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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317   141 hit   2017-09-12 12:46:26
산다이바나시 - 영어, 사서, 동백
  • User No : 664
  • 가입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Lv01 그렝

 "쌀쌀하네."

 

 새벽 6시의 출근길. 

 세희는 입고나온 스웨터의 소매를 손등까지 끌어내렸다. 

 무신경하게 난립한 아파트 건물들 사이로 몇몇 사람들이 잔뜩 움츠러 든 모습으로 나타났다. 

 세희와 마찬가지로, 남들 보다 조금 더 일찍 하루를 여는 사람들이다. 

 

 세희는 희미한 입김을 뿜으며 횡단보도앞에 섰다.  

 우연이 시선이 닿은 가로수들의 잎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세희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냈다. 

 단풍이나 가을에 대해 나쁜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실감하는게 싫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를 멋대로 휘두르는 기분이기 때문이었다. 

 

 세희는 발걸음을 빠르게 놀렸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500m쯤 가서 왼쪽으로 가니 세희의 직장이 나왔다. 

 동백 도서관.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에 있는 도서관이다. 

 계획도시라고 해도 아이들은 많지 않아서 주로 노인들이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용한다. 

 열람실이 여는 시간은 7시, 사서인 세희는 더 일찍와서 도서관을 열어야 한다. 

 

 도서관 옆 벤치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주민과 인사했다.

 넉넉해 보이는 인상의 할머니는 도서관의 단골 고객이었다. 

 예전에 몇 마디 말을 나누어 본 바로는 놀랍게도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딸이 미국사람과 결혼했는데 가끔 오는 손주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였다. 

 그 말을 듣고 왠지 세희는 할머니가 불편해졌다. 

 목표를 위해 순수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싫었다. 

 도서관 계약직으로 사는 자신이 왠지 초라해 보이기 때문에. 

 왜 너는 노력하지 않았니?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노력하진 않았지만 그런 시선을 받는 것은 싫었다. 

 그 후로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할 때마다 살짝 시선을 피하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었다. 

 

 그와는 별개로 할머니는 그저 말수가 없긴 하지만 괜찮은 아가씨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따금씩 세희에게 간식거리를 가져다 주었다. 

 환하게 웃으면 깊어지는 할머니의 주름살을 보면서 세희는 문득 자신도 저렇게 늙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너무 먼 일일까. 

 지금의 자신도 어렸을 때는 그저 '먼 일'이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무엇일까.

 

 계약직 사원증? 

 

 "....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못 온다는 구먼."

 

 하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어두웠다. 

 아마 미국에 있는 딸 부부가 사정이 생겨 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손주가 보고 싶으시겠어요."

 

 세희의 예의상 건넨 말에 할머니의 표정이 밝아졌다. 

 '손주'라는 단어가 할머니에게 힘을 준 모양이었다. 

 

 "그래, 아가씨, 우리 손주 사진 보여줄까?" 

 

 할머니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돋보기를 꺼내서 열심히 조작하는 것을 보니 꼭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듯, 시간이 꽤나 걸렸다. 

 

 "저는 도서관 열어야 되서 이만..."

 "잠깐 아가씨 아가씨는 핸드폰 잘 알지? 내 손주 사진 좀 찾아 주겠어?"

 

 손까지 잡으면서 부탁하는데 매정하게 뿌리치고 갈 수는 없었다. 

 자신은 어차피 계약직일 뿐이다. 

 민원이라도 들어올라치면 금세 잘린다. 

 세희는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자신의 것보다 훨씬 좋은 최신형이었다. 

 하지만 조작이 별다른 것은 아니었기에 할머니의 손주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

 

 사진은 얼핏 보기에도 수십장이 넘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을 몇 장 넘기자 할머니의 딸부부가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나왔다. 

 세희는 순간 무언가 명치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 

 자연스럽게 넘기는 척 하면서 사진을 전체 지정해 전부 삭제 해버렸다. 

 

 "어때, 찾았어?"

 "아뇨, 이거 핸드폰이 너무 최신형이라 저도 잘 못찾겠네요." 

 "호호 이것도 우리 딸이 선물해준거야." 

 

 할머니가 웃으면서 말하는데 전혀 불편한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같이 미소지어 주었다. 

 

 "저기 이거 드세요."

 "어머, 이거 저번에 내가 줬던?'

 "네 너무 맛있어서 저도 샀어요."

 "딸 부부가 갖다 준건데, 다시 찾아보려고 하니까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렵다구 그래서 못보는 줄 알았는데 역시 젊은 아가씨는 다르네."

 "인터넷에서 구했어요. 해외 직구."

 

 사실 네가 준거지만. 

 안이 살짝 녹아 있을거야 가방에 둔지 너무 오래되어서.

 세희는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할머니를 두고 도서관 입구로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은 어쩐지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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