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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588   540 hit   2019-08-28 15:11:25
에일리언에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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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40 곰팡이빵

에일리언에일리언

 

 

 

 

 

 

 익명1.

 나는 평범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 단지 내가 특별한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이상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나를 이한경이라고 불러주길 바란다. 내 본명은 다리가 많은 어느 해양생물의 이름과 닮아, 지독한 놀림을 받고 말았다. 이름이란, 내 것이지만 나보다 남에 의해 더 많이 사용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더럽혀지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무형의 것에도 얼룩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익명2.

 평범하게 사는 법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가?

 그러고 보면 학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 적은 없었다. 잘 생각해보라, 어른들을 보면 인사를 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손을 들고,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올바르게 사는 법이지,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사는 법은 아니다. 내가 입은 옷이 촌스럽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할 평범한 대답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가? 빨간 신호등 아래를 평범하게 걸어가는 법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가? 쓰레기를 거리에 던지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법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가?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힘겨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교가를 부를 때는 언제 숨을 쉬어야 하는지? 등을 쭉 펴고 걸을 때의 각도는 몇 도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목은 안으로 움츠러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는 빼야 하는지? 안경을 올리는 것은 검지 손가락의 몫인지 아니면 중지 손가락의 몫인지? 남몰래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옷의 단추는 몇 개까지 잠가야만 하는지? 눈물을 흘리지 않는 법은 대체 무엇인지?

 그러한 해답은 종종 우연이 가져다주곤 했다. 마치 도태된 오리 새끼를 불쌍히 여긴 사람이 무리로 돌려놓듯이, 삶에서 도태된 나에게 세상이 베푸는 최소한의 자비처럼 말이다. 여기, 내가 중학생이 되어 얻은 하나의 해답이 있다. 만약 누군가가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면,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보다 더 괴롭히기 좋은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 녀석을 외계인이라고 불러주길 바란다. 본인이 그렇게 소개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어쩌면 나 혼자만 그렇게 여겼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그 사실 때문에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녀석의 이름을 모른다. 어쩌면 외계인도 나처럼 이름을 버렸을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름이란 남에게 받아서 남이 더럽히는 것이다. 소중히 할 이유 같은 건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난 이따금씩 내 이름이 그립기도 하다. 왜일까? 정말로 소중히 할 이유 같은 건 하나도 없는데……. 외계인이라면 어땠을까? 진작에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익명3.

 외계인은 혼혈이었다. 만약 내가 감독이었다면 카메라를 들고 슬로우 모션을 잔뜩 먹인 채, 단순히 눈을 깜빡이는 장면을 몇 번이고 담아내려 할 것이다. 외계인은 그럴 가치가 있을 만한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만발한 개나리꽃 같았다. 외계인은 아름다웠다. 체구는 왜소하고, 어깨는 언제나 움츠러들어 있고, 말을 우물우물 삼키며, 당연하게도 소심한 성격이었다. 외계인은 혹시 희생양이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 아닐까? 도저히 한데 모이기 어려우리라 생각되는 이 모든 요소요소에 더하여, 외계인은 고아였다.

 외계인은 남성 그룹과 여성 그룹 양쪽에게 모두 괴롭힘을 당했다. 남성 그룹은 돈을 뜯거나 매점에 심부름을 시키거나 하였고, 여성 그룹은 때렸다. 내가 교실에서 본 것만 그 정도이니, 그 외에 어떤 일이 있었을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씩 여자애들에게 둘러싸여 화장실 쪽으로 끌려가는 외계인을 보긴 하였으나,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학교라는 사회에서는 두려움이 호기심에 우선한다.

 나와 외계인의 관계는 고작 그 정도였다. 이름을 모르는 것은 물론 말도 나눠본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보는 사람 그 아래의 관계다. 나는 오히려 외계인에게는 되도록 얽히지 않도록 조심해왔던 것이다. 왕따를 돕는 사람은 왕따가 된다. 그 또한 세상이 내게 준 해답이었다. 내게는 그런 해답들이 장난감 블록처럼 널려 있었다. 나는 이 작은 선물들을 쌓아 안전한 성을 만들어야만 한다. 평범한 인간을 흉내 내는 것 정도는 거뜬히 해내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위해 은혜를 갚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방관한다. 그리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가끔 겁에 질린 채 눈알을 도록도록 굴리는 외계인과 눈을 마주치는 일도 있었다만, 나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그저 가던 길을 재촉했다. 이건 방관자 효과에 불과하니까. 콕 집어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쪽이 잘못이다. 크게 소리 높여 도와달라고 하지 않은 쪽이 잘못이다. ‘안돼요싫어요도 하지 못하게 태어난 쪽이 잘못이다. 살아서는 그런 유전자를 남겨주고 죽어서는 자식을 지켜주지 못한 부모의 잘못이다. 그러니까 나는 잘못이 없다. 내 배신은 나쁘지 않다.

 외계인은 우리 교실의 공유지가 되어야만 했으니까. 어찌 보면 그것도 하나의 해답이었다. 작고 아름다운 인간 모양을 한 눈에 잘 띄는 인생의 비결이었다. 외계인은 우리 모두의 문제였고, 우리 모두가 방관하는 문제였다. 나는 남들이 앞서 한 일을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의 장난감 블록을 가져다 준 세상에게 말이다. 나는 외계인을 특별히 조심스럽게 성벽 위에 쌓았다.

 

 

 익명4.

 외계인과의 조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느 청소당번이 흘렸는지 나는 옥상 열쇠를 줍게 되었다. 유실물은 바로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는 게 착한 어린이의 의무이긴 하지만, 나는 착한 어린이가 아니니 조금 딴 길로 샌다고 큰 문제가 될 것도 아닐 듯싶었다. 나는 옥상에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기가 무섭게 달려가는 수많은 학생들과는 달리, 나는 그런 점심시간의 여유를 활용해서 학교를 구석구석 돌아다니곤 했다. 같이 밥을 먹을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2학년의 복도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혹시 쓰이지 않고 방치된 교실은 없는지, 강당의 뒤편은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뭐 그런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일련의 기행은 내가 세상에 품고 있는 희망을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어딘가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공간이 있지 않을까,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녀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나만의 장소가 있지 않을까. 세상은 나만을 위한 장소를 어딘가에 숨기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악마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악마가 아닌 모든 것을 가져와야 한다. 이길 수밖에 없는 배팅이다.

 다만 그러한 장소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장소가 내 소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여기는 학교이기도 하고.

