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년의 그대에게
안녕? 이 편지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일단 써보기로 마음 먹었어. 문자메시지나 아니면 이메일을 보내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80년후의 사람에게 전하려면 편지가 최고겠지. 난 너에게 감사하고 있어. 덕분에 우리가족이 지고 있던 빚을 갚을 수 있었걸랑.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너의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 께 감사드리는 게 맞으려나? 그렇지만 이 편지의 수신인은 너고 어쨌든 너로 인해서 돈을 받게 되었으니 그냥 너에게 고마워 할게.
음 그리고 뭘 더 써야 할까……아 그래 너에게 부탁 좀 할게. 우리 부모님이랑 내 여동생의 기일을 챙겨주지 않을래? 아마 80년 후면 높은 확률로 여동생도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내가 자주 입었던 옷을 입고 묘지를 찾아 가 주지 않을래? 그 외에도 나의 추억들도 좀 이야기 해주고. 자세한 내용은 첨부된 문서를 확인해 줘.
어……막상 편지를 쓰려니까 할 말이 잘 생각이 안 난다.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국어시간에 많이 졸아서 그런가? 하긴 난 공부보단 몸 쓰는 쪽을 더 잘했지. 뭐 그래도 몸이야 어쨌든 지능은 너 하기 나름일 테니 다음 내 손(네 손?)으로 편지를 쓸 일이 있으면 이것보단 잘 쓸 수 있겠지.
그럼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게. 내 몫까지 열심히 살아줘
2021년의 나로부터
“편지는 다 쓰셨습니까?”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은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마음도 편치는 못했다. 돈이 뭐길래 15살의 소년이 이렇게 가혹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인가? 그렇지만 자신도 그 돈에 묶인 신세다. 하기 싫다고 그만두면 당장 은행대출을 갚는 길이 막막해지니 싫어도 하는 수 밖에.
그는 소년이 내민 종이들을 건네 받았다. 소년의 창백해진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기야 자신이 그런 입장이어도 똑 같은 심정일 것이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잠시만요!”
소년은 그의 신상명세가 인쇄된 종이를 다시 받아갔다. 그러고는 급하게 뭔가를 적었다.
“이제 다 됐어요.”
그리고 다시 내밀어진 그 종이를 본 남자는 그저 소년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세상이 미친 것이 분명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그걸 실제로 해도 된다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을 텐데 지금 이 세상은 그 둘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중이었다. 그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소년이 건넨 종이와 편지를 갈무리하고 병실을 나갔다.
-80년후-
[해동 과정 이상 무. 이식된 신경조직 적합도 양호]
[이식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곧 대상이 의식을 회복합니다]
소년이 눈을 떴다. 그가 입원했었던 병실과는 조금 달랐다. 이식하기 전에 들은 바로는 면역계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한 동안 무균실에서 지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게 기억이 났다. 병실이 좋아 봐야 얼마나 좋겠냐만, 그래도 전에 쓰던 일 인실은 비싼 값을 치른 보람이 있어서 좀 수준 떨어지는 호텔방 정도는 되었는데 지금 누워있는 무균실은 살풍경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그의 손을 쥐고펴기를 반복해봤다. 아직은 그의 의지를 몸이 잘 따라주질 않았다. 아마 한 동안 재활훈련을 한다고 바빠질 것이다. 그 생각을 떠올리자 절로 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tv에서 몇 번 재활훈련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굉장히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아마 이 재활훈련도 그것보다 어려웠으면 어려웠지 더 쉬울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만 할 대가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의사들이 찾아왔다. 간단한 검사를 하면서 차트에 이것저것 기록해 나갔다. 의사 한 명이 나가기 전에 봉투를 건넸다. 봉투 안에는 편지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 및 이런저런 개인적인 사항들이 적혀있었다.
“80년 전에서 온 부탁입니다. 법적으로는 당신은 열람하는 것으로 의무는 다했지만 가능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 주십시오.”
의사들이 나가고 그는 그 내용들을 찬찬히 읽어봤다. 그다지 어려운 부탁은 아니긴 했다. 그렇지만 이젠 완전히 남남인데 같은 몸을 하고 있다고 무덤까지 찾아가서 그 사람 행세를 하는 게 맞나 싶었다. 비록 이 신체나이에 맞추기 위해 15세까지 고생은 했다지만 이젠 집안을 괴롭히던 유전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이긴 했다. 만에 하나 신경계 적합도가 떨어졌다면 말짱 광이었겠으나 그러지도 않았으니 다행이기도 하고. 그래도 이미 80년 전에 이 신체의 권리를 포기하면서 돈을 많이 받았을 텐데 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음? 뭔가 더 적혀있네?”
아무 생각 없이 원래 신체주인의 신상명세가 적힌 종이를 뒤집어봤더니 뭔가 글귀가 적혀있었다. 급하게 갈겨 적었는지 악필이기는 했어도 해독하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
그의 부탁을 들어주자고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추가된 내용은 이러했다.
-가족들이랑 같이 살고 싶어. 난 죽고 싶지 않아.-
제도와 윤리가 무너진 사회 그 자체가 괴물이었다는 느낌이라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어찌보면 갑부의 자식은 본래 신체 주인인 아이를 잡아먹고 다시 태어났다는 점에서 괴물이라는 점도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