐.”

“3단계 정규보급을 2회나 해줄 정도면 할말 없지. 심하게 바뀌진 않겠지?”

 

그리고 펼쳐진 것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빨간 꽃밭이다. 역동적이군. 작전부 새끼들 머리통에는 똥만 찬게 분명하다. 주댕이로 똥을 싸지 못해서 이런 똥 같은 작전을 하달하는 게 분명하다. 개새끼들.

 

“3명은 좌측. 5명은 우측. 7명은 엄호. 4명은 나와 함께 무너지는 쪽을 지원한다. 실시.”

“헤이바르, 어때?”

“뒤져 시발. 어떤 새끼가 토벌 심도 높이자는 안을 낸 거야? 무려 2도수를?”

“작전부를 믿었어?”

“믿은 내가 등신이지 등신.”

 

토벌은 아마 8주로 끝날 것 같다. 어쩌면 이번 주에 끝날 수도 있겠지. 다 뒤져버리면 우리 토벌은 여기서 끝인거 아냐.

 

“물약 줄 때 쎄하더라니.”

“오베르, 너는 굳이 이거 안해도 되잖아?”

“작전부 때려쳐라. 부대가 2배나 증원됐는데 잘도 보급만 파견으로 유지하겟습니다 그려?”

 

토벌은 중반을 접어들며 더욱 치열해졌다. 우리는 그저 짐승이라 부르고 있지만, 이것은 단지 두려움을 잊기 위한 말일지도 모른다. 저놈들은 언제나 우리보다 많고, 언제나 우리를 잡아먹고, 언제나 우리를 지옥으로 몰아넣는다. 언제나. 언제나.

 

“오베르!”“없다. 더는 없다고.”

“내놔. 그거라도 없으면 숙련병을 내놔.”

“보급에 사람은 제외인 거 모르냐? 인할… 아니 그놈 그저께 죽었지, 작전부 가서 지랄해.”

“지금 하루 2병으로도 부족하다는 거 꼭 내 입으로 말해야 알겠냐? 전투 중은 커녕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살아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고립은 아니지만, 보급선이 너무 길어졌다. 마술사들이 있더라도 결국 보급을 나르는 건 사람. 사람마저 필요없는 보급이 가능하다면 그 능력으로 보급을 할 게 아니라 여기와서 우리 중 절반을 제물로 바쳐서 토벌을 끝내버렸을 것이다. 인간이 갈려나간다. 어디선가 누군가 기적같은 승리를 맛보고 있겠지. 우리가 지옥같은 패배를 반복하고 있으니까.

 

“희석하면 어떨 거 같냐?”

“속이게?”

 

오베르의 되묻는 말에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결정이 난 사항에 가까우니까. 우리편을 속여야 하다니.

 

“들어가는 애들만.”

“속겠냐?”

 

속아줘야지 어떻하겠냐. 눈치 챘을 때는 특진일텐데.

 

“적에게는 정직하고, 아군은 속이는 건가.”

“저놈들이 속아줄 머리라도 있었으면 저놈들부터 했다.”

 

토벌에서 오는 긴장감은 상당했다. 매일 누군가 죽고, 무언가를 죽인다. 이렇게 병사들이 커 간다. 누군가의 내장을 밟고, 무언가의 죽은 눈을 보면서 덜덜 떨고, 체력도, 기력도, 정신력도 갉아먹는 세계에서 믿을 건 오로지 물약 뿐.

 

“하. 30개 빈다.”

 

깊은 한숨을 내쉴 뿐, 화는 나지 않았다. 훔쳐서라도 먹어야 했겠지. 내일 팔이 올라가지 않으면 머리가 으깨질 거고, 죽은 동료의 피보라를 향해 돌진할 신경줄이 없으면 팔다리가 사라지겠지. 그러니 훔칠 수 밖에. 물약이 큰 폭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악순환이 시작된다.

 

“팔! 내 팔!”

“지져.”

 

먹음직한 냄새가 물씬 나지만, 먹을 건 아무 것도 없다. 상처에 부을 물약조차 가끔 모자란다. 작작 좀 처먹으라고 미친놈들아. 점심이면 물약은 동이나고, 아침이면 물약 상자가 벽처럼 쌓인다.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는 부대는 언제나 우울하고, 분노하고, 멍청한 상태다. 나도 가끔 정신을 차려보면 무언가의 목을 날려버리고 있다. 본능적으로 싸우고, 무의식 중에 죽인다. 이젠 지긋지긋하다. 넉넉한 보급과 풍부한 물약은 오히려 우리가 모조리 자살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마술사 새끼들 어떻게 죽여버릴 수 없냐.”

“왜.”