 요컨대 내가 옥상의 열쇠를 주웠을 때 그러한 희망을 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사실 열쇠를 선생님께 드리자는 생각은 옆으로 치워두고, 여차하면 옥상을 독차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청소당번이 방문하는 시간만 유의한다면 달리 누가 옥상을 방문하려 할까. 옥상은 언제나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그래서 점심시간 대부분의 학생들이 식당으로 달려 나가고, 그 흐름이 잦아들길 기다리던 남은 몇몇 무리들마저 빠져나가는 그 시간쯤에, 나는 조용히 옥상으로 향했다. 특별히 잘못한 일도 없고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초조한 기분이 되었다. 계단을 한칸한칸 올라가는 내내 나는 점점 더 초조해짐을 느꼈다. 혹시 지나가던 선생님이 불러 세우면 어떡하지. 청소 당번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신경써야할 것은 어떻게 변명하냐는 것이 아니라 더듬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뿐이다. 그것은 걱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대감이 아닐까. 일부러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어리석은 짓이다. 인간에겐 위기를 스릴로 착각하는 멍청한 구석이 있는 것이 아닐까. 최소한 나라는 인간은 그런 듯하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더듬으며 나는 어떤 두더지에 관한 동화가 떠올랐다. 땅굴 속에서 택배를 기다리는 두더지의 이야기였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반색하여 달려가기를 여러 번, 기다리는 택배는 오지 않고. 이내 실망한 두더지는 이렇게 말한다. ‘기대를 하니까 실망을 하게 되는 거야. 그러니 완전히 잊어버린 채로 기다린다면, 기쁨이 배가 되겠지. 그리고 실망하지 않을 만큼만의 기대만을 하는 거야. 아주 조금만.’

 나는 내가 너무 기대를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이 열쇠가 옥상 열쇠가 아니면 어쩌지? 단순한 착각이었다면? , 내 기대로 부푼 심장을 속일 수가 없다. 일이 그렇게 잘 풀릴 일이 있나. 방금 전까지 어리석게도 세상이 내게 선물을 주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실은 너만을 위해 준비한 장소는 없다고, 나를 배신하기 위해서 열쇠를 쥐어준 것을 아닐까.

 어쩌겠나, 결과가 눈앞에 있는데. 자물쇠에 열쇠를 갖다 대고, 나는 돌려 넣었다.

 

 

 외계의 법률1.

 내가 들은 외계인의 첫마디는 이러했다.

 “어떻게 내 아지트를!”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은 나만의 장소를 제공해주지도 않고, 기대를 배신하지도 않았으나, 전혀 예상 밖의 광경을 보여주었다. 옥상은 바로 외계인의 아지트였던 것이다. (짜잔) 외계인은 철창 밖으로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뭐라고?”

 진부하지만 그것만큼 이 상황에 필요한 말이 또 생각나질 않았다.

 “여기는 내 아지트라구! 나 말곤 아무도 들어오면 안 돼!”

 솔직히 평소에 보던 외계인과 너무 이미지가 달라서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저렇게 파랗고 노랗고 눈에 띄는 인간은 외계인 말고는 이 동네에 없을 터.

 나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보고자 또다시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 그렇구나. 그래서 그 아지트에서 뭐하고 있는데?”

 “보면 몰라? 밥 먹는 중이야.”

 외계인은 그렇게 답했다. 그 당당한 태도에 나는 또다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녀석 소심한 성격이 아니었던가? 하긴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으니 내 지레짐작이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교실에서 볼 때랑은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게다가 하는 말이 하나같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아지트는 뭐고 왜 옥상에 있고 또 이 태도의 변화는 뭔지……. 해결해야 할 미스터리가 너무 많다.

 “내 말은 왜 옥상에 있냐는 의미였는데.”

 “뭐야~ 그런 거였어? 그럼 그렇게 말하지~”

 외계인은 이상하게도 신이 난 것 같았다.

 “지금 이 옥상은 제 아지트입니다! 제가 점령해서 점심시간마다 밥을 먹고 있습니다!”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지 가슴을 쭉 펴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나는 톡까놓고 말해서 이제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었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내 오랜 침묵의 세월과 이 비현실적인 상황과 외계인의 살짝 정신 나간 헛소리들이 뒤섞여 사방을 혼돈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실마리를 잡아야만 한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만 한다.

 “음……, 그렇지. 너 옥상엔 어떻게 온 거야? 옥상 열쇠는 당번만 가지고 있어야 되잖아.”

 “……. 아까부터 계속 질문만 하고 말이야. 그렇게 치면 너는 뭔데? 너도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잖아. 청소 당번 아닌 거 알고 있거든? 너야말로 어떻게 온 건데? 니가 먼저 대답해!”

 그렇게 되묻는 것이었다.

 “그게 그러니까…….”

 “, . 여기 앉아서 천천히 설명해 봐,”

 외계인은 돗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나는 엉거주춤 앉으면서도, 짐짓 저항해 보았다.

 “그렇게 길게 할 얘기도 아닌데.”

 “그 다음엔 내 얘길 들으면 되지. 그리고……. 혼자서 밥 먹는 건 심심하기도 하구…….”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드디어 대화가 방향을 잡았으니 말이다.

 우리는 서로 자초지종을 들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우연히 주웠고, 옥상은 그냥 구경하고 싶어서 와봤다고 적당히 둘러댔다. 딱히 거짓말도 아니다. 하지만 외계인은 젓가락으로 밥을 집어먹으며 흐음…….’하고 취하는 폼이 납득한 것 같지가 않았다. 왠지 내 속을 꿰뚫어보는 듯해서 껄끄러웠다.

 외계인의 설명은 이렇다. 외계인은 평소 점심식사를 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식당에 가면 여성 그룹이 식판을 엎기 일쑤였고, 매점에 가면 남성 그룹에게 돈을 빼앗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조용히 도시락을 먹을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옥상 청소당번의 차례가 돌아왔고 외계인은 그길로 바로 열쇠를 복사해 몰래 가지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것 참…….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흐흠, 내가 좀.”

 “딱히 칭찬은 아니었는데.”

 외계인은 예의 그 자랑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눈을 반짝거렸다. 이런 포즈에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다시금 나는 외계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그런 감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게 호의적인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내가 외계인을 피해 다녔다는 사실에 마음 한켠이 답답했다. 외계인의 눈을 피했던 순간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그건 모두 네가 잘못한 거니까. 네가 자초한 거니까. 그러니까 너는 나한테 잘 해줘서는 안 된다.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여기는 나만의 장소로 쓸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방문한 것이다. 탐색은 이쯤하면 됐다. 소정의 목표를 달성했으니 돌아가면 그만이다. 여기는 외계인의 아지트고, 외계인만의 장소이니까 말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볼…….”

 “우아아아아아! 잠깐만. 너 혹시 그거 아니? 지금 시간이 꽤 지났단다! 그래, 식당에 가도 이미 배식이 끝났을 시간이란다!”

 “깜짝이야……. 아무렴 어때, 매점에 가면 되지.”매점에서 끼니를 때우면 좋지 않아요! 몸에 나빠요!”

 외계인은 허둥지둥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내게 건강식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자기는 편의점 도시락 먹는 주제에. 나는 그 행동이 지나치게 맥락을 벗어나서 또 식은땀을 흘리고 만다.

 “아니……. 왜 갑자기 난리법석이야?”

 “, 그게……. 내가 시간을 뺏어서 식당에 못 가게 된 거잖아! 매점에서 따로 사먹으면 돈도 아깝고, 배고플 거 같은데 혹시 괜찮다면……, 내 도시락…… 좀 나눠줘도 되기도 하구…….”

 외계인은 말끝을 흐리며 날 쳐다보았다. 눈동자 옆에 지향성 마이크를 갖다 대면 힐끔 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내가 잠시 멍하니 서 있자 외계인은 또 다시 손을 허우적거리며 말을 잇는다.