“보급이 끊겨야 이 개같은 토벌도 끊겨.”

“걔들 결속력 대단하다. 너 분명히 뒤진다.”

“시발. 진짜. 물약 아 시발.”

 

이 개같은 곳에서 유일한 행복이 물약 뚜껑을 따고, 마시는 그 순간 밖에 없다는 농담은 농담이 아니다. 모든 것이 거지같다. 씻을 수도 없고, 제대로 된 음식을 할 여유도 없이 아무렇게나 퍼넣고 씹으면서 달려나간다. 화장실 같은 소리 하네 젠장, 바지 내리고 힘 한 번 주고 안나오면 바지 올리고 다시 뛰어나가야 한다. 모두 빵빵하게 부푼 배를 안고 얼굴은 누렇게 뜬 채로 그래도 아침에 힘줄 곳은 있던 옛날을 그린다.

 

“씌발, 진짜. 어디 막힌 것 같다.”

“그렇습니까? 작전을 바꾸실 생각이신지요?”

 

오베르 새끼도 갓 뒤져서 이젠 나랑 야자 틀 놈도 없는 이 개같은 전황에 머리가 흐릿하다. 이젠 내가 아침에 일어난건지 저녁에 일어난건지도 모르겠고 하루가 조용하건 시끄럽건 수면은 언감생심이다. 빌어먹을.

 

“토벌심도 2단계 도달. 상부의 지시를 기다린다. 잔존 부대원 42. 지휘계급 전무. 신속한 지휘병력 충원 바람. 보내.”

“네! 알겠습니다!”

 

지랄이 짜다 진짜. 지랄이 짜.

 

“다음 보고. 토벌 개체 수 420 도달. 목표 수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토벌 지속 불가능으로 판단. 전 부대원에게서 심각한 무기력증 및 불면, 변비 증세 심각. 후방 교대 혹은 제 2 토벌 부대 편성을 요청. 보내.”

 

이렇게나 물약을 마시는데도 모두 항상 갈증에 시달린다. 항상 숨이 가쁘다. 토벌은 언제나 습하고 기분나쁘다. 하지만 이번은 뭔가 심각하다. 발작적으로 갑옷 이음새를 긁어대는 녀석들을 볼 때마다 발로 뻥 차버리지만, 피가 흐를 정도로 상처를 후벼파는 녀석들의 눈동자는 멍하니 풀려잇다. 심각한 수면부족으로 나도 가끔씩 정신을 놓칠 때가 있지만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아직은.

 

“이번 보급입니다.”

“이봐 마술사.”

“네. 무슨 일이신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보급량은 이해가 안돼.”

“네? 무슨?”

 

이 심도까지 보급이 가능하면 진즉에 병력을 보내줘야지? 안 그래? 위는 뒤틀려서 이제 아프지도 않다. 가끔 하는 기침에 객혈이 섞이지만 어차피 모두 다 비슷한 상태이고 이젠 밥을 제대로 하지도, 먹지도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일어나서 물약을 부어넣고, 물약을 부어넣고, 물약을 부어넣는다.

 

“너 정체가 뭐야?”

“보급계 마술사입니다.”

“씨발.”

 

순간적으로 굉장히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미친 건 아니라 욕설만 내뱉고 쌓인 상자들을 바라봤다. 개같지만 그래, 내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물약 한 병이면 된다 이거지. 어차피 우리 같은 토벌 부대나 나 같은 하급장교가 팔 다리가 돋아나거나 미친 사람이 정상이 되는 상급 이상의 물약을 마실 일은 전혀 없겠지만, 미칠 수 조차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미치게 하고 있다.

 

“상부 지시.”

“상급 물약을 지원해 주겠답니다. 인원 보충은 지휘병력은 힘들고 대신 신병으로 30.”

“그 새끼들은 대체 토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뒤지라 그래. 신병으로 50.”

“해보겠지만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 힘들겠지. 그리고 상급 물약? 미친 새끼들이네.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 아니면 상급물약으로 육체와 정신은 나을지 모르겠지만, 정신이 망가지는 것도 확정이다. 방금 날아간 팔이 물약 한 번에 돋아나는 걸 반복해서 보다보면 팔이 날아가는 장면과 돋아나는 장면이 중첩되며 인지부조화가 생긴다. 없는 다리로 달리려고 하고, 있는 다리가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게 된다. 결국 사지 멀쩡하고 정신도 멀쩡하지만 아무것도 못 믿는 의심암귀에 매몰되어 모든 걸 닫아버리고 만다. 이건 물약으로도 안된다. 어떤 자극도 자극이 되지 않으니까. 자신이 만든 현실 속에서 살기를 선택했으니 이 세상은 환각에 불과한 것이다.그런데 베테랑 중에 베테랑들도 폐인 만들 수 있는 상급 물약을 신병들에게 뿌린다고?

 

“조만간 하늘을 날려는 놈들이 속출하겟군. 상급물약은 필요 없다. 보고.”

“네!”

“그리고 시발 변비약 좀 보내라고 해. 애들 먹는 건 먹는데 싸지를 못하잖아! 이 개같은 토벌처럼!”

“네… 네!”

 

그리고, 결국 상급물약은 도착했다. 개자식들.

 

“이상 서북방면 정기 겨울 토벌 보고를 시작합니다.”

 

11주차 1일.

상급 물약이 결국 도착했다. 도착 사실을 엄중히 숨겼으나 이 거대한 물량을 감출 수는 없었다. 비상용이라 둘러대로 절반은 희석하여 일반 보급품으로 보급하였다.

 

11주차 4일.

상급 물약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신병의 질이 너무 낮다. 갑옷이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다는 사실조차 확실히 모르는 녀석들을 데리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2주차 3일.

심도 2레벨 클리어. 보충된 신병 30명 중 10명도 채 남지 않았고, 남은 기존 병력의 절반도 사라졌다. 50명도 채 되지 않는 병력을 추스리고 최소한의 경계만을 세웠다. 상급 물약이 남용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눈치 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먹은 물약만으로도 만만치 않다. 토벌이 더디기만 하다.

 

13주차 1일.

심도 3레벨에 대한 명령이 내려왔다. 우리는 더욱 깊이 전진할 것이다. 병사들 간의 칼부림이 심해진다. 극도로 예민하고, 경계를 세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심각한 문제는, 엉덩이로 물약을 마시려는 놈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 지속된 변비로 인해 용번을 보고 나면 항문에 큰 상처가 났고, 이는 전투력 손실로 이어졌다. 나도 처음이지만 물약의 사용을 시도했고 기존의 회복 물약이 가져다주는 진정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났다.

 

15주차.

몸을 일으킬 때마다 심한 멀미를 느낀다. 가끔 눈을 감았다 뜨면 날이 바뀌어 있기도 하다. 수면을 착각한 것인가 하지만 절대로 수면은 아니다.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스스로 잠을 자고 잇는지, 깨어있는지 구별할 수 없다. 갑옷과 깃발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토벌 증거를 채집해야 하는지 헷갈릴 것 같다.

 

17주차.

상급 물약을 사용하려 하였으나 비슷한 색의 다른 액체였다. 대대적인 물약 재고를 검토하였고 절반 이상이 망실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신병이 50 정도 보충되었고 여전히 물약과 보급은 확실하다. 원하는 게 뭘까. 우리가 모조리 죽는 것?

 

18주차 3일.

상부에서 지휘관이 도착했다. 마지막 토벌 작전을 지휘하기 위함이라 한다. 오랜 토벌로 인해 이 지역에 익숙한 우리가 척후를 보기로 했다. 마지막이다. 마지막. 이젠 숫제 물약을 물대신 마시는 놈들도 있고, 자기 팔이 6개라고 주장하는 놈들도 많아졌고, 물약 상자 대신 들려보내는 인간짐도 많아졌다. 하지만 그런 것도 곧 끝난다. 지긋지긋한 이 토벌이 곧.

 

“보고된 하급 마물들의 규모는 약 3천 5백. 투입된 인력은 총 420. 지휘인력 20입니다. 보급을 위해 마법사 여섯과 마술사 30명이 배정되었고  총 18주 3일 동안 작전을 수행하였습니다. 심도 2에서 진척이 급격히 느려졌지만, 마지막 대토벌에서 심도 4까지 돌파하여 이번 토벌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생존 병력은? 그리고 하루만에 심도 4까지 돌파가 가능한데 왜 심도 3까지 가는데 17주나 걸린 거지?”

“마지막 대토벌을 위해 기사단과 영웅급 용병들을 참석시켰고, 기존 토벌 인력은 생존자 120으로 집계되었지만 모두 전역하였습니다.”

“알겠네. 그정도면 심도4가 아니라 완전 토벌도 생각할 수 있었을텐데. 역시 봄이 오면 다른 일들이 생기는 법이지. 우리 이득은?”

“소모된 물약은 약 30만 병이지만, 이번 토벌로 얻은 소재로 제작 가능한 양은 가볍게 100만을 상회합니다.”

“좋군.”

“매년 있는 일이니까요. 아쉽게도 숙련병은 건지지 못했습니다.”

“지휘인력은 어떻게 되었나?”

“2명이 살아남았습니다만, 퇴역을 희망했습니다.”

“물약?”

“네. 언제나처럼 물약이죠.”