 “이 도시락 말이야! 너무 맛있어 보여서 늘 사먹어 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거든. ! 너도 보면 알겠지만 이렇게 매일 도시락을 먹다보니 이것저것 사먹게 됐거든. 그래 이번에는 이거 먹고 다음에는 저거 먹고, 그런데 이 도시락은 양이 너무 많아 보여서 오늘 큰 맘 먹고 산 거거든? 다 먹으려고 아침밥도 굶고 왔는데 그래도 다 못 먹겠더라구! 어우 양이 얼마나 많은지, 정말 웃기지? 하하하…….”

 외계인은 속사포로 자기 사연을 쏟아낸다. 나는 그 모습이 어쩐지 너무 필사적인 듯싶어, 다시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아직도 대체 왜 외계인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거절하는 것도 뭐하고……. 미안하지만 좀 얻어먹을게.”

 “정말? 와 잘됐다!”

 외계인은 환하게 웃는다.

 “자 여기 밥 먹어. .”

 외계인은 솜씨 좋게 밥을 집어 나에게 떠넘긴다. 그러고 보니 외계인이 젓가락질을 잘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한국말도 엄청 유창하고. 아니, 당연한 일인가…….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정도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게 이상할 뿐.

 “그런데……, 밥만 먹으라고?” .”

 단칼에 잘라 말한다. 외계인의 눈이 미묘하게 가늘어진 것 같다. 오후의 햇살을 쬐는 고양이의 눈빛이 저런 모양이 되는 것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지금 나한테 장난을 시도하는 건가.

 “반찬도 줘야 먹지. 거기 닭튀김이라든가…….”

 “하지만 반찬 주겠다는 말은 안 했는걸?”

 “순 억지야…….”

 “푸흡…….”

 외계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다 괜히 목덜미가 가려운 척 긁었다.

 “재밌었으니까 기념으로 닭튀김 하나 줄게.”

 “하나만……."

 어쨌건 외계인은 밥 위에 닭튀김을 얹어 주었고 나는 잠자코 받아먹었다. 제법 맛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내가 배운 것은, 외계인은 생각보다 훨씬 활기찬 성격이고. 말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거의 궤멸적인 수준에 가까운 나에 비해 외계인은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외계인 주제에……, 속으로는 그런 분한 마음도 들었다.

 결국 이야기를 할수록 분명해 지는 것은, 외계인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거다. 더럽고 추악하도록 이기적인 놈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나는 남들처럼 외계인을 대해야 했다. 뻔히 보이는 해답을 손쉽게 골라야만 하는데. 하지만 벌써 외계인을 너무 많이 알아 버렸다. 오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도시락을 다 먹어갈 쯤 외계인이 이렇게 말을 건넸다.

 “있잖아…….”

 외계인의 시선은 운동장을 향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축구를 하던 아이들은 이제 막 승부차기를 돌입하는 중이었다.

 “내일 또 오겠다고 말하면 하나 더 줄게.”

 “?”

 “……닭튀김 말이야.”

 외계인은 나에게 표정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돌린 채 그렇게 말했다.

 나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지향성 마이크를 내 입에 갖다 대면 피식 하는 소리가 들렸으리라.

 “그러지 뭐.”

 “……정말?”

 “그래, 나 닭튀김 좋아하니까.”

 외계인을 또 예의 반짝 하는 눈을 하고, 이렇게 말한다.

 “내일은 더 맛있는 도시락 사올 테니까!”

 “아니……, 내건 내가 사와야지…….”

 그렇다. 이것이 내가 외계인을 알게 된 계기이다.

 외계인은 돗자리를 정리해야 하니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순전히 돗자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외계인 나름의 배려였겠지.

나는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전화번호 좀 알려줄래? 내일 언제쯤 와야 되는지 문자로 알려줘.”

 “! 그래! 그럼 좋겠다.”

 내가 휴대전화를 건네자 외계인이 번호를 찍어 돌려주었다. 그런데 번호를 등록하려는 순간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 그러고 보니 우린 서로 이름도 모르네.”

 “~? 어떻게 같은 반인데 이름도 모를 수가 있어! 난 니 이름 알고 있다구!”

 외계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 휴대폰을 낚아채더니 빠르게 자판을 두드리고 돌려주었다.

 외계인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나는 목을 긁으며 딴청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돌려받은 휴대폰의 화면에는 아무리 봐도 이상한 문자가 남겨져 있는 게 아닌가.

 “이름에 외계인이라고 써져 있는데.

 “써져 있는 그대로야. 난 외계인이니까. 너한테 가르쳐 줄 이름 같은 건 없다구.”

 외계인은 혀를 쭉 내밀고는 등을 돌렸다.

 그렇다. 이것이 그 녀석의 이름이 외계인이 된 계기이다.

 

 

 외계의 법률2.

 점심시간에 외계인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외계인의 외계인 설정이 생각보다 본격적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옥상을 점령해 아지트라 부르는 그 네이밍도 연관이 없지는 않으리라.

 “난 말야, 진짜 외계인이야. 그러니까 너희들 인간들이랑은 생긴 것도 다른 거지.”

 “아무리 봐도 그냥 외국인…….”

 “어허!”

외계인은 손사래를 치며 제지했다.

 “나는 외계인이니까, 인간의 법률은 하나도 적용되지 않는다구. 알겠어? 그러니까 인간들이 아무리 괴롭히고 때려도 나는 인간의 법으로는 보호받을 수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참는 거야. 바보라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야.”

 우스꽝스러운 자기합리화다. 하지만 나는 외계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면 이해한다고 착각할 수 있었던가.

 “사실 나도 예전에는 외계인이었어.”

 나도 모르게 그런 우스꽝스러운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럼 지금은 아니란 말?”

 “, 그렇지.”

 “, 외계인은 그만둘 수도 있는 거야?”

 네가 생각한 설정 아니냐……. 나한테 되물어서 어쩌자는 건지.

 “아무튼, 예전에는 외계인이었지만 지금은 아냐. 인간이 되기로 했거든. 아직 적응이 덜 끝나서……, 이상하긴 하지만.”

 나는 고개를 숙이고 목을 긁었다. 직접 입으로 말하니 말도 안 되게 부끄러웠다. 외계인은 이런 부끄러운 말을 잘도 한다 싶었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제정신이 아니야…….

 “그러면 너는 배신자네.”

 “……뭐?”

 “너는 인간이 되어서, 외계인을 배신한 거야.”

 혹시 화가 난 건 아닌가 싶어 얼굴을 바라보니, 의외로 외계인은 차분한 표정이었다.

 “원래는 위대한 외계의 법률에 따라 배신자는 엄벌에 처해야 하겠지만…….”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던 외계인이 휙 뒤돌아 검지 손가락을 내게 향한다. 마치 총의 모양새를 흉내 내듯이.

 “넌 내 친구니까 이걸로 봐주도록 할게.”

 빵. 하고 총알을 쏘는 시늉을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점심시간 이외에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인사를 건네는 일도 없었다. 가끔 문자를 보내기는 했다. 어느 날은 복도에서 외계인을 만난 내가 무의식적으로 인사를 했는데, 그 후 점심시간에 외계인한테 호된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인사를 하면 어떡해! 누가 봤으면 어쩔 뻔했어?! 그 때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망정이지, 정말 큰 일이 날 수도 있었다구!”

외계인이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경아……. 너도 아마 알고 있겠지만. 외계인이랑 말하는 걸 들키면, 너도 외계인 취급이 된다구. 기껏 인간이 됐는데……, 화내서 미안. 하지만 내 말은 꼭 기억해 줘.”

 교실에서 보는 외계인은 여전히 소심하고, 말을 더듬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나는 교실의 외계인과 옥상의 외계인의 갭이 도통 실감이 나질 않았다. 정말로 옥상이 외계인의 아지트고, 그곳에서만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만 같았다. 혹시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선이라도 어디 착륙해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전직 외계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이 기괴한 현상이 가능한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정말 괜찮겠냐고. 그걸로 만족하냐고. 외계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나랑 대화할 때, 혹시 일부러 밝은 척을 하는 건 아니야? 만약 그렇다면 힘들게 안 그래도 되는데…….”

 나는 외계인이 나와 있을 때만은 편하게 있어줬으면 했다. 내 앞에서는 원래의 모습이 되어줬으면 했다. 나는 외계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혹시 그런 말 알아? 인간의 본성을 알고 싶으면, 그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주면 된다고. 그럼 그 사람의 본성이 나타난다고 말이야. 하지만, 난 이 말이 싫어. 그게 정말 사람의 본성일까?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굳이 인간을 극한으로 몰아붙인 뒤에, 자 보십시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 하는 건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그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없었을 것 아냐. 그렇게 몰아넣은 사람들이 이상한 거 아냐? 그럼 풍족한 환경에서 보여주는 이타적인 모습들은 다 가식이란 말이야? 정말? 나는 그래서 이 말이 싫어. 만약 평생 아무 권력도 쥐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평생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가짜 인생을 살아가는 게 되잖아. 그건……, 너무 비참해.”

 외계인의 말은 틀렸다. 그 반증이 바로 나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나는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이다. 평범한 인간조차 되지 못하는 주제에, 몇 가지 장난감 블록을 권력이라 착각한다.

 “그리고……, 평생 드러내지 못하는 모습이 본성일 리도 없고 말이야.”

 그에 비해 외계인은, 너무나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그건 인간 이상의 고귀한 무언가였다. 본인이 주장하는 대로 우주에서 온 무언가는 아닐 터였다.

 “……물론 난 외계인이니까, 사람의 본성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말야! 걱정하지 마. 일부러 밝은 척 같은 거 안 하니까. 난 언제나 있는 그대로야.”

그건 분명, 날개가 달린.

 

 

 괴물의 수사학1.

 이렇게 말하면 정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좋은 시절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다. 외계인과의 점심시간도 그랬다. 나는 오래간만에 행복을 느꼈다. 같이 도시락을 먹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고, 또 가끔 문자를 하고, 그것만으로 충분한 행복이었다. 충실한 생활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반 교실에 칼을 든 살인마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만약……, 만약……. 누군가는 역사에 만약이 없다고 가르치지만, 사실 틀렸습니다. 사실은 인간의 인생에 만약이란 없는 거지요. 누군가는 그걸 가르쳐 줘야 돼. 여기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했겠지.”

 독백.

 “, 만약 갑자기 저 문을 열고 살인마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만약 가장 가까운 곳에 서있는 사람을 잡아 칼을 들이대며 인질극을 벌인다면 어떨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얼마나 용감한 지 보여줄 수 있을 텐데……. 기회만 주어지면 내 용기를 증명할 수 있을 텐데! ……아니, 틀렸습니다.”

 독백.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겠지. 왜 하필 나일까? 왜 수많은 학교 중에 우리 학교일까. 왜 수많은 교실 중에 우리 교실일까. 아니지, 왜 하필 내가 있는 학교에, 내가 있는 교실인가? 만약 다른 학교, 다른 교실, 또는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으면 안 됐을까? 대체 왜 하필 나인가, ? ……아니, 이것도 틀렸습니다. 여기 바닥에 누워있는 시체가 자기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은 왜 못하나 모르겠군요.”

 방백.

 “누군가는 그걸 가르쳐 줘야 돼. 그래서 제가 왔습니다. 친절하게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만약에 대해서 말인데……, 인간은 뭐든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늘상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하지요.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신의 어머니와 아내, 아 당신이 결혼했다고 칩시다, 두 사람이 모두 바다에 빠졌습니다. 자 누구를 먼저 구하시겠습니까……? ! 정말 웃기는 질문이야, 안 그래요? 만약 아내는 팔팔한 20대고 어머니께서는 60대를 넘어 거동조차 불편하신 몸이라면……, 당연히 어머니를 먼저 구해야겠죠? 그쵸? ! 하지만, 하지만. 만약 제 어머니께 구명조끼가 있다면 어떨까요? , 제 아내는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라면 어떨까요? 당연히 아내를 먼저 구해야겠죠? 안 그래요? , 뭔가 좀 이상한 점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어째 정반대의 선택을 당여언히두 번이나 한 거 같은데요. 하지만 만약……, 하지만 만약!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겠지. 도대체 끝나질 않는군요. 그러니 오늘의 교훈은, 인생에 만약을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방백.

 “, . 이상한 의심을 품는 분들이 있을 테니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여러분은 결코 우연히 뽑힌 것도 아니고, 운명적으로 선택된 것도 아니고, 추첨을 통해 당첨되신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철저한 관찰과 계산, 그리고 직감에 의해 선출된 것이지요. 왜 하필 여러분들의 학교, 왜 하필 여러분들의 교실, 왜 하필 여러분들이냐! 바로 여러분들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자초한 겁니다! 여러분이!”

 방백.

 “, 외부자인 제가 여러분들께 설명하는 것도 꽤나 우스꽝스럽지만 오늘의 진행, 바로 제가, 이 부족한 몸이 맡은바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겠사옵니다. 요란한 팡파르 소리. ! ! 모두들 아시다시피 이 교실에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 있죠. 바로 이 사람, 아름다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숙녀분이 되시겠습니다. 지금은 손도 발도 묶인 채, 안대를 차고 의자에 앉아 있으니, 그 푸른 눈을 보지 못해 유감입니다. , 간단하게 왕따양이라고 칭하도록 하죠. 여러분들은 왕따양을 괴롭힙니다. 최소한 괴롭힘을 방관했습니다. 과연 모두가 공범자란 얘기가 되겠군요. ,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거기까지라면 전국 어디를 가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교실 풍경이겠죠. 말 그대로 살풍경하지 않습니까? 여기, 웃을 타이밍입니다. 중요한 건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우리 왕따양은, 아름답습니다. 담기만 해도 그림이 되죠. 이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김이 빠지시나요? 뭐 그럴지도 모르죠, 이런 건 디테일이니까요. 방송에서 결코 핵심적인 요소가 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 디테일에 집착하는 것만이 명작으로 이르는 길, 그리고 그것만이 프로로서의 사명. 그렇게 설명드릴 수 있겠군요.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그 아름다운 왕따양을 괴롭혔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런데 괴롭혔다고? 왕따는 더럽고, 냄새나고, 추악해야만 하잖아요? 안 그래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차별 없이, 공명정대하게, 엄격한 집단 괴롭힘의 천칭을 기울이고 있었던 거지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요즘 사회에 정말 희귀하고 소중한 재능입니다. 여러분은 차세대 연예계의 희망입니다. 좀 더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여러분이 알까 모르겠는데, 여기 바닥에 뒹굴고 있는 이한경군이 우리 왕따양과 사이좋게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 정말요? 다른 반 친구들은 모두 모두 정의로운 왕따에 동참하는데, 자기 혼자 그런 외모지상주의적 괘씸한 짓을 했단 말입니까?!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요?”

 (시체에 박힌 칼을 뽑으며) 방백.

 “……, 이렇듯 여러분들이 보는 방송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뒤에는 세심한 연출 하나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걸로 마지막이군요. , 이제 정확히 22명입니다. 물론 이 숫자도 철저히 계산된 겁니다. 한경군과 왕따양과 관객분들 20. 딱 떨어지니 기분이 좋죠? 여러분들 다 집에 텔레비전 가지고 있나요? 아마 대부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컴퓨터는 어떤가요?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나요?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하면, 앞으로는 방송의 추세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실시간으로 방송을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시간으로 방송을 만드는 시대가 올 겁니다. 누가 그렇게 하지요? 바로 여러분들이 하지요! 여러분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실시간으로 방송에 참여하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다가오는 게 느껴집니다. 저는 준비된 프로니까 말이죠. 엔터테인먼트란 말입니다. 꾸준히 저속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어요. 대중예술로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요. 교육된 창작자가 교육된 비평가와 함께 꼭두각시 춤을 추는 그런 예술이 아니란 말입니다. 언제나 교육된 프로와 야만적인 대중이 함께하는 장르지요. 그런데, 준비된 프로로서, 다가오는 뉴 에이지를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그게 프로의 사명이라는 거잖아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엔터테인먼트가 재밌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저속해져서는 안 됩니다. (이 부분 중요하니까 메모하셔도 좋습니다.) 참 재미있게도, 우리에게는 어떤 경계선이 있어서……, 방송이 저속하고 자극적일수록 재미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자칫 잘못 디뎌 그 경계선을 넘고 만다면, ! 끝나는 겁니다. 더 이상 재미가 없어요. 오히려 더럽고, 냄새나고, 추악한 것이 되고 말죠. 그 경계선을 두고 벌이는 한판 줄타기 싸움이야말로……, 엔터테인먼트라는 전장에서 프로가 활약하는 부분이라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저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데. 준비가 안 된 야만적인 대중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느냐! 해답은 바로 교육에 있습니다. 여러분들, 아마추어를,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그걸 가르쳐 줘야 돼. 그래서 제가 왔습니다.”

 방백.

 “여러분들에게는 빛나는 재능이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의 재능이죠. 여러분들에게 예습을 시켜주기 위해서. 오늘은 일종의…… 그래, 역량교육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서론이 너무 길어졌어요. 벌써 질리시진 않으셨나 모르겠네. ,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는 곧 카메라 발달의 역사입니다. 더 큰 조명, 더 많은 카메라, 그리고 더 좋은 방송. 하지만 새 시대의 것이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고전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습니다.”

 (교탁 위에 캠코더를 올려놓으며) (붉은 빛이 점화된다) 방백.

 “저를 프로라고 불러 주십시오. 나는 프로듀서임과 동시에,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이죠.”

 독백.

 “이번 화는 여기서부터 기록하도록 합시다.”

 프로의 교실이 시작되었다.

 

 

 괴물의 수사학2.

 “반갑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의 게스트는 이쪽의 두 분입니다. 소개하죠! 여기 의자에 결박되어, 고통의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분은, 왕따양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적당히 엎어져 있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해빠진 남성분은, 한경군입니다! 현장에는 관객으로 양맥중학교 2학년 8반 학생 20명께서 함께해주시고 있습니다. 모두 박수! 열화와 같은 성화와 또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말이 안 되는 수준을 넘어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은 우리 친구, 한경군이, 선택에 대해서 배울 겁니다. 인생에는 만약이 없다는 것. 그렇기에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또한 말이죠. , 대망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바다, 그리고 그 외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이 망망대해에 두 척의 배가 떠 있습니다. 양쪽 배에는 모두 100명의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언! 두 배에 모두 구멍이 뚫리고 말았습니다! 1시간 후면 이 가련한 200명의 사람들은 물고기 밥이 되고 말겠군요. 자 여기서 당신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당신에게는 구조선이 있습니다. , 당신이 탄 구조선은 시간과 공간 관계상 어느 한 쪽 배의 사람들밖에는 구할 수 없습니다. 즉 왼쪽 배에 탄 사람들을 당신의 배에 태운다면, 오른쪽 배의 사람들은 영락없이 죽은 목숨이라는 뜻이죠. , 이 때 왼쪽 배의 사람 100명은 모두 전과가 있는 범죄자, 오른쪽 배의 사람 100명은 모두 전과기록이 없는 일반인들입니다. 어느 쪽을 살릴지. 아니, 어느 쪽을 죽일지 선택해주십시오.”

 도처에 시체가 깔렸다. 프로가 적당히 발로 구석에 밀어 넣은 시체가 도처에 깔렸다. 방금 전까지 살아서, 말하고, 먹고, 웃고, 숨을 쉬던 사람이 죽었다.

 “……오른쪽 배로 ……하겠습니다.”

 “……한다구요’? 무엇을 한다는 것이죠? 이러언, 이러언. 한경군. 제가 그렇게 강조했지 않습니까. 이건 심심풀이로 하는 심리 테스트 나부랭이가 아니라구요. 이건 교육입니다. 이건 선택입니다.”

 프로는 나의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마치 울먹이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과장되게 모사하듯이. 그 우스꽝스러운 과장은 성대모사라기보다는 성대모욕에 가까운 것이었다.

 “, 오른쪽으로 할 게요…….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왼쪽이 좋겠어……. , 아니지. 양쪽에서 반씩 퍼 담으면 어떨까? 그것참 제법 근사한 생각인데요?”

 프로는 손사래를 친다.

 “아니! 단호히 말하는데 아닙니다! 이건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한경군이 이 교육을 통해 얻어가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저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관객 여러분들도 그러하겠지요. 진심으로 고민하고, 진심으로 애도하고, 진심을 담아…… 책임을 지십시오. , 앞으로 선택을 할 때는 이렇게 해주십시오. 어느 쪽으로 하겠다, 어느 쪽을 고르겠다. 이런 애매한 표현은 금지입니다. 내가 죽이겠다. 그렇게 말씀하십시오. 나는, 100명이 탄 배를 침몰시키겠다! 나는 인간 100명을 수장시키겠다! 그래! 내가 죽이겠다!”

 프로의 눈동자는 거의 타들어갈 듯했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의 열기가 거짓말같이, 마치 연기같이, 프로는 나지막한 헛기침을 했고, 이내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 다시 질문입니다. 어느 쪽을, 죽이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 정상적인 사고가 되질 않았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놓으면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지나치게 불합리하다. 세상이 내게 이래서는 안 된다. 나는 그저 살고 싶었다. 태어난 이래로 살아있지 않은 시간이 없었건만 지금 이 순간 나는 가장 살고 싶었다. 내 뇌는 오직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오래 살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었다. 순종적으로 방송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보는 게 좋을까? 그러니 이 때 내가 한 대답들은 모두 뇌신경을 모두 태우고 남은 찌꺼기 회로에서 급조해낸 것이리라.

 “나는…… 나는……. 왼쪽 배에 탄 범죄자 100명을 죽이겠습니다.”

 나는 대답하기로 했다. 지금 이 교실에는 기준이 없으니까. 전례가 없으니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략이 서지 않았다. 판단을 세울 바닥조차 없는 셈이다. 그 곳에 딱 하나 존재하는 실마리는 프로가 던지는 질문밖에 없었다.

 “그래요. 잘했어요. 한경군. 그럼 이제 이야기해 볼까요? 왜 왼쪽 배를 선택했지요? 무엇이 오른쪽 배와 왼쪽 배의 운명을 갈라놓은 걸까요. 무엇이 당신의 선택에 영향을 준 것일까요. 그래, 무엇이. 당신이 책임질 수 있을 만한 결함을 가지고 있었던가요.”

 호되게 매질을 한 뒤에 부드럽게 타이르는 교사와 같이, 프로가 속삭였다.

 “……일반인 100명이 죽는 것 보다는……, 범죄자가 죽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범죄…… 나쁜 거니까…….”

 나는 부어오른 다리를 부여잡고 눈물을 삼키던 그 시절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순종적인 학생이었다.

 프로는 박수로 화답한다.

 “하하하하하하하! 바로 그거예요. 한경군. 했어요. 정말 잘했어요. 자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가자구요.”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교실을 한 바퀴 돌더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 두 번째 질문입니다. 왼쪽 배에는 200명의 범죄자, 오른쪽 배에는 100명의 일반인입니다. 선택하십시오.”

 나에게는 똑같은 질문이나 마찬가지였다.

 “……왼쪽 배를 죽이겠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죠?”

 “……앞의 질문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아, 그렇군요. 그렇군요. 한경군 아까 내가 이게 심리 테스트가 아니라고 한 말을 기억하나요? 이건 교육입니다. 우리 영혼의 교감입니다. 저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한경군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단순히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겠지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 세 번째 질문입니다. 왼쪽 배에는 범죄자 99, 오른쪽 배에는 일반인 100명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질문이 이어진다면, 다행히 큰 문제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대답만 하면 그만이다. 정답을 맞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빨리 질문을 소모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쪽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프로는 잠시 시간을 끄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관객의 반응을 살핀다. 앞으로 자기가 할 말이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장담하는 듯이, 궁금증을 유발하려는 듯이, 어떤 타이밍에 입을 여는 것이 효과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을지 살피는 듯이, 그는 엔터테인먼트의 몸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검지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들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외친다.

 “단 왼쪽 배에는, 당신이 타고 있습니다.”

 교육이 계속된다.

 

 

 괴물의 수사학3.

 “……저는 오른쪽 배에 탄 사람들을 죽이겠습니다.”

 “, 왜죠? 범죄자는 나쁜 거 아니였나요? 한경군? , 빨리! 선택의 이유를 말씀해주십시오. 책임의 무게를 말씀해주십시오.”

뇌가 지나치게 무리한 탓인지, 나는 기괴한 발상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래, 누구보다 만족스런 게스트가 되자. 내 가치를 입증해 보자. 그것만이 살 길이다. 그것만이 해답이다. 나는 엔터테인먼트를 성공시켜야만 했다.

 “범죄자의 목숨은 무고한 사람의 목숨보다 가볍지만, 무엇보다 제 목숨이 가장 무겁습니다.”

 프로는 박장대소하였다. 교실이 떠나갈듯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양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낄낄거리는 그 모습은 어딘가 연기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사실 아까 말한 세 가지 이유에 더해서 이 교실을 선택한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한경군입니다. 이건 정말로……, 프로의 직감입니다만. 한경군에게는 재능이 보였어요. 엔터테인먼트의 재능입니다.”

 프로는 내 어깨에 팔을 걸치더니 이렇게 속삭인다.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당신이 가장 저속해. 이기적인 인간입니다. 당신은.”

 나는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채로 굳어있다. 얼굴근육을 움직이는 법을 죄다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배운 적이 없었어. 도대체 학교는 무엇을 가르친단 말인가?

 프로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교육이 계속된다.

 “, 네 번째 질문입니다. 왼쪽 배에 100, 오른쪽 배에 110명 모두 일반인입니다. 다만 오른쪽 배에는 10명의 기술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힘을 합한다면 배를 수리할 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만…… 결과는 해봐야만 알겠지요. , 그럼 선택해 주십시오. 이대로 두면 죽을 것이 뻔한 100명의 사람들을 죽일 것이냐, 아니면 단순히 더 많은 수의 110명의 사람을 죽일 것이냐.”

 왼쪽 배에 탄 사람들을 구하고, 오른쪽 배에 탄 사람들은 배를 수리한다. 그럼 아무도 죽지 않아도 된다. 아무도 죽이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저는 왼쪽 배에 탄 사람들을 구하겠습니다.”

 “아니죠, 한경군. 틀렸습니다.”

 “?”

 “우리 서로 약속했잖아요. 대답은 확실하게. 죽이겠다, 라고 하는 걸로.”

 “……하지만 제가, 오른쪽 배에 탄 사람들을 죽이는 건 아닙니다. 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선택을 하고자…….”

 “아니요.”

 프로가 웃음을 멈췄다.

 “틀렸습니다.”

 나는 내 대답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되새김질하며 절망했다. 바보 같으니, 바보 같으니. 어디서 말대답이야. 죽고 싶은 건가? 나는 죽고 싶은 건가? 죽으면 모든 게 끝인데.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프로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틀린다고 페널티를 주거나 탈락하거나 하는 일은 없으니까. 오늘의 방송은 퀴즈쇼가 아닙니다. 한경군. 교육이라는 것은 교사도 중요하지만, 학생의 배우고자 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에 한경군은 너무……, 겁에 질린 것 같군요. , 너무 겁먹지 말아요. 우리는 태어나 첫 울음을 터뜨릴 때 모두 같은 얼간이입니다. , 우리는 책임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만약, 만약, 만약. 혹시라도, 기적적으로, 하늘이 도와서, 한경군이 그런 어휘에 책임을 질 수 있습니까? 만약 기술자들이 배를 고치는데 성공한다면 어떨까? 나는 100명의 사람들을 구조했고, 남은 110명의 사람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할 수 있겠지. 아무도 죽지 않아도 돼. 아무도 희생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돼. 아니, 아니, 아닙니다. 책임은 환상 속에서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구조선이 떠나간 직후 기술자들은 작업에 착수하겠죠. 끝없이 밀려드는 해수와 싸우면서, 자그마치 100명의 목숨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그들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서 말입니다. 또 자신을 버리고 간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요, 한경군을 말입니다. 이기적이군요, 당신은. 당신이 이 사람들을 죽인 겁니다! 자그마치 110명이나 되는 목숨들을 죽음의 문턱에 내려놓고 도망친 겁니다! 당신은 선택에 책임을 져야합니다! 책임의 무게를 배워야만 합니다! , 말하십시오. 그들을 죽이겠다고! 내가 죽이겠다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 다섯 번째 질문입니다! 왼쪽 배에는 50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습니다. 오른쪽 배에는 200명의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다만 당신의 구조선은 100명의 사람들 밖에 태울 수 없습니다. 왼쪽 배를 향해 간다면 태울 수 있는 것은 50명 뿐입니다. 하지만 오른쪽 배를 향해 간다면 누가 구조선에 타고, 누가 배에 남을 것인지 당신이 선택해야할 것입니다. ! 어느 쪽을 죽이겠습니까! 얼른 선택하십시오! 얼른 책임을 지십시오!”

 교육이 계속된다.

 “, 여섯 번째 질문입니다. 왼쪽 배에는 100명의 사람들, 그리고 오른쪽 배에는 50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 오른쪽 배에는 의사가 타고 있는데, 이 사람은 훗날 500명의 사람을 살릴 것입니다. 선택하십시오. 어느 쪽을 죽이겠습니까?”

 교육이 계속된다.

 “, 일곱 번째 질문입니다. 왼쪽 배에는 200명의 사람들, 그리고 오른쪽 배에는 50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 왼쪽 배에는 살인마가 타고 있는데, 이 사람은 훗날 1000명의 사람을 죽일 것입니다. 선택하십시오. 어느 쪽을 죽이겠습니까?”

 교육이 계속된다.

 “, 여덟 번째 질문입니다. 왼쪽 배에는 200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고, 오른쪽 배에는 100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습니다. , 왼쪽 배에는 미친 살인마가 타고 있는데, 당신이 선택하지 않는 1초마다 1명의 사람들을 죽일 것입니다. , 빨리 선택하십시오! 어느 쪽을 죽이겠습니까?”

 교육이 계속된다.

 “1! 2! 3! ,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당신이 선택을 하지 않으니 가엾은 목숨이 희생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얼른 선택, 선택, 선택하십시오! 아아…… 16초…… 17초…… 또 무고한 목숨이 죽어갑니다. 바로 당신 때문에! 얼른 책임을 지십시오! 대체 왜 선택하지 않는 겁니까! 당신은 어찌 이리도 이기적이란 말입니까! 아아아……!”

 프로의 절규는 정확히 199초 동안 이어졌다.

 “196…… 197…… 그리고…… 199초 경과, .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피도 눈물도 없는 겁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괴물이 내 턱을 당긴다.

 “한경군. 설마 아직도 이게 사람 숫자나 헤아리는 수학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당신이 죽인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을 생각은 아니겠지요?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학교의 문제입니다. 교육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교육에 실체가 존재하질 않아요. 허상뿐입니다. 허무합니다. 그러니 도통 자신의 일이라 받아들이려 하질 않습니다. , 한경군. 우리 참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한경군이 선택을 하고, 또 선택의 이유를 설명해주고……. 범죄자의 목숨은 일반인보다 가볍기 때문에 그들을 죽였다고 말하던 한경군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차 있었는데……. 그 때의 한경군에겐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자신이 있었는데. 죽어가는 희생양에 책임을 질 자신이 있었는데…… 이제는 새벽의 꿈처럼 희미해져 버렸군요.”

 “……아니야.”

 “……예? 뭐라구요?”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오고, 빛이 난반사되어, 세상은 온통 흐릿한 곡선으로 가득차기 시작한다.

 “나는……, 아무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아!”

 그것은 어린아이의 투정이었다. 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내 자제심을 막을 길을 잃어버렸다. 그것에 책임을 져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책임질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는, 희미해진 곡선의 윤곽 속에서, 지겨운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그래…… 때가 왔어. 막을 내릴 시간이 다가온다.”

 프로는 천천히 교탁으로 걸어가, 캠코더를 손에 쥐었다. 그는 지금까지 촬영한 영상을 확인해 보는 듯도 하고, 설정을 만져 보는 듯도 하다. 혹은……, 내가 눈물을 닦고 추스를 시간을 주는 걸지도 모른다. 이윽고 프로는 캠코더를 한 손에 끼워 들고 다가오기 시작한다. 붉은 빛이 재점멸한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한경군. 꿈결 같지 않나요? 제가 여기에 있고, 한경군이 여기에 있고, 또 이런 무대가 있고. 마치 세상이 저만을 위해 마련한 자리 같지 않나요? 세상에 단 하나,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 그게 바로 지금 이 교실이 아닐까요? 제 앞으로의 인생에 이보다 더한 감격이 있을지? 저는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어느 날 당신의 교실에 미친 살인마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당신에게 칼을 던져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선택하지 않는다면, 살인마가 20명의 학생들을 죽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선택하겠다면, 그 칼을 들고 일어서세요.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단 한 명의 왕따를 죽이십시오.”

 “하지만…….”

 “그래요. 너무 쉬운 선택이라 김이 빠지겠지만, 이번에는 정말 당신의 선택이니까.”

프로는 의자에 묶인 외계인에게 다가간다. 안대를 풀어주었다. 입에 붙인 테이프를 뜯어주었다. 손을 묶은 로프를 끊어주었다. 그는 천천히 물러난다. 여전히 캠코더를 놓지 않은 채.

 “3분간 휴식하겠습니다. 부디 현명한 선택하시길.”

 

 외계의 법률3.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하지.

아직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외계인을 보면서 나는 여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나의 본성을 보지 말아줘. 나를 미워하지 말아줘.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고작 그게 내가 생각해낸 가장 적절한 문장이었다.

 “괜찮아……. 너는 죽지 않을 테니까……. 나는 절대로 너를 죽이지 않을 테니까…….”

 나는 내 발 근처에 떨어져 있는 칼을 보았다. 나는 그 칼을 주워 멀리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쥔 칼을 놓쳐 오히려 내 손을 베고 말았다. 신기하게도 피가 줄줄 새어나왔지만 전혀 아픈 느낌이 들지 않았다. 현실감이 없었다.

 붉게 물든 내 손을 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돌연 무언가가 내 손을 잡기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다시 보니 그것은 또 다른 손이었고, 그 손을 타고 올라간 곳에는 외계인이 있었다. 꼴불견인 나와는 달리 외계인은, 침착하고 다부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경아. 잘 들어. 중요한 얘기니까.”

 “괜찮아……. 괜찮아……. 나는 널 죽이지 않으니까…….”

 나는 그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기 어려워 눈을 피했다. 나는 그저 바닥의 어느 타일을 바라보며, 고장 난 로봇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래서 중요하다는 거야. 한경아.”

 외계인이 팔을 뻗어 내 얼굴을 붙잡고, 마주보도록 당겨왔다. 외계인은 여전히 의지로 가득 차 있는 듯 했다.

 “날 죽여.”

 “뭐……?”

 “날 죽여야 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외계인은 다시 말을 잇는다.

 “……너에게 이렇게 힘든 일을 시키게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니가 꼭 해줘야 해. 날 죽여. 봐봐, 한 명의 목숨과 스무 명의 목숨, 비교할 가치도 없다구. 이건 너무 쉬운 선택이야. 날 똑똑히 봐. 그리고…… 난 외계인이니까……, 인간의 법률은 적용되지 않아. 그러니까 날 죽여도 살인죄는 성립이 안 돼.”

 “지금 이런 순간에 어떻게 그런 장난질을……. 하지만……, 아니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저 놈들은 다 널 괴롭히던 놈들인데! 네 돈이나 뺏고 주먹으로 때리던 그런 쓰레기 같은 놈들인데! 어떻게 그런 놈들은 살리겠다고 네 목숨을 걸 수가 있어!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쉽게 목숨을 포기할 수 있어!”

 “장난이 아냐!”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외계인의 목소리는 삶을 체념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제야 나는 나를 잡고 있는 손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떨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외계인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누구나 두려워 해…….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야.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에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 따윈 없어.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남의 목숨까지도 희생시키는 게 인간이야! 하지만……. 혹시 어디엔가는……, 평범한 인간조차 되지 못한 낙오자들이 있을지 모르잖아?”

 “……그래.”

 정말로 그렇다. 전직 외계인으로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누가 이해해주겠는가. 그야말로 인간의 목숨이라는 최대의 권력을 손에 쥔 이 순간에도, 있는 그대로 남는 것이 그녀의 본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난 외계인이니까, 두려움 같은 감정은 하나도 모르겠지만 말야.”

 그렇게 말하는 외계인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야. 너는 배신자니까 말야. 그저 한 번만 더 배신해주면 돼. 남들이 다 하듯이.”

 외계인의 희생을 망쳐서는 안 된다. 그 사실만이 내 정신을 가득 채운다. 내 정신을 맑게 깨워 주었다.

 그 순간 프로가 개입했다.

 “그만, 그만! 거기까지! 지금 뭐하는 겁니까! 제 신성한 방송에 어디서 같잖은 교훈을 삽입하려……. 3분……, 시간이 다 되었나? 아니, 아무래도 상관없어. 휴식은 거기까지입니다. 광고시간이 끝났습니다. 얼른 선택하십시오! 책임을 질 수 있는 쪽으로!”

 기묘하게도 이 시점에서 제일 당황하는 것은 프로의 쪽이었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며 선택을 재촉하였다.

 하지만 나와 외계인의 선택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양손으로 단단히 칼을 지탱했다. 외계인의 손이 내 손 위에 겹쳐진다. 그 손이 여전히 떨리는 것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외계인의 눈빛은 단호했고, 우리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어쩌겠나, 결과가 눈앞에 있는데. 심장에 칼을 갖다 대고, 나는 찔러 넣었다.

 

 

 괴물의 수사학4.

 외계인은 그렇게 죽었다. 유언을 남기지도 못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던지지도 못하고. 그렇게 죽었다.

 “이건……. 이건 내 대본에는 없었는데.”

 프로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면서 몸부림친다.

 “신파극은 필요 없어! 이건 엔터테인먼트란 말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란 말이다! 누구 멋대로 내 방송에…… 더러운 교훈과…… 자비와……, 또…… 그…… 입에 담기도 추악한 희생을 담으려 드느냔 말이다!”

 프로는 그대로 주저앉아 미친 듯이 소리치기 시작한다.

 “아…… 아아아…… 이럴 수가 없는데, 이럴 리가 없는데.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럽고 저급하고 추악한 밑바닥의 왕따 주제에, 우리에게 품격을 가르친단 말입니까……? 공들인 시간을…… 내 교육을…… 한 순간에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릴 수가 있었단 말입니까……? 아아…… 기계장치의 신이시여. 당신이 인간의 형상으로 둔갑해 날 현혹하려 드시는 것인지요? 제 연극의 막을 내리러 오셨나이까! 아니! 결단코 그래선 안 됩니다! 막을 내리지 말아라! 순간이여 멈추지 말아라! 너는 아직 아름답지 않으니! 칼끝을 거두지 말거라! 밤이슬에 녹이 슬기 전에는 말이다! 엔터테인먼트는 이렇게 끝나선 안 된다! 쇼는 계속 되어야 해!”

 프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프로는 칼을 고쳐 쥔다. 프로는 관객석으로 걸어간다.

 “그래, 나는 프로니까…… 이 정도 해프닝은 날 막을 순 없다. 엔터테인먼트의 프로는 곧 인생의 프로다…….”

 나는 당황해서 외쳤다.

 “약속이 틀리잖아!”

 하지만 프로는 들리지 않는다. 프로는 겁에 질린 관객을 한 명씩 죽여 나간다.

 “하나라도 더 많은 닭의 목을 비틀어야 돼! 새벽녘이 찾아오기 전에 말이야! 아아, 그래. 그렇게만 한다면……. 쇼는 끝나지 않아!”

 이렇게 끝날 순 없었다. 이렇게 끝나선 안 된다. 나는 외계인의 심장에서 칼을 뽑아 쥐었다. 내가 막을 수밖에 없었다.

 프로는 아무렇게나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프로는 무아지경이었다.

 “이게! ! 그 금발계집년 때문이라고! 알겠어! 너랑 그 계집이…… 이 모두를 죽인거야! 이 참극을 불러 온 거야! 이 엔터테인먼트의 막을 연거야!”

 하지만 프로는 곧 멈추게 되었다.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격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 칼이 박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당신은 누구보다 저속했어야 하는데, 구석에서 눈물이나 흘리면서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데…….”

 “당신이 날 선택했으니까……! 당신도 선택에 책임을 져야 돼……!”

 하지만 결국 프로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프로는 비겁한 거짓말쟁이였으니까. 프로는 치사한 사기꾼이었으니까. 프로는 도망쳤고 나는 홀로 교실에 남겨졌다.

 드디어 교육이 끝난다.

 

 

 익명5.

 나는 옥상 문을 열어 보았다. 당연하게도 옥상은 아무도 없이 텅 빈 모양 그대로였다. 드디어 세상이 나만의 장소를 마련해 주었는가. 하지만 곧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나만의 장소 같은 허망한 꿈은 이제 버리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분하지만 프로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는다. 쇼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이 오고, 의사가 오고, 기자가 올 것이다. 그들은 모자이크 박은 사진을 개시할 것이고, 생존자의 인터뷰를 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호사가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것이고, 나는 엔터테인먼트가 될 것이다. 내 삶을 그들의 유희로 소비하고자 할 것이다.

 외계인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나에게 외계인은 어떤 존재였을까. 우리가 과연 친구였기는 할까? 나는 그 녀석 이름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다 나의 배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나는 더러운 배신자이기 때문에 속죄해야만 한다.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러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외계인은 우리 모두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외계인에게는 친구도 없었고, 가족도 없었다. 외계인의 죽음을 진심을 담아 애도해 줄 사람은, 그리고 진심을 담아 책임을 질 사람은 나밖에는 남지 않은 것이다.

 나는 주변에 널린 장난감 블록들을 주워 담았다. 새 시대의 것이 늘 그렇듯이, 고전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젠 평범한 인간을 흉내 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위대한 인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세상 모두가 외계인을 기억하도록 만들 것이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도록 만들 것이다.

 아마 나는 또 다시 외계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포르말린에 담긴 채 박제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괜찮을 것이다. 인간의 법률은 나를 보호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참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세상이 멸망하지 않을까 싶었다. 마치 이대로, 오늘로 세상이 끝나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맑았고 UFO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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