 

마을은 평소처럼, 아니 언제나 활기차다. 그 안에 누군가 있어도 마을이라는 단어는 활기차야 한다. 토벌이라는 단어는 항상 용맹해야 하듯. 정기적으로 겨울이 오면 행해지는 토벌은 봄이 오며 끝이 난다. 매년 봄에는 누군가 결혼을 한다. 여름에는 용병들과 모험가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가을에는 전쟁이 난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오면 전쟁은 끝나고 다음 전쟁을 위해 토벌이 필요하다. 영웅들이 떠나는 원정이 아니라, 우리가 떠나야 할 그 곳이.

 

이 봄이 끝나갈 때면, 다시. 결코 끝나지 않는. 결코 끝날 수 없는 시작이 반복될 것이다.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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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주제는 '변비' 입니다.

장르문학을 사랑합니다.
  • 1
  • Lv39 표적지가필요없음 삑삑, 학생입니다. 2018-09-17 00:46:53

    전선도 끝나지않는 변비같고 개개인도 끝나지않는 묵직한 똥덩어리마냥  불쾌감뿐인 소모품...  터져도 결국 되는건 진흙속 똥덩어리...

    1. 시류 님이 이 댓글을 좋아합니다.
     
  • 2
  • Lv15 배페인 새내기 2018-09-17 08:55:57

    32차라는건 이런 상황이 30년 넘게 이어졌다는 뜻이네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거고요...

     

    사람을 물약만 넣으면 돌아가는 기계 취급하는 세계관이 잔인해 보이면서도 현실성이 있어서 씁쓸해집니다

    1. 시류 님이 이 댓글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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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는
Lv11 시류
2018-09-17
00:37:21
161
472 주제 교환 이벤트 - 황혼의 티 타임 +2 (3)
새내기
Lv14 배페인
2018-09-16
09:31:38
202
471 주제 교환 이벤트 엽편-POTATO AND TOMATO +2 (1)
삑삑, 학생입니다.
Lv39 야한꿈꾸는정력왕
2018-09-14
00:28:37
184
470 (2)
Lv39 뱀술
2018-09-11
03:53:28
160
469 지루해졌다... +3 (1)
가입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Lv01 닐스
2018-08-23
02:56:49
338
468 나는 천재로 태어났다.
가입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Lv01 닐스
2018-08-20
12:42:44
226
467 개노잼 소설 -7- +1
자유의 날개
Lv38 스타크래프트2
2018-08-19
00:50:43
207
466 저 하늘의 별 - 2 (1)
새내기
Lv11 배페인
2018-08-18
21:01:41
185
465 개노잼 소설 -6- +1
자유의 날개
Lv38 스타크래프트2
2018-08-18
05:25:18
190
464 어머니 친구 딸내미 시리즈 현재까지 정리
전문 카운슬러
Lv38 야한꿈꾸는누운G
2018-08-17
17:31:47
227
463 습작) 닭이 되지 못한 채 외 3개.
알아서 로그인되는
Lv32 아스카
2018-08-16
12:52:02
229
461 개 식용에 관한 고찰
알아서 로그인되는
Lv32 아스카
2018-08-16
02:49:00
222
460 저 하늘의 별 - 1 +1 (1)
새내기
Lv11 배페인
2018-08-15
15:49:34
202
459 +2 (3)
삑삑, 학생입니다.
Lv38 정력왕
2018-08-15
03:52:54
246
458 개노잼 소설 -5- +1 (1)
자유의 날개
Lv38 스타크래프트2
2018-08-13
23:06:46
204
457 저 하늘의 별 -  프롤로그 +1 (1)
새내기
Lv11 배페인
2018-08-11
22:10:02
216
456 [단편] 아내 살인범을 찾습니다. +3 (5)
노화방지
Lv34 꾸꾸맘
2018-08-11
01:37:49
276
455 개노잼 소설 -4- +2 (2)
자유의 날개
Lv38 스타크래프트2
2018-08-11
01:08:06
205
454 개노잼소설 -3- +1 (1)
자유의 날개
Lv38 스타크래프트2
2018-08-05
00:28:04
209
453 개노잼 소설 -2- +1 (1)
자유의 날개
Lv38 스타크래프트2
2018-08-01
22:43:29
217
452 버질 설정집 2. 오크식 외날검(Orcish Katana) +3 (3)
게임 리뷰어
Lv38 버질
2018-08-01
21:33:32
249
451 개노잼 소설 -1- +1 (2)
자유의 날개
Lv38 스타크래프트2
2018-07-31
21:50:31
248
450 주제 교환 이벤트 - 검 +5 (3)
눈팅하고 있는
Lv38 기번
2018-07-29
22:41:01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